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발견
그런데 이게 뭔가
초호화 카데베 백화점에서 크로스백을 샀는데
봐라, 내가 한눈에 반한, 멋지다고 느낀 이 가방은
몇 년 전까지 들고 다니던 가방
부산 지하도에서 소매치기가 칼집 만들었던
내가 좋다고 느끼는 이 목소리
내가 반하는 노래
멀리 베를린까지 와서 나는
비슷한 한 패턴으로 살고 있다
만날 머쓱한 순간이 온다
2
백야
유월 열이튿날
친할머니 제삿날
밤 열 시 넘어서야 해가 진다
멕시코 플라츠 긴 계단을 내려간다
지하가 훤하다
비로소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길 잃었다
내가 사라지자 바깥에 풀이 반짝거린다
거긴 새벽이겠다
3
나흐트 버스
이 밤 버스 어디로 가나
타할레스는 어디로 가나
숲에서 주운 연필로 나는 숲을 그린다
이 밤 버스 어디로 가나
거기 가면 뭐 하나
그때 갔던 이들은 지금 뭐 하나
4
혼혈
숲으로 가는 길은 집으로 가는 길
넉 달 반 내 이름이 붙어 있는 문
매일 보는 새는 같은 새일까
검은 새는 온몸이 검지만 부리는 감귤색
매일 보는 검은 개는 오늘도 짖는다
매일 보는데 짖는다
어떤 날은 크게 어떤 날은 작게
무거운 물병 네 개를 내려놓고 잠시 쉰다
아니, 물이 무겁지 물병이 무거운 건 아니지
검은 새 검은 개는 검다
완벽하게 검지는 않지
― 『베를린, 달렘의 노래』서정시학,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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