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김이듬 <취향의 발견>外 3편

미송 2014. 4. 4. 07:58

 

취향의 발견

 

그런데 이게 뭔가

초호화 카데베 백화점에서 크로스백을 샀는데

봐라, 내가 한눈에 반한, 멋지다고 느낀 이 가방은

몇 년 전까지 들고 다니던 가방

부산 지하도에서 소매치기가 칼집 만들었던

내가 좋다고 느끼는 이 목소리

내가 반하는 노래

멀리 베를린까지 와서 나는

비슷한 한 패턴으로 살고 있다

만날 머쓱한 순간이 온다

 

 

2

백야

 

유월 열이튿날

친할머니 제삿날

밤 열 시 넘어서야 해가 진다

멕시코 플라츠 긴 계단을 내려간다

지하가 훤하다

비로소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길 잃었다

내가 사라지자 바깥에 풀이 반짝거린다

거긴 새벽이겠다

 

 

나흐트 버스

 

이 밤 버스 어디로 가나

타할레스는 어디로 가나

숲에서 주운 연필로 나는 숲을 그린다

이 밤 버스 어디로 가나

거기 가면 뭐 하나

그때 갔던 이들은 지금 뭐 하나

 

 

4

혼혈

 

숲으로 가는 길은 집으로 가는 길

넉 달 반 내 이름이 붙어 있는 문

매일 보는 새는 같은 새일까

검은 새는 온몸이 검지만 부리는 감귤색

매일 보는 검은 개는 오늘도 짖는다

매일 보는데 짖는다

어떤 날은 크게 어떤 날은 작게

무거운 물병 네 개를 내려놓고 잠시 쉰다

아니, 물이 무겁지 물병이 무거운 건 아니지

검은 새 검은 개는 검다

완벽하게 검지는 않지

 

 

― 『베를린, 달렘의 노래서정시학,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