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나, 「의자」
너를 살까 생각 중이야
나를 태우고
사막으로 달려가
흰 뼈처럼 명상에 잠기는
소처럼
순한 눈을 끔벅거리는
으르렁거리며
둥그런 엉덩이를
덥석 삼키는
7월에 잃어버린
고양이를 생각하는
가끔 뿌리를 뻗어
내 영혼을 읽는
사람이 아닐까
고민하는
너를 버릴까 생각 중이야
『립스틱 발달사』(천년의시작) 中
시·낭송_ 서안나 – 1965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1990년 《문학과비평》으로 등단했다.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동시집 『엄마는 외계인』, 평론집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 등이 있다. 현재 서쪽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마당가에 덩그마니 놓여 있는 의자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가서 앉았다 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문밖에 내놓은, 버려진 의자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누구의 자리였을까 생각하게 합니다. 의자의 종류도 가지가지. 우리의 계층계급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인생의 절반쯤은 의자에서 지내는지 모릅니다. 과장이라고요? 그럼 인생의 전부를 의자에서 지낸다고 하면 어떤가요? 의자를 바꾸고 싶을 때 있습니다. 인생을 바꾸고 싶을 때입니다.
사람이 버린 의자는 그때부터 빛이 앉기도 하고 나뭇잎이 앉기도 합니다. 고양이도 앉고 저런, 새도 앉았다가 고양이의 먹이가 되기도 합니다.
가끔 내가 앉은 의자가 무너져 모래가 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건 상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영원한 의자에 앉은 자 지금껏 보지 못했으니까요. 내 의자에 바람을 앉히는 연습, 저녁을 앉히는 연습, 아니 아예 의자를 없애는 연습을 게을리 하면 안 되겠지요. 나를 태운 의자는 지금 '사막으로 달려가'는 중입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의자' 하면 여럿이 앉아 한담을 나누던 긴 의자, 어떤 가수의 노랫말에 나오던 '아무나 와 앉아도 좋소' 하던 빈 의자, 법정 스님의 하나뿐이 가지지 않았던 '그 의자'까지 연상이 된다. 쭉- 그들 성격까지 나열하자면, 왠지 앉자마자 좌불안석이 되는 의자가 있고 앉으면 기대거나 누워 버리고픈 의자가 있다. 어떤 의자는 딱딱해서 걸터앉았다간 멍자국이 들 것 같은 의자도 있다. 거칠어서 오래 앉았다간 필시 내 몸 어딘가에 생채기가 날 것 같은 그런 의자도 있다. 시인이 의인화한 의자 의자와 동일화한 화자, 그 사유 방식에 금세 공감이 가는 이유는 흔한 소재의 선택 탓일 것이다. 아무튼, 사물이나 인격이나 세상에 무엇이나 낡지 않고 썩지 않는 건 한 개도 없다. 등잔에 기름을 가득 채웠더니 심지를 줄여도 자꾸만 불꽃이 올라와 펄럭거린다 는 고사도 있듯이, 가득 찬 것은 덜 찬 것만 못하다는 교훈을 떠올리자면, 어차피 모든 것이 빈 것으로 남겨질 것이라면, 평소 여백을 즐길 줄 아는 연습을 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단 생각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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