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생각
내가 짧은 능력과 식견으로 돼먹지 않은 두 편의
미간행 장시를 발표한 것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나는 당신을 닮고 싶었던 것.
그러나 될 일도 될 턱도 없어 가슴에 묻고
예이츠도 키츠도 셰이머스 히니도 딜런 토마스도 아닌
많은 시인들 가운데 또 김수영도 정지용도 미당도 이상도 아닌
그 숱한 위대한 시인들 가운데 유독 당신 하나만을
칭송케 되었는데
어느 해 크리스마스 무렵 술 취해 막 이사한 아파트를 못 찾아
택시에서 어추어추 30분 이상 헤맬 때
당신의 시 「네 사중주」의 일 절 우리가 부단히 애써 인생을 살면
처음인 그 끝자리로 돌아오게 되리란 구절이 떠올라
곧장 택시 내린 곳으로 돌아와
뒤돌아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 성큼 집으로 찾아 들어갔던 것.
혹시 이런 모습을 시인이 내려다보고 있지나 않을까 해서
일순 계면쩍어하면서.
고해
외로운 날에는 혼자 있게 하소서.
슬픔이 차오를 때는 아무도 곁에 없게 하소서.
아무것도 바라지 말게 하시고
앞의 것들이 너무 큰 바람이면 내일은 적게 바라게 하소서.
용서해주시고, 더 이상 용서를 빌지 않게 하소서.
바라건대 더 큰 고통은 조금만 주시고
그리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지능을 갖게 하소서.
이런 것들이 너무 큰 바람이라고 할지라도
해량해주소서.
"시의 천분은 어떤 놀라운 관념으로 우리를 현혹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존재의 한 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이 되게 하고
견딜 수 없는 향수에 젖게 하는 데 있다" -밀란 쿤데라 <불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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