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 오월
망월 가는 이맘때쯤이면
아카시아 꽃봉지 들고 다가오는 산 전체에서
막 양치질한 딸아이
입내 같은 것이 났지.
꼭 죽음이 아니어도
이렇듯 신성이 찰나에 임하는,
잎새로 분사噴射되는 햇살 샤워;
낯뜨거워라
치약처럼 화한 꽃 한움쿰 입에 털어넣고
멀찍이서 묘역을 대하는데
죽어서 받은 거룩함도 살아 있는 날의 우연성, 덧없음,
어처구니없음에 잠깐 일어난 정전기 같다 할까
사실 벌거지만도 못한 삶이었는데
커다란 거품인 무덤들 둘레를
명함 돌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둘러싼다.
聖 오월; 아카시아꽃은 갑자기 재치기하고 싶은
흰 손수건을 흔들고....
달력을 본다. 28일이다. 지난밤엔 집에 온 손님과 얘기하느라 잠을 설쳤다. 다음 날이 휴무일이라 낮잠을 잘 수 있겠다 싶어 성토聲討가 길었다. 낮잠을 잤다. 저녁 무렵 머리를 차근히 흔들며 시를 찾아 읽고 음악을 찾아 듣고, 그러고도 또 놀란 싯구에 머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란 검색어를 따라잡다 시 앞에 우뚝 선다. 눈이 번쩍 뜨인다. 우뚝, 번쩍…… 사실은 우두커니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한 번 더, 머리를 빗질하며 또 한 쪽 뇌로 나는 주억대며, 어떻게 저런 표현을…… '죽어서 받은 거룩함도 살아 있는 날의 우연성, 덧없음, 어처구니없음에 잠깐 일어난 정전기 같다 할까' 어떻게 저런 감각을…… 하며 사도바울적 허무 표현에 섬칫 놀란다. 나머지 싯구들 앞에선 아예 죽음의 자세를 취해 버린다. 역시 황지우... 이러고자, 시 읽은 티를 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는 술회述懷에 놀라는 것 뿐. 이 순간도 나는 한 편의 시에 기대어 위안을 얻고 한 편의 시를 빌어 악몽의 슬픔을 기억하고, 끝내는 잊지 않고자 다짐을 하는 것. 어린 영령英靈들을 죽음의 바다에서 건지지 못한 우리의 죄과罪過를 고해하고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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