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고 생각하니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이 엄습해온다. ‘아무도 없다고 하여라/빈집이라고 하여라//5억년 뒤에 돌아올 것이다.’ 그건 일본의 시인 다카하치 신기치가 노래(?)한 실존적인 고독, 문득 사위가 그저 칠흑의 광야 같다. 수십억의 인구가 사는 이 세상을, 아니 이 지구 위를 그는 왜 아무도 없는 빈집이라고 했을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나는 또 괜히 기형도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 ‘빈집’을 애써 떠올려본다. 강남의 시네하우스에서 시인들을 위한, 밀란 쿤데라 원작의 영화 ‘프라하의 봄’ 무료 시사회가 있었을 때의 일이다. 여성의 음모가 그대로 노출되는 그 무삭제 영화를 일반에게 개봉하기 전에 원래 필름 그대로 먼저 보고 온 소감을 놓고 낄낄거리다 우연히, 영화만 보고 금방 그 자리를 뜬 기형도의 그 ‘빈집’ 얘기가 나왔었다. “아니 이 친구 곧 죽을 것 같아….” 술을 마시면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었고, 그리고 그는 그 몇 개월 후에 죽었다. 그의 ‘빈집’은 ‘무덤’인가. 그리고 나는, 아니 우리는 사랑을 잃었는가.
24시간 불가마 찜질방 그 휘황한 붉은 네온이 어쩐지 다정해 보였다. 그리고 보도 블록 사이, 가로등 불빛 아래 보이는 그 푸른 것은 분명 냉이였다. 나는 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김영승 '외로움의 상처'
일요일 오전이다. 프리하다. 옆방에서는 블루스 키타소리가 울리고 있다. 흔적이 별로 남지 않는 저 키타소리에 비해 문학은 흔적이 많이 남겨지는 듯 하다. 그 흔적을 찾으려고 맘 먹으면 널널하게 만난다. 그래선지 시인들 보다 키타리스트들이 쿨해 보일 때가 있다. 가는 곳에 자꾸 가게 된다. 김형심 시인이 문장네이버에 김영승 시인의 반성 704를 올렸길래 김영승 시인을 붙쫓다가 2007년도 흔적까지 줏었다. 또 그 속에 기형도도 만났다. 왜 이렇게 새롭게 읽혀질까. 빈들이니 들판이니를 노래(?)하다, 우연인듯 시인의 산책길을 만나는 일. 덤을 얻은 기분이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者)도 아닌 죽은 자(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또 한 우연으로 오규원 시인의 [죽고 난 뒤의 팬티]가 눈에 띄여 읽어 본다. '팬티'란 한 단어만으로도 왜 우리는 아니 나는 눈길을 열었을까. 합성된 제목 자체가 싯구다. 죽고 난 뒤의.... 내 화장대, 내 욕실, 내 속옷서랍...가끔 속옷서랍 속 속옷들을 가지런히 정리할 때는 있다. 겉옷들과 달리 가지런하게. 그렇지만 언제 죽게 될지 모르는 내가 어떻게 입고 있던 속옷까지, 깨끗하게 남길 수 있을까. 늘 항상 속옷을 청결하게 입어라 뭐 그런 교훈은 아닌 게 분명하다. 시인도 시의 결구에 우스운 이야기겠죠, 라고 씁쓸한지 명쾌한지 잘 모르겠는 웃음을 보여 줬으니... 아무튼 팬티는 팬티다.
어쩌다 K시인을 검색하게 되었고 또 K시인 속 G시인까지 새삼 살피게 되었고, 또 어째서 O시인의 팬티까지 보게 되었는지, 또 무명의 O까지 나서서 이리저리 휘둘러 저들을 말하게 되었는지 인과의 고리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감상이 그렇다는 것 뿐,
김영승의 '별' 읽기로 마쳐야 겠다. 기관포처럼 쏘아대는 입술의 발성이 귀엽다. 감동스럽다.
우리는 이젠
그동안 우리가 썼던 말들을
쓰지 않을지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
외롭다는 말
그리고
그립다는 말
밤이면 기관포처럼
내 머리로 쏟아지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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