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내 생일 때 입양한 멜롱이는 17개월 째 우리 집 마당에 세 들어 산다. 현관문만 나서면 온통 그 녀석 판이다. 최근에 들어온 살랑이까지 합치면 여동생이 둘이다. 늑대처럼 생긴 얼굴이 멋지다. 한 살을 넘기면 사람 나이 열 살 쯤 된다고 들었는데, 그래선가 올 봄 들어 부쩍 털갈이가 심해 거의 석 달을 넘도록 털을 날리고 있다. 처마밑에 거미줄 위에 화단 모서리에 온통 개털이 덮여 있어 아침저녁으로 쓸다 보면 에잇 이게 뭐니 한다.
엊그제는 이모 집 오빠가 카톡으로 금불해라 그러길래 라이브 돈까스집에 들어가 저녁도 먹고 맥주도 한 잔 하고 늦게까지 노닥거리다 돌아 왔는데, 대문을 여는 순간 욕실 수세미가 마당 복판에 놓여 있어서 깜짝 놀랐다. 막내 살랑이가 현관 방충망 작은 구멍을 부욱 찢고 들어가 내실 전체를 개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일주일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는데 그땐 바깥주인이 현관문을 열어 놓아 벌어진 일이었기에 그건 순전히 개 잘못만은 아니다 했었다. 한번 만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하고 벼르던 나에게 엊그제 일은 쇼크였다. 다섯 번 방바닥을 닦고 이 양반 저 양반을 들먹대며 화풀이를 했다. 아니 정말 화 낼 일이 없다없다 하니 저 노므 개새끼들이......
그리고 씩씩대며 집에서 2~30분 떨어진 면쯤에 있는 보신탕집에 전화를 걸어 여기 개 세 마리 가져가실래요 했다. 몽땅이라고 했지만 그냥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 와중에도 속으로 요즘 개 한 마리 값이 얼마지 생각했기에.
내 말을 들었는지 순식간에 마당이 조용해지고 시무룩해진 분위기가 느껴졌을 때, 옆 방 남자 역시 당신 처분에 따라 하쇼 하는 울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개털과의 전쟁은 해가 갈수록 장난이 아닐 것이다. 개들의 영양을 위해 돈까스집 순댓집 중화요리 집을 순회하며 때로는 먹고 싶지 않아도 예의상 한 그릇씩 팔아주어야 하는 수고도 이어질 것이다. 어차피 사람처럼 먹고 싸는 일이 전부인 저들이지만 그래도 주인을 알아보고 저토록 좋아 하는데 어떻게 버릴 수가 있나, 문 밖만 나서면 보신탕 그릇으로 들어갈 세 녀석을 생각하니 순간 마음이 움찔....
더 정들기 전에 헤어져야지, 이것도 다 집착심이야 (법정스님의 난초 일화까지 떠올리며) 했던, 불같은 결심이 이내 사라졌다. 정은 이미 들대로 들어버렸나 보다.
오늘은 세 녀석들을 좀 무심하게 쳐다본다. 저들도 어제보단 덜 달려드는 분위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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