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이성복 <삶과 죽음이 불편한 자여>

미송 2013. 11. 18. 07:23

삶과 죽음이 불편한 자여 / 이성복

 

 

                                      나도 어느 날 그들처럼 떠나리라

                                                   -자크 프레베르, '축제'

 

 

 

이 세상에서 사람은 상록수 방식으로 사는가, 활엽수

방식으로 사는가. 학생들한테 물으면 열의 아홉은 활엽

수 방식이라 한다. 그럴까. 가을이 되면 다리털 빠지고, 머

리카락 다 빠져 대머리 되고, 가을 되면 서울 사람들 다

죽어 가는가. 봄 오면 다리털 자라나고, 번쩍이는 대머리

에 머리털 무성하고, 서울 사람들 강변 억새풀처럼 되살

아나는가. 이 착각이 어디서 오는지 몰라도, 인도에서 불

교가 발달한 것은 잎 지고 잎이 나는 북방에서라고 한다.

삶과 죽음이 불편한 자여, 동네 뒷산 소나무 밑에 가 보

아라.

 

삶과 죽음이 불편한 자여. 다수를 향한 호명 속에는 삶과 죽음이 편안해지길 바라는 화자의 주문이 걸려 있다. 삶은 곧 편안한 죽음 연습일까.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모두의 필수 강령이다. 뒹구는 것들이 많이 보이는 11월이다. 다리털은 모르겠지만 머리털은 매일 빠지고 있는 중이다.

대머리 안 된 게 다행이다 할 정도로. 그러고 보면 머리털은 분명 새로 나오고 있다. 잎 지고 잎이 나는 곳이 인도의 북방뿐이겠나. 우리 집 담

장 밖에도 상록수 옆에 활엽수가 있다. 사철 뾰족하기만 한 이파리 보단 짓물러 누렇게 뜬 활엽수 이파리에 시선을 더 오래 둔 올해 가을,

내 안에 가을이 스무스하게 이파리들에 묻히는 걸 보자니, 편안해진다. <오> 



Autumn Leaves (고엽) -이브 몽땅
Jacques Prevert 작사, Joseph Kosma 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