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이건청, 「그 말이 아직 망아지였을 때」

미송 2013. 12. 10. 21:45

 

 

이건청, 「그 말이 아직 망아지였을 때」


그 말이 아직 망아지였을 때, 고삐에 묶이지 않았을 때, 되새 떼는 연둣빛 시간 속, 질경이풀 질펀한 둑방길 끝에서 날아오르곤 하였다. 새들이 희미한 물감처럼 번지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새들이 사라진 빈 하늘에 노을이 선홍의 물감을 퍼부으며 다가오곤 하였다. 그 말이 아직 망아지였을 때,

그 말이 아직 망아지였을 때, 둑방길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몇백 년 한 곳에 서서 거목의 안목으로 자라면서 이 둑방길을 오가는 망아지를 바라보곤 하였다. 망아지가 자라 큰 말이 됐을 때 짊어져야 할 채찍과 박차, 그리고 고삐로 가득 찬 시간을 생각하는 것이 느티나무는 슬펐다.

그 말이 아직 망아지였을 때, 황혼녘 둑길을 밟고 돌아오면서 느티나무 크고 굵은 뿌리가 물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느티나무가 거목으로 자라서까지 저 7만 개나 8만 개의 신록을 위해 힘겹게 흙을 밀고 서 있는 걸 바라보았다. 꺾이고 무너진 가지들을 일으켜 세우며 그늘 속으로 매미를 부르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말이 아직 망아지였을 때,

늙은 말 한 마리가 있었다. 쓰러져 있었다. 회색빛 하늘이 걸리고, 기일게 늘어난 시계 위에서 새까만 벌레들이 빠글거리고 있었다. 늙은 말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출전- 『푸른 말들에 관한 기억』(세계사)

 

 

 

 살바도르 달리 作- [ 빌라말랴의 聖女 루치에의 축제 ]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 하면 짐승으로는 말(馬)입니다('망아지였을 때'을 전제로 한다면 인간의 말(言)도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겠죠?). 망아지처럼 어여쁜 것이 또 있을까요. 그 부피감과 날렵함, 덩치를 이기는 순진함. 어미의 뒷다리에 기대어 거만을 떠는 망아지의 자세는 정말 최고입니다. 아무데고 가리지 않고 뛰는 무애(无涯)의 달음박질은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런데 운명은 슬퍼서 어른이 되면 재갈을 물어야 하고 박차를 맞아야 합니다. 몸을 바꿀 때에야 그것을 벗습니다. 어여쁨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 어디 시간뿐입니까. 망아지처럼 살게 해 줘, 망아지처럼 살게 해 줘, 내 멋대로 살게 좀 내버려 둬. 예술이라는 망아지가, 점점 좁아지는 울타리를 바라봅니다. <장석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