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이시영 <행복>外 2편

미송 2014. 7. 24. 07:50

 

행복 / 이시영

나이든 여성들의 노동수도공동체인 남원 동광원의 김금남 원장(79세)의 얼굴은 그렇게 깨끗하고 맑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1949년에 동광원 식구들은 광주 방림동 와이엠씨에이 건물에 살다가 쫓겨났어요. 30여명이 한겨울인데도 오갈 데가 없어서 방림다리 밑에 천막 세 개를 치고 살았습니다. 10여명이 한 막 속에 들어가다보니 밤에 발도 뻗을 수 없었어요. 그 추위 속에서 옆 사람의 체온에 의지해 잠이 들곤 했습니다. 탁발하고 시장에서 주워온 푸성귀들을 다리 밑에서 물에 씻어 팔팔 끓여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어요. 육체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영혼의 기쁨이 말할 수 없이 커지는 게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지요.”*
그리고 그녀는 그 노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다. 정말 빛을 본 사람만이 그 빛에 먼지 같은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가.

* 한겨레, 2007년 1월 1일.

 

출처『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창비 2007

21세기 앵글angle로 잡자면 '겸허'란 말이, 한국전쟁 발발 전에 촛점을 맞추자면 '가난'이란 말이 스치는 시. 동광원이란 간판과 탁발. 시어들이 가슴 시리다. 그 때의 현실이 오늘의 현실이기도 한가 아닌가 했을 때의, 당신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내가 살고 있는 원주는 노인생활협동조합이 사회적일자리 기업 2순위권에 들어있다. 노인들이 맹렬하다. 무시하면 목소리 높아진다. 하지만 나이 일흔이 넘어서까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많다고도 거의 없다고도 말 할 수 있다. 소모의 한계점이 빤하다는 의미다. 계절마저도 도움을 안 주던, 엄살 부리기로 들자면 한계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어둠의 시간에 선조들은 다리 밑에 솥 하나 걸고서 탁발해온 배춧잎을 삶아 먹었다. 폭폭. 변색되면 고깃국물이 될까 하는 바램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혹여 비만의 고기보다 나았을 수도 있을 저들의 푸른 식사.


3년 전 한겨레신문에 박혔던 글자들을 보자니 겸허해지고 싶다가 문득, 육체와 영혼 빛과 어두움 우상과 먼지의 상관관계를 곱씹게 된다. 가난하다고 겸허해지는 것도 기름지다고 오만해지는 것도 아니지만, 인터뷰 내용에 '신비하다'는 노인의 표현은 왠지 알음알음 교육되어진 거짓말로 들린다. 노인은 자신이 왜 그렇게 살고 있고 말하고 있는지 무의식에라도 의심하지 않는다. 맑고 깨끗한 얼굴을 사랑하면서 정작 가난한 실체(육체)는 사랑하지 않는 부조리한 진풍경,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양육강식의 구조 속에서 그나마 부풀려 행복을 노래한 49년 생 시인의 깃발만이 도도히 펄럭인다. 해석은 너희들 각자가 알아서 하라는 것인지 롤러코스터 같은 목소리로 행복만을 합창하라는 것인지 그 또한 선택의 기로일 뿐, 아무도 인생에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2010-10-20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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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동리 / 이시영

술이 거나해지자 젊은 동리가 젊은 미당 앞에서 어젯밤에
잠 아니와서 지었다는 자작시 한 수를 낭송했다. "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우는 것을. " 미당이 들고 있는 술잔을 탁 내려놓고
무릎을 치면서 탄복해 마지 않았다.
"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우는 것을 .....이라.
내 이제야말로 자네를 시인으로 인정컸네." 그러자 동리가
그 대춧빛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대꾸했다.
"아이다 이 사람아. 벙어리도 꼬집히면 우는 것을 ......이다"
미당이 나머지 한 손으로 술상을 꽝 내리치면서 소리쳤다.
"됐네 이 사람아!"

 


기찻집 풍경 / 이시영

무교동에 드럼통이 몇 개 놓인 기찻굴 같은 컴컴한 술집이 있다.
대낮부터 그곳의 카바이트 막걸리에 취한 박용래 선생이 막 들어서던
송기원을 향해 죽은 김관식이 어떻게 살아왔냐며 마구 안고
볼을 부비는 통에 산 송기원은 물론 우리 모두가 깜짝 놀란 바 있다.

인간의 운명을 다룬 <역마>나 불교적 색채의 <등신불>을 보더라도 김동리는, 마당에 핀 꽃 보기를 마냥 즐겨하던 미당과는 안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들이 살던 시대는 필경 벙어리 냉가슴 앓던 시대였다. 가난과 설움에 억눌린 이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김동리는 꼬집히면 우는 벙어리를 미당은 꽃이 피면 우는 벙어리를 동상이몽으로 말한다. 나는 누구의 표현이 아름다우냐 하는 것 보다 누구의 말이 옳으냐 하는 문제에 촛점을 맞추고 싶다. 

 쉼보르스카는 그녀의 시 <두 번이란 없다>에서 "두 번 일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연습 없이 태어나서 실습 없이 죽는다." 고 했다. 시작(詩作)에 있어서 우리는 습작을 거치기도 하지만 자신의 말이나 소신이 죽어서까지 명예와 불명예로 따라 다닌다는 사실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예술가들은 왜 죽어서야 더 유명해지거나 더 사랑을 받게 되는지 도통 모르겠다. 실습도 없이 죽었다는 게 그들을 찾게 만드는 기똥찬 이유인지. <2010-08-28 오>

 

 

이시영 194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월간문학』신인작품모집에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함. 시집 『만월』『바람 속으로』『길은 멀다 친구여』『이슬 맺힌 노래』『무늬』『사이』『조용한 푸른 하늘』『은빛 호각』『바다 호수』『아르갈의 향기』『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등이 있음. 정지용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지훈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