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정말 안전 불감증의 문제일까?
이것이 정말 구원파라는 특정 종교의 문제일까?
이것이 정말 정경유착이라는 잘못된 관행의 문제일까?
이것이 정말 학생들이 너무 말 잘 듣도록 만든 한국 교육의 문제일까?
이것이 정말 선장 한 명이 인간의 탈을 쓴 악마라고 한들 설명될 문제일까?
100명도 넘는 실종자가 바닷속에 있는 마당에 왜 국무총리는 사임 의사를 발표하는 걸까? 일단은 마지막까지 희생자를 다 수습하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만둘 사람이니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걸까? 사고 수습 후 물러난다고는 하지만 굳이 미리 사임을 표명한 건 왜일까? 총리 본인의 의지라기 보다 눈 가리고 아웅하듯 국민들에게 보여주기를 하려는 자들의 압력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침몰하고 있는 배에 승객들을 내버려두고 구명정에 올라타버린 선장과 뭐가 다를까? 도대체 지금 청해진해운에 관련된 모든 인물, 해경,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진실을 말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왜 이 골치 아픈 진실 게임을 해야 하는가? 이번 사건의 배후를 철저히 밝혀 책임자들을 엄벌한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을까? 정말?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이후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셨을 때를 제외하고 머릿속에 이렇게 많은 물음표가 한꺼번에 들어선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스무 번 이상 새 페이지를 열고 문장을 시작했다가 그냥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할 말이 너무 많아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고 어떤 말을 해도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과연 내가 무언가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온 국민이 기자나 시사 평론가처럼 촌철살인의 비판을 쏟아놓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차라리 가만있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엄청난 분노와 혼란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영혼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지금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침묵이 금'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죠.
그러다 이렇게 답답한 마음을 그냥 안고 있으면 정말로 병이 될 것 같아 한마디 적어봅니다.
방송국 입사 2년차였던 1998년 여름. 계속되는 폭우 끝에 결국 서울 시내 곳곳이 침수되는 물난리가 났더랬습니다. 저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였던 중랑천 수해 현장에 리포터로 파견되었습니다. 급작스런 호출을 받고 출동하는 바람에 옷차림도 마음가짐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보통 그런 프로그램은 기자들이 현장에 나가 소식을 전하는데 왜 신인 아나운서인 저에게, '가족오락관' 녹화를 하다 말고 그곳에 가라는 명이 내려졌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제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왜 많고 많은 기자들과 다른 아나운서들 대신 하필 오락 프로그램 녹화 스케줄이 빼곡한 내게 가라고 했을까'라며 내심 불만스런 마음도 품었습니다. 또, 생방송을 통해 재난 현장 분위기를 전하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그야말로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물론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아주 이기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흔들리는 취재 차량 안에서 리드 멘트와 질문 등을 정리할 때까지도 오로지 방송에 대한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제가 상실하고 있던 것은 흔히 말하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이나 '위기 대처능력'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기억'이었습니다. 그 잊혀졌던 기억이 섬광처럼 되살아난 때는 바로 수해 현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던 순간이었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 곧 질식해 죽기라도 할 것처럼 기도를 압박해 오는 악취와 뿌연 먼지 때문에 눈물과 콧물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습니다. 분명 다르지만 어딘가 흡사한 분위기. 바로 3년 전, 삼풍 백화점 붕괴 현장이었습니다.
반포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닌 저는 친구들과 종종 삼풍백화점에서 만나곤 했습니다. 1995년 6월 29일, 그날도 여고 동창들과 약속이 있었고 장소는 역시나 삼풍백화점이었습니다. 집에서 막 나가려는데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어릴 적 친구들 만나니까 편한 마음으로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다. 샤워 좀 하고 갈게. 그러니 우리 1시간만 늦게 만나자."
곧이어 다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얜 무슨 변덕이라니, 아유 짜증나. 우리 그냥 먼저 만날까? 아님 1시간 후에 만나?"
그 후로도 몇 번의 전화가 오간 후 우리는 결국 다들 집안에 다시 들어 앉아 시간을 때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1시간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었던 것이죠. 아니,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니 집에서 5분만 일찍 나갔더라도 저는 잠시 후의 일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약속 장소를 향해 가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1시간이 아니라 5분만에 생사가 갈렸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마터면 내가 바로 저 무너진 건물 더미 안에 있었을 수도...'
