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김영승<별>

미송 2014. 4. 6. 10:22

 

누구나 무작정 걷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나도 무작정 걷고 싶을 때가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이므로 나는 또 그렇게 무작정 걷는다. 완전히 붕괴되었던 육체와 영혼을 일부나마 복구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그렇게 무작정 걷는 일은 어느새 내 삶의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이 된지 오래다. 역시 심야의 산책길, 노래를 부르며 걷기를 좋아하는 내가 또 말이 없어졌다. 마치 밥맛이 똑 떨어지게 만드는 어떤 꼴을 당한 것처럼,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듯 나는 괜히 부르던 노래를 뚝 그쳐버린 것이다. 괜히 나도 참 어지간히 외로운 인간이구나 하는 탄식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그렇게 외로운가.

외롭다고 생각하니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이 엄습해온다.아무도 없다고 하여라/빈집이라고 하여라//5억년 뒤에 돌아올 것이다.’ 그건 일본의 시인 다카하치 신기치가 노래(?)한 실존적인 고독, 문득 사위가 그저 칠흑의 광야 같다. 수십억의 인구가 사는 이 세상을, 아니 이 지구 위를 그는 왜 아무도 없는 빈집이라고 했을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나는 또 괜히 기형도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 ‘빈집’을 애써 떠올려본다. 강남의 시네하우스에서 시인들을 위한, 밀란 쿤데라 원작의 영화 ‘프라하의 봄’ 무료 시사회가 있었을 때의 일이다. 여성의 음모가 그대로 노출되는 그 무삭제 영화를 일반에게 개봉하기 전에 원래 필름 그대로 먼저 보고 온 소감을 놓고 낄낄거리다 우연히, 영화만 보고 금방 그 자리를 뜬 기형도의 그 ‘빈집’ 얘기가 나왔었다. “아니 이 친구 곧 죽을 것 같아….” 술을 마시면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었고, 그리고 그는 그 몇 개월 후에 죽었다. 그의 ‘빈집’은 ‘무덤’인가. 그리고 나는, 아니 우리는 사랑을 잃었는가.

24시간 불가마 찜질방 그 휘황한 붉은 네온이 어쩐지 다정해 보였다. 그리고 보도 블록 사이, 가로등 불빛 아래 보이는 그 푸른 것은 분명 냉이였다. 나는 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김영승 '외로움의 상처'  

 

일요일 오전이다. 프리하다. 옆방에서는 블루스 키타소리가 울리고 있다. 흔적이 별로 남지 않는 저 키타소리에 비해 문학은 흔적이 많이 남겨지는 듯 하다. 그 흔적을 찾으려고 먹으면 널널하게 만난다. 그래선지 시인들 보다 키타리스트들이 쿨해 보일 때가 있다. 가는 곳에 자꾸 가게 된다. 김형심 시인이 문장네이버에 김영승 시인의 반성 704를 올렸길래 김영승 시인을 붙쫓다가 2007년도 흔적까지 줏었다. 또 그 속에 기형도도 만났다. 왜 이렇게 새롭게 읽혀질까. 빈들이니 들판이니를 노래(?)하다, 우연인듯 시인의 산책길을 만나는 일. 덤을 얻은 기분이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者)도 아닌 죽은 자(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또 한 우연으로 오규원 시인의 [죽고 난 뒤의 팬티]가 눈에 띄여 읽어 본다. '팬티'란 한 단어만으로도 왜 우리는 아니 나는 눈길을 열었을까. 합성된 제목 자체가 싯구다. 죽고 난 뒤의.... 내 화장대, 내 욕실, 내 속옷서랍...가끔 속옷서랍 속 속옷들을 가지런히 정리할 때는 있다. 겉옷들과 달리 가지런하게. 그렇지만 언제 죽게 될지 모르는 내가 어떻게 입고 있던 속옷까지, 깨끗하게 남길 수 있을까. 늘 항상 속옷을 청결하게 입어라 뭐 그런 교훈은 아닌 게 분명하다. 시인도 시의 결구에 우스운 이야기겠죠, 라고 씁쓸한지 명쾌한지 잘 모르겠는 웃음을 보여 줬으니... 아무튼 팬티는 팬티다. 

 

어쩌다 K시인을 검색하게 되었고 또 K시인 속 G시인까지 새삼 살피게 되었고, 또  어째서 O시인의 팬티까지 보게 되었는지, 또 무명의 O까지 나서서 이리저리 휘둘러 저들을 말하게 되었는지 인과의 고리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감상이 그렇다는 것 뿐,

 

김영승의 '별' 읽기로 마쳐야 겠다. 기관포처럼 쏘아대는 입술의 발성이 귀엽다. 감동스럽다.   

 

우리는 이젠
그동안 우리가 썼던 말들을

쓰지 않을지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

외롭다는 말

 

그리고 

그립다는 말

 

밤이면 기관포처럼

내 머리로 쏟아지는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