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시적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 붕어빵아저씨 고(故) 이근재 선생님 영전에
어떤 그럴듯한 표현으로 당신을 그려줄까
13년 동안 밀가루값 가스값 빼면
100원 벌었고 200원 벌었고 300원 벌었고를 헤아리며
변함없이 붕어빵만 구웠을 당신의 무미건조한 삶을
당신의 옆에서 또 그렇게 순대를 썰고 떡볶이를 팔던
당신의 아내를
어떤 그럴듯한 은유로 그날을 보여줄까
2007년 10월 11일 오후 2시 일산 주엽역 태영프라자 앞
트럭을 타고 갑자기 들이닥친 300여명의 용역깡패들과 구청직원들에게
붕어틀이 부서지고 가판이 조각나고
조각난 리어카라도 지키려다
부부가 길바닥에서 얻어터지며 울부짖던 날을
어떤 아름다운 수사로 그 밤을 형상화해 줄까
잘난것 없는 죄, 못 배운 죄 억울해
붕어빵 순대 떡볶이 팔아 대학 보낸
자식들 마음 아플까봐 몰래 숨죽여 울며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여보, 미안해 여보, 미안해
부르튼 아내 손 꼭 잡은 채 잠들지 못했다는 그 밤을
어떤 상징으로 그 아침을 새겨줄까
뜬눈으로 새웠을 새벽 4시 30분
일요일이라도 나갔다 오겠다고 나간 아침
일은 잡지 못하고 낙엽처럼 떠돌다
길거리 나무에 목을 매단 당신
당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아름다운 시로 이 세상을 노래해 줄까
어떤 그럴듯한 비유와 분석으로
이 세상의 구체적인 불의를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구조적으로 덮어줄까
500여 가구의 노점상 양민들을 거리에서조차 몰아내기 위해
31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는 고양시청
30여명도 채 안 되는 노점상 양민들의 생존권을 빼앗기 위해
150명의 폭력배를 고용한 일산구청
저항하면 공무수행위반으로 구속하겠다는 경찰
폭력배를 고용한 관공서를 경찰이 보호하며
서민을 향한 사제 폭력이 공무로 수행되는 나라
이런 민주주의가 판치는 세상을
어떻게 그럴듯하게 문학적으로 미학적으로 그려줄까
바람이 지는 풀잎으로 읊어줄까
국화꽃 같은 누이로 그려줄까
어떤 존엄한 시어를 찾아줄까
그러면 나의 시도 어느 연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러면 나의 시도 어느 평론가들로부터 상찬받을 수 있을까
그 애매함으로, 그 모호함으로, 그 규정되지 않음으로
그 깊은 서정성으로, 그 새로운 해석과 역사성으로
어떤 문학사의 말석에나마 기록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이 더러운 세상
이 엿 같은 세상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저들이 당신들의 생존권과 터전을
가진 자들을 위한 법으로 들어엎듯
당신들 또한 이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없는 자들의 새 법으로 엎어버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무슨 시를 쓸까
여보, 미안해
여보, 미안해
붕어빵틀을 잃어버려 미안해
당신의 순대를
당신의 떡볶이를
당신의 도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아, 게로니카의 학살도 이보다 잔인하진 않았으리
이렇게 일상적이지는 않았으리
이렇게 보편적이지는 않았으리
이렇게 평범하지는 않았으리.
참, 좆같은 풍경
새벽 대포항
밤샘 물질 마친
저인망 어선들이
편대 지어 포구로 들어선다
오륙 명이 타고 오는 배에
선장은 하나같이 사십대고
사람을 부리는 이는
삼십대 새파란 치들이다
그들 아래에서
아귀손으로 바삐 닻줄을 내리고
허덕이며 고기상자를 나르는 이들은, 한결같이
머리가 석회처럼 쇤 노인네들뿐
그 짭짤한 풍경에
어디 사진기자들인지
부지런히 찰칵거리는 소리들
그런데 말이에요
이거 참, 좆같은 풍경 아닙니까
왜 부자나 정치인이나 학자나 시인들은
나이 먹을수록 대접받는데
왜 우리 노동자들은
늙을수록 더 천대받는 것입니까
<사소한 물음에 답함, 창비>중에서
게르니카 학살
세계 제1차대전과 2차대전을 동시에 겪은 피카소는 처참하기 짝이 없는
인간말살의 전쟁와 파괴에 대항하여 그림이라는 표현수단으로
예술적 항거를 강렬하게 보여주었고, 그러한 그의 대표작이 <게르니카>다.
1936년 그의 고향인 스페인에서 내란이 발발했을 때 그린 것으로,
인간의 파괴와 전쟁의 비참함을 고발한 작품이다.
송경동 시인의<서정에도 계급이 있다>, <셔텨가 내려진 날>은 생략하고 두 편의 시만 올린다. 死者에 대한 남은 자의 애도가 무엇보다 절절하고 진지하다. 무엇을 쓸 것인가가 쓰는 자에겐 마지막까지 큰 화두이며 숙제가 아닐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한다. 글을 쓰다가 막힘은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나는 본다. 한 순간 너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거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해서가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둘러보면 내 변두리엔 얼마나 많은 시들이 굴러다니는지, 지켜주지 못한 도마들 밖엔 또 얼마나 많은 녹슨 칼들이 난무하는지. 단단한 벽이 강한 못의 천적이듯 지난한 회의감과 절망이란 이름의 도마들은 또 얼마나 강한 칼을 요구하는지, 숙고할 과제로서 위의 시편들은 섬뜩한 생명감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다. <2011-08,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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