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받다 / 박성우
짝이 돈을 잃어버렸다
몇 번이고 같이 찾아보았지만
잃어버린 돈은 나오지 않았다
날 의심하는 거야?
너 아니면 가져갈 사람이 없잖아!
짝이 엉뚱하게도 나를 의심했다
아니라고 부정할수록 자존심만 구겨졌다
하늘이 백 조각 나도 나는 결백하다
기어이 교무실까지 불려 가고 말았다
담임선생님도 나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끝까지 아니라고 했지만
이번 한 번만 그냥 넘어가 준다며
너그럽게 다그쳤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고
이를 앙다물고 참아도 눈물이 났다
내 짝은 우리 반 일 등에다가
모든 선생님께 예쁨을 받는 애니까
어이없게도 나는
아무 잘못도 없이 용서를 받았다
2012년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2012년 이전 시인의 '빨강'을 읽은 기억이 있다. 약력을 검색하는 이 아침에 그의 임용 소식을 접한다. 축하해 주고 싶다. 오늘 시에서도 물씬한 아이들 얘기가 나온다. 그는 아이들, 청소년들을 정말 사랑하나 보다. 물론 우리도 조금만 되돌아가면 아이들이니까, 아이들 얘기는 우리들 얘기와 멀지 않다. 풋풋한 얘기를 엮어 용서의 서사를 풀어내는 메스같은 날카로움이 맛깔지다. 그저 과격하지만도 그저 우악스럽지만도 않은, 반짝 영글게 만들다 긴 교훈을 사유하게 하는 매력이 시 안에 담겼다. 그렇다. 사람 앞에서고 시 아래서고 우리는 듣고 난 이후, 제 할 말이 늘면 기분이 좋아진다. 상대방이나 시 속 화자가 방점까지 찍어놓으면 별 흥미가 없다.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다, 하며 지절댈 공간이 있을 때 독자는 저 푸른 초원 위를 내달리며 노래할 수 있다. 노래에 덧붙여 제 노래를 새롭게 지을수도 있다. 시의 미덕이란 이런 여백의 미가 아닐까 생각을 한다. 어쨌든, 세월호 사건 이후 아무 잘못도 없이 마치 용서받은 기분에 휩싸여 있을 아이들, 살아 있는 어른들, 대한민국에 살고 있단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어버린 듯한 씁쓸한 심정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이 사신死神의 거리에서 쓰잘데기 없는 용서란 올가미를 벗고 당당히 직시했으면 좋겠다. 오늘의 이 어이없음들이 얼마나 꾸준하게 제 허울을 벗으며 무너지는가 하는 것을, 앙바틈하니 직시했으면 좋겠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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