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미송 2014. 3. 9. 08:46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1995) 

 

주인석

 

 

 소설가 구보씨는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코르크 메모판에 빼곡이 들어찬 것들을 살펴보는데, ‘H’의 결혼 청첩장이 눈에 들어온다. 구보씨는 ‘H’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다 소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소설이란 좌절된 의식이 세계에 대해 복수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결론을 내린다.

‘H’는 대학 시절 사회 운동을 하다 감옥까지 함께 간 친구로, 출감 후 연락이 없다가 3년 만에 처음으로 결혼한다고 연락이 왔다. 결혼식장을 향한 버스 속에서 눈을 감은 채, 구보씨는 눈을 떠 버린 죄로 재앙을 받은 희랍 신화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재앙의 날들이었던 80년대를 떠올린다. 결혼식장에서 구보씨는 ‘H’가 출판사를 차리고 성공한 자본가의 체험담을 모아 놓은 책을 출간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구보씨는 좌절감과 배신감을 느끼며 결혼식장을 나온다.

구보씨는 모스크바 국립대학의 어느 역사학과 학생이 말한, 그간의 소비에트 역사는 사잇길이었다는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서대문 독립 공원으로 변신하게 될 서대문 형무소의 폐허를 쓸쓸하게 돌아본다. 구보씨는 자신이 걸어온 길이 정말 사잇길인지 고민하다, 진짜 사잇길은 왜곡된 근현대사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사형 집행장을 구경하고 그 곳을 빠져 나오며 구보씨는 역사의 어떤 사잇길로부터 빠져 나왔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구보씨는 장담할 수 없다. 또 다른 사잇길로 접어든 건 아닌지.

 

구보씨 : 60년대 516과 함께 태어나 70년대 유신의 기만적 교육을 받고, 광주의 비극과 함께 시작된 8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내며 국가 보안법 위반자로 3년간 수감 생활을 한 인물이다. 그리고 90년대인 현재, 탈냉전 시대를 살면서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과거의 부정적 역사를 잊고 사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소설가이다. 시대적 상황을 반성하고 행동한 결과 좌절과 아픔을 겪고 있으며 주변인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H’ : 보씨가 소설가였다면 ‘H’는 구보씨와 같은 대학, 같은 과, 같은 지하 서클에 몸담고, 함께 군부 독재와 독점 재벌 타도를 외치다가 구속되어 3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그러나 출감 후 계속해서 좌절을 겪게되자, 운동에 몸담았던 과거를 저주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길을 택한다.

 

  박태원, 최인훈, 주인석의 구보는 모두 공통된 특징을 보인다. 단지 구보라는 이름의 소설가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시간공간행위의 구조면에서 다음과 같은 공통적 특질을 지니고 있다. 먼저 구보가 모두 소설가이면서 독신이라는 점이다. 또한 학력이 높은 지식인이며 자각과 반성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자의식이 강한 인물들로 당대 사회의 주변인으로 존재하는, 즉 생활과 아내를 갖지 않은, 삶에서 일탈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허구의 시간이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하루로 상정되어 있다는 점, 서울(경성)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외출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회귀형 구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 등도 공통적이다.

 

이 작품은 1995년 발간된 연작 소설집 검은 상처의 블루스 -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에 실린 작품으로, 1980년대의 경험과 그 현재적 의미를 환기시키며, 작가가 경험한 시대와 그 속에서의 작가의 존재 방식에 대한 질문을 감고 있다.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구보씨는 자신의 삶을 좌절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 좌절의 원인을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찾는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과거 역사의 세상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독자로 하여금 부조리한 역사와 현재를 자각하기를 촉구한다. 30년대 박태원의 구보’ 60년대 최인훈의 구보와 함께 구보현 소설의 맥을 이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인석의 구보는 소설이란 좌절한 의식이 세계에 대해 복수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자신을 좌절시킨 시대인 80년대에 대해 성찰한다. 구보씨의 80년대는 그야말로 현대적이다. 대학 시절 실천적 구국운동으로 동고동락하던 ‘H’의 변절은 구보씨에게는 80년대의 상처와도 같은 의미이다. 구보씨는 지금 우리들의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는 80년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서대문 형무소를 없애고, ‘기념비를 세우듯이, ‘상처가 낫기도 전에지워지고 망각된다. 구보씨는 자신의 과거를 성찰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80년대에 대한 역사 허무주의적 관점과 청산주의와 대결하며 모두의 반성과 자각을 촉구하고 있다.

 

  - 소설쓰기에 대한 소설쓰기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연작은 두 가지 질문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그 하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구보씨가 경험한 시대 혹은 그의 시대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렇다면 그 안에서 소설과 소설가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이러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구보씨의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구보씨는 80년대를 부조리한 시대였다고 규정하고, 구보씨 자신은 이 시대를 고민하며 살아가다 소외되었고, 패배한 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부조리한 시대를 비판하다 기득권의 폭력에 의해 좌절된 상황에서 소설가인 구보씨는 소설쓰기를 통해 부조리한 시대에 복수하고자 한다. , 소설가란 실패로 세상과 싸우는 존재이며, 소설쓰기란 복수하는 글쓰기라고 정의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왜곡된 역사를 살아온 한 소설가가 어떻게 소설을 써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따라서 이 소설을 소설쓰기에 대한 소설쓰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추모시집 출간  (0) 2014.07.23
아젠다세팅   (0) 2014.07.07
그을린 예술  (0) 2014.02.16
도서출판b '나의 대표시를 말한다'  (0) 2014.01.25
시는 벅차다  (0) 2013.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