텔레비전에서 뉴스 속보를 보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한편으로는 아찔했고 또 한편으로는 이 끔찍한 일을 당한 낯 모르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아주 우연히 그 재앙을 피해 혼자 살아남은 것만 같은 그런 마음이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일종의 죄책감이 느껴지는데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들은 어떤 심정일지 가늠할 수조차 없습니다. 친구들과 저는 예정된 시간보다는 좀 늦었지만 결국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으로 모였습니다.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던 그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미했고 다만 가슴이 천갈래 만갈래 찢기는 아픔이 무엇인지를 간접적으로 느끼며 같이 울 뿐이었습니다. 바로 그날,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도 그저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던 그 현장에도, 뿌연 연기와 고약한 냄새, 울부짖음,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대학시절 까만 상처로 뇌리에 남은 그날의 사건을 저는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1998년 중랑천 수해 현장의 참혹한 광경을 마주하자 기억이 되살아났고 눈 앞의 풍경 위에 오버랩되었습니다. 잠시나마 수해 현장으로 달려가며 품었던 철없는 생각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촬영기자 선배와 사방을 뛰어다니며 화면을 만들고 멘트를 완성했고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방송을 마치자 뙤약볕 아래 땀과 눈물 범벅인 상태로 가재도구를 말리고 있던 아주머니들이 제 손을 잡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힘든 상황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나자 정말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내가 대체 뭘 했다고. 우리가, 감히 세상을 바꾸겠다고, 상처 받은 분들의 삶을 위로하겠다고 외치는 언론이 정말로 하는 일이 뭐 있다고... 이런 현장에 나와 경쟁하듯 비극을 중계하거나 뒤늦게 누군가의 잘못을 캐는 일 이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주체할 수 없는 허망함이 느껴진 나머지 촬영 기자 선배를 설득해 현장에 남아 잠시나마 쓰레기와 화장실 오물에 뒤섞인 물건을 꺼내 말리는 일을 도왔습니다.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그 자리를 빠져나올 때였습니다. 어떤 분이 다가와 아주 찬찬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너무 빨리 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실제로 개선되는 것이 없고 결국 비슷한 재앙이 되풀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피해자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 전의 일에 대해서 마치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게 언론 아닙니까."
그날 중랑천 수해 현장에서 돌아온 저는 늦도록 퇴근을 하지 못했습니다. 회사에 발이 묶여서가 아니었습니다. 언론에 몸담고 사는 한, 이 일만큼은 오래도록 뼈저리게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상세한 내용을 글로 남겨야 했습니다. 그날 저의 일기는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일개의 언론사 신입사원인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너무 쉽게 분노하고 너무 쉽게 남에게 원인을 돌리며 너무 쉽게 과거를 잊는다는 그 사실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그 후로 16년. 또 다시 비극적인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유사합니다. 안전불감증, 허술한 정책, 얽히고 설켜있는 온갖 비리들, 배가 산으로 가는 격의 대책 없는 복구 현장. 그 배후에 있으면서도 모든 게 다 남의 탓일 뿐이라는 무책임한 사람들. 죄 없는 국민들만 벽 보고 말하듯 일방적으로 분노하고 눈물 흘리며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물론 희생자들의 억울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유학생 신분으로 성수대교 사건에 대해 외국 학생들과 교수들 앞에서 온갖 질문에 답해야 했던 뼈아픈 기억으로부터 20년. 삼풍백화점 현장에 있었을 때로부터 19년. 눈물을 머금고 떨리는 입술로 대구지하철 참사 소식을 전해야 했던 9시 뉴스 앵커 시절로부터 11년. 부정하고 싶을 만큼 끔찍한 사고가 났고 대한민국은 과거의 교훈을 통해 달라진 것이 없다는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언론은, 또 대한민국은 무엇이 달라졌나. 개혁의 씨앗으로 변하지 못한 우리의 분노와 다짐은 어디로 사라졌나.
