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유하 <재즈 0>

미송 2013. 12. 22. 08:42

 재즈 0 / 유하

 

소니 롤린스, 뉴욕의 한 강가에서

밤이면 삶에 취해 색소폰을 불던 사내

쿨재즈라든가, 하드밥

그래, 인생의 반은 120%cool한 영혼,

나머지는 격정적인 하드밥의 육체

 

차디찬 영혼은 냉장고를 메고

하드밥의 리듬으로 날아가는 나방이여,

혼자서 상처의 끝까지 가보리라

 

별빛과 달, 나의 유일한 재즈 카페

호화 객석도 청중도 없다,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난 연주하고 연주할 뿐,

저 강물이 수만의 귀를 일으켜 세울 때까지

   

지금은 말죽거리 잔혹사를 만든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한 유하 시인의 시입니다. 그는 90년대 한국 문단을 이끌었던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죠. 이 시는 그의 시집 네 번째 시집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에 실린 열한 편의 재즈 연작시 중 첫 번째 시입니다. 이 시의 화자는 혼자 격정에 취한 채 상처 끝까지 가보리라 결심합니다. 그에게 음악은 유일한 것이라서 청중 없는 텅 빈 객석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과 음악이 하나가 되어 서로에게 취하는 것, 바로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최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