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김선우 <立雪斷臂>

미송 2014. 1. 5. 22:27

입설단비(立雪斷臂)

김 선 우

2조(二祖) 혜가는 눈 속에서 자기 팔뚝을 잘라 바치며
달마에게 도(道) 공부 하기를 청했다는데
나는 무슨 그리 독한 비원도 이미 없고
단지 조금 고적한 아침의 그림자를 원할 뿐
아름다운 것의 슬픔을 아는 사람을 만나
밤 깊도록 겨울 숲 작은 움막에서
생나뭇가지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저 묵묵히 서로의 술잔을 채우거나 비우며

다음 날 아침이면 자기 팔뚝을 잘라 들고 선
정한 눈빛의 나무 하나 찾아서
그가 흘린 피로 따듯하게 녹아 있는
동그라한 아침의 그림자 속으로 지빠귀 한 마리
종종 걸어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싶을 뿐
작은 새의 부리가 붉게 물들어
아름다운 손가락 하나 물고 날아가는 것을
고적하게 바라보고 싶을 뿐

그리하여 어쩌면 나도 꼭 저 나무처럼
피묻힐 듯 어느 흰 눈 오시는 날
마다 않고 흰눈을 맞이하여 그득그득 견디어주다가
드디어는 팔뚝 하나를 잘라들고
다만 고요히 서 있어 보고 싶은 것이다
작은 새의 부리에 손마디 하나쯤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시인의 입설단비를 읽으며, 나는 팔뚝을 자르고 사흘밤 달마의 문전에 서 있었다는 혜가가 정말로 팔뚝을 잘랐었을까, 달마가 9년 동안이나 면벽을 하였다는데 과연 9년 동안씩이나 벽만 바라보았을까, 달마가 정말 잠을 쫒으려고 자기 눈꺼풀을 잘라냈을까, 하는 질문을 한다. 물론 근거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수도 있겠으나 내 생각엔, 후대들이 달마를 좋아하다 보니깐 신비화 한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교종(敎宗)에 속했던 혜가는 입설단비 이후 달마의 제자로 받아들여졌다는데, 깨달음 이전 추종하그림의 떡을 팽개치고 스승을 붙좇았다는데. 오늘 다시 읽는 입설단비는 또 하나의 그림을 청초히 그려가며 자분자분한 발자국을 따라오라 손짓한다. 결국 한 때, 내게도 있었을, 청솔가지 뚝뚝 분질러지던 겨울의 소리와 숫눈 위를 스쳐가던 날갯짓 무늬와 붉은 소나무 사이를 뛰놀던 청솔무의 그림을 떠올려 준다. 삼십대의 내 솔숲에는 소복한 눈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저 시절에 시인은 달마를 알았고 나는 달마를 몰랐을 뿐, 겹겹 액자 속 액자같은 지상에서의 가장 아름다웠던 눈풍경은 비스무레한 듯다. 철없던 저 시절에 달마를 몰랐으므로 난, 소나무 가지를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설계만 하였을 뿐, 한 순간이라도, 내 자신이 눈 속에 나무가 되어 새와 교감을 나누려는 저런 그림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시를 다시 읽으면서 비로소, 입설단비가 무슨 뜻인가도 헤아려 보는 것이니, 잘라야 할 게 팔인지 팔뚝인지 머리통인지, 버려야 할 게 나인지 너인지 분간도 못하는 것이니, 분별할 내가 시방 어디 서 있는지도 모르겠는 것이니, 오호! 그 다음 이름은 뭐라 불러야 할지...시 속 풍경 하난 끝내주는 액자소설 같네 하고만  있으니 시가 좋다는 것인지 시인의 목소리가 청아하단 것인지 이제사 달마를 코딱지만큼이라도 알게 되서 기쁘단 것인지 모르겠다 정말, 뭘 주절대는지도.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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