잠시도 쉴 새 없이 세월호에 관한 뉴스를 보고 전하며, 엄청난 상실감과 회의감, 절망감과 무기력함, 수치스러움과 슬픔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분들을 생각하면, 또 희생자들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타들어가 뜨거운 눈물이 솟구칩니다. 겉만 멀쩡하지 속은 곳곳이 부패된 대한민국의 실체를 마주할 때마다 서글픔이 치밀어 오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이 참으로 망설여집니다. 실제로 사고를 당한 분들과 유가족을 제외하고는, 당장 오리발을 끼고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 것이 아니라면, 감히 입을 열지 말고 그저 함께 울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실종자 수색이 마무리 되고 모든 희생자에 대한 추모 절차가 끝나는 때까지만이라도 말입니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도 지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나온 역사 속 사건들로 인해 쌓여 온 불만과 불신을 터뜨리는 일도 사실은 두번째일 것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엄청난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해 모든 힘과 마음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다만, 안타깝게 희생된 이들의 넋과 남겨진 자의 슬픔을 어느 정도 끌어 안은 후에, 이번만큼은 그냥 넘겨서는 안 될 일들이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발가벗겨져 썩은 속내가 다 드러난 정책은 바로잡아야 하고, 책임자들은 절대 사죄로 그치거나 도피하려 하지 말고 진정으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은 쉽게 용서해서도,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이 일을 잊어서도 안됩니다. 서해 훼리호가 침몰했을 때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도, 삼풍 백화점이 붕괴되었을 때도, 대구 지하철에 화재가 났을 때도 같은 다짐을 했지만 또 잊었습니다. 허핑턴포스트 재팬의 요시노 기자가 얼마 전 그의 블로그에 쓴 것처럼 우리는 진짜 악마를 놓쳐 버리고 엉뚱한 자들만 잠시 자책하다 쉽게 과거를 잊는 지도 모릅니다. 분노에 들끓기만 하다 행동하지 않고 망각해버리는 고질적인 냄비근성에 대한 대가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침몰하는 배를 보면서, 가혹한 운명 앞에 놓인 딱한 이들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기막힌 상황 속에서, 감히 헤아리지 못할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을 상상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가 얼마나 껍데기만 번드르르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를 절감합니다. 밀려오는 이 슬픔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과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이들은, 대부분의 국민들과 달리 이 사건을 결코 잊지 못할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해운사와 무능함의 극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정부, 앞다투어 엉터리 보도를 흘려보낸 언론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를 찾아내야 합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나면 화살을 남에게 돌리기 보다 거울을 보며 잘못된 부분을 고쳐야만 합니다. 대한민국이 하늘로 보낸 꽃다운 생명들과 심장이 뜯기는 슬픔을 겪고 있을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닥친 이 사건의 의미를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뼛속까지 새겨 넣고 낱낱이, 지속적으로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의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것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숨겨진 문제들을 빠짐없이 파헤치고 분석해 해결책을 강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모두가 책임 의식을 가지고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이 아픔을 기억하면서 대한민국의 곪은 상처를 도려내어 새살이 돋아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앞서서 해야 하는 일은 말보다 실천일 것입니다.
역사학자이셨던 아버지는 늘 '역사는 오로지 행동하는 자들의 것이며 역사를 수호해내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대학에서 성실하게 학생들을 지도하고 정년퇴임을 하신 후에도 아버지는 그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전국의 사학 비리를 캐내고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잡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고군분투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학생과 교수들, 신성한 대학을 담보로 못된 짓을 일삼는 자들과 정면 대결을 해야 할 때면 모두가 뒤로 숨기에 바빴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들이 너무 많습니다. 일흔이 넘은 노교수가 혼자 서류 봉투 하나 옆에 끼고 법정에 서서 싸우게끔 내버려 두고 다들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그 일을 해내셨고 아마도 그에 따른 결과로 큰 병을 얻으셨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자식으로서 억울하고 한스럽기 그지 없지만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아버지의 말씀을 수없이 다시 떠올렸습니다. 역사는 오로지 행동하는 자들의 것이기에, 역사를 수호해내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을 것이기에, 이 엄청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이성을 되찾고 진짜 문제를 찾아 개혁하는 일에 다같이 동참해야만 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 순간을 맞고 있고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호의 선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선장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인, 손미나
-2014년 05월 02일 11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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