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용서하소서
그가 왕이 되었으니
나는 평생 역적으로 살았습니다
말로써 무엇을 이루겠나이까
나는 기교를 버렸습니다
지상에 눈이 어두운데
하늘의 일을 어찌 알겠습니까
비로소 여기
천지를 헤매다 가겠나이다
— 정희성 〈고백〉(《신생》 가을호)
나는 어느 칼럼 같은 곳에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이반 카라마조프의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쓴 적이 있다. 참으로 기이한 세상이다. 종편이나 인터넷 뉴스를 보면 저런 것을 정치인이 말할 수 있나, 위정자들이 일을 저렇게 해도 되나, 언론을 담당하는 이들이 저렇게 쓰고 말해도 되나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 차라리 외면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들에 반응하는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댓글이라는 것도 이미 자유로운 댓글이 아니게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떤 사악한 영혼들이 이 댓글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이반의 사상이,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을 해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악마의 사상이, 어떤 이들로 하여금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게 한다. 나는 지역감정을 앞세우고 지역 차별을 부추기는 언동은 사법처리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오히려 범죄자가 무고한 이를 죄인으로 만들고 문학은 그런 세계 바깥에서 ‘유희’를 누린다.
정희성 시인이 최근 발표한 몇 편의 시를 보면 그가 이 세계를 몹시 괴로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나는 지난번에도, 지지난번에도 몹시 괴로웠기 때문에, 또 이번에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다. 오히려 나는 정치란 으레 그런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고, 그 사이에 정치적 권력이 변화하는 것으로부터 초연해지지 않고는 진짜 문학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애써 쌓아올려진 가치나 인식이 허물어지고, 유령들이 산 자들을 지배하는 형국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시인은 〈스마트한 전쟁은 없다〉라는 시에서 “나는 기교적으로 말하지 않겠다”라고 썼다. 그리고 위에 인용한 시에서도 역시 “나는 기교를 버렸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기교를 버리는 것은 기교를 주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지만 나 또한 지금 세상이 별로 안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기교를 버릴 수도 있을 만한 이반 카라마조프의 세상이다. <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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