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과 빛과 꽃을 가늠하는 휴일 / 오정자
막막한 틈새로 눈발이 날린다
눈길 위로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떠나간 당신은
징검다리가 되었을까
눈이 녹는 때로부터 노래하고
임계점을 허물고 구석을 지운다
지워진 문장을 읽는 동안 꽃들의 한 생이 다시 시작된다
몸의 지도를 따라 빗방울 속으로 들어갔던 저녁 무렵
빗방울 속에서 그리운 얼굴을 만났다
아무도 듣지 않고 보지 않아도 혼자 말하고 빛을 뿜어내는
텔레비전 한 대가 있는 헌 책방*에서 그는 혼자였다
따라다니던 불빛은 푸성귀처럼 매일 자랐다
기다림 끝에 설령 봄이 오지 않는다 하여도
광합성 활동을 멈추게 할 수 없다 고 노래하는 씨앗
그의 골목에 가면 단단한 씨앗 하나 만날 수 있을까
빛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한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켠다 창가를 서성이다 쓸쓸하게 돌아가는
물방울과 빛과 꽃, 투성이의 결핍과 각진 슬픔들은 닮아 있다
천형처럼 굳어진 마음의 수몰지구
추억 하나에 불빛과, 영원히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동정童貞이
시를 발송한다.
* 이승희 시인의 시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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