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김추인 <고요의 음계>

미송 2013. 10. 23. 07:53

 

 

고요의 음계 / 김추인

  ㅡ 생명의 환(幻)

 

 

문득 궁금해지는 고요의 깊이, 어느 만큼 깊어질 때 임계의 음역에 깃드는 것인지

그 떨림의 경계에서 피었을 꽃을 조우하다

 

미농지 빛 엷은 잠 속에서 나비를 좇는 듯 하느작이는 나울거리는 꽃의 날개짓.

Bb, 판타지풍의 몽환적 고요가 꽃잎을 들어 올리고 있는 몇 초 사이 젖비린내 헤집으며 오시는 어린 목숨을 보다

 

그대 물안개 하늘 오르는 해율(海律) 본 적 있으시던가

그 함묵의 깊이로부터 도드라져 나왔을 희디흰 배냇짓 뭉클 사무쳐오는 젖내 아득하던 기억 있으시던가

일령 아기의 물푸레나무 잎새만 한 잠 곁

고요의 옷을 입은 깃 치는 소리는 그냥 희다 우주가 거기 계시다

  

 

천년동안의 일을 단 한 줄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시입니다. 때로는 순간이라고 말하기에도 짧아 보이는 시간동안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는 것이 또 시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이 시는 고요가 하느작 꽃잎을 헤치는 그 찰나의 순간을, 고요가 우화를 준비하는 일령아기벌레의 잠 곁을 스쳐가는 그 섬세한 소리를 포착한 수작입니다. 단 몇 줄의 문장으로 고요가 고요에게 다가간 생의 짧은 장면을 포착해낸 시인, 그의 마음속에는 마법의 망원렌즈가 장착되어 있는 게 분명합니다<최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