채란 문학실

[시] 물방울과 빛과 꽃을 가늠하는 휴일

미송 2013. 10. 5. 09:48

     

     

     

     

    물방울과 빛과 꽃을 가늠하는 휴일 / 오정자

         

    막막한 틈새로 눈발이 날린다

    눈길 위로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떠나간 당신은

    징검다리가 되었을까
    눈이 녹는 때로부터 노래하고

    임계점을 허물고 구석을 지운다

    지워진 문장을 읽는 동안 꽃들의 한 생이 다시 시작된다

    몸의 지도를 따라 빗방울 속으로 들어갔던 저녁 무렵

    빗방울 속에서 그리운 얼굴을 만났다

     

    아무도 듣지 않고 보지 않아도 혼자 말하고 빛을 뿜어내는

    텔레비전 한 대가 있는 헌 책방*에서 그는 혼자였다

    따라다니던 불빛은 푸성귀처럼 매일 자랐다 
    기다림 끝에 설령 봄이 오지 않는다 하여도

    광합성 활동을 멈추게 할 수 없다 고 노래하는 씨앗

    그의 골목에 가면 단단한 씨앗 하나 만날 수 있을까

     

    빛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한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켠다 창가를 서성이다 쓸쓸하게 돌아가는

    물방울과 빛과 꽃, 투성이의 결핍과 각진 슬픔들은 닮아 있다

    천형처럼 굳어진 마음의 수몰지구

    추억 하나에 불빛과, 영원히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동정童貞

    시를 발송한다.

     

    * 이승희 시인의 시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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