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여성민,「에로틱한 찰리」

미송 2015. 5. 20. 22:17

 

 

베를린 에로틱 성 박물관 전시

 

 

에로틱한 찰리 / 여성민

 

 

찰리가 에로틱해도 되는 걸까 문장은 이어지지 않는다 플룻을 부는 여자의 입술처럼 플롯은 은밀하다 나는 찰리에 대해 생각한다 창문에서는 붉은 제라늄이 막 시들고 있다 찰리는 어떻게 됐을까 찰리에 대해 생각하기 전까지 나는 찰리를 몰랐다 그런데 찰리를 생각했고 찰리가 걱정스러웠다 찰리를 생각하기 전의 찰리와 지금의 찰리 사이에 무엇이 지나 갔을까 카페의 테라스에서 여자가 플룻을 꺼낸다 나는, 찰리를 생각한 내가 찰리이고 누구인지 몰랐던 찰리는 찰리 a이며 지금의 찰리는 찰리 b라고 구별한다 문제는 찰리에 대해 생각하자 찰리가 떠났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찰리 a에 대해 생각했고, 그러자 찰리 a는 찰리 b가 되었고, 찰리는 빌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찰리에서 빌리로 옮겨간 것은 순간적인 일이다 붉은 입술이 플룻에 닿는 순간 찰리는 찰리 b가 떠난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자 찰리 a가 누구였는지 생각나지 않았고 나도 찰리일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빌리가 왔다 세계를 잠시 해체하는 것 같은 느낌이 찰리와 빌리 사이로 지나갔다 나는 그것을 에로틱한 각성이라고 적어둔다 여자가 플룻을 가방에 도로 넣는다 플롯은 숨어 있다

 

 

존재론의 문제를 다룬 약간 난해한 시입니다. 찰리ab, 빌리 그리고 플룻을 부는 여자가 등장하는 플롯을 빌린 산문시네요. 시야에 들어온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뇌에서 인지하는 데는 아주 약간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물에 대해 인지한 것과 실제 그 사물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약간의 시차와 괴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보고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다른 것이 되어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세상에 완전히 하나의 이름으로 단정할 수 있는 존재나 현상은 없습니다. ‘찰리라고 쓰는 순간 거기에 이미 찰리는 없습니다

<최형심>

 


 

찰리를 감상하려 하자 옆방에서 한국영화나 보자 하네 영화를 보고 나면 찰리에 대한 감상이 달라질까 어디서 칙칙한 골목만 골라 촬영했다고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가 환해서 좋다고 툴툴대네 다시 다른 영화를 다운받는 것은 자유네 골목을 지우는 일은 말리지 않겠네 그러나 대로가 나올 것이란 장담은 못하겠네 어쨌든 찰리를 읽었고 찰리는 채플린이 아니라는 정도만 알았네 칙칙한 영화의 영향이네 찰리를 다시 또 읽으니 좀 전 보다 선명하게 잡히네 다행이네 데리다의 차(différance)을 구체화하려는 것 같네계를 해체하려는 느낌을 에로틱한 각성이라 말하고 있네 해체의 원조는 역시 고타마 싯탈타 아닌가 나도 말하고 싶네 네네만 하니 재미가 없네 다른 영화나 보러가려네.  

20140131- 20150520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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