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칼럼

보랏빛 소가 사라진다

미송 2015. 2. 16. 23:46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여기 저기 복작복작 술판이 벌어지고, 웃음보따리가 터진다. 모임에서 가장 들떠 있는 사람이 눈에 띈다면 분명 선배다. 어찌 기분이 안 좋겠는가. 젊고 상냥하고 유능한 사람이 바로 내 후배니 말이다.

 

그러나 점차 깨닫는다. 신입 중 적지 않은 수가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직장생활을 터닝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뭔가 다를 거라 믿었던 신입들 중 일부(?)는 다음과 같이 변한다.

 

첫째, 욕구(need)가 없다. 간단한 질문을 던져보자. "올해 뭐하고 싶니?" "..." "다음주에는?" 대게는 묵묵부답이다. 혹은 질문 자체를 힐난한다.(생각 없이 공부하는 친구에게 공부 왜 하냐고 물어봐라. 거북해할 것이다.) 그는 아마 지난주에 하던 일을 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일을 지속시키는 힘은 습관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어제 하던 일을 한다. 하지만 욕구가 없다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재미와 성취가 끼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둘째, 내(I)가 없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물어보면 "부장님이 동의하지 않을 텐데요." "그래? 그러면 너의 의견은 뭐니?" "다른 부서에서 동의하지 않을 텐데요." "너의 의견이 뭐냐고??" 세 번째 묻는다. "하면 좋겠지만..." 이쯤 되면 대화는 거의 종점에 온 거다.

무언가 하고자 하는 것이 없는데, 성공 경험이 쌓일 수 있을까. 성공 경험이 없으니 재미도 없고, 재미가 없으니 퇴근이라도 일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아니면 조건이라도 더 좋은 곳을 찾아 떠나든가. 이 때부터 일과 놀이가 확실히 분리된다. 회사가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들린다.

신입사원의 조기 이직이 점점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핵심은 자존감이다. 자신이 유능하다는 느낌, '내가 해냈다'라는 경험이 빈곤할수록 자존감이 뚝뚝 떨어진다. 안전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자존심이 들어선다. 말만 많은 꼰대 선배는 이렇게 탄생한다.

 

당신은 '보랏빛 소'인가? '누런 소'인가?

 

세계적인 경영 전략가인 세스 고딘은 그의 출세작 <보랏빛 소가 온다>에서 21세기 비즈니스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한마디로 '리마커블'(remarkable, 주목할 만한 요소)하라는 건데, 표현이 민숭민숭하니까 보랏빛 소라는 은유를 끌고 왔다. 다음과 같은 장면을 상상해 보자.

 

가족과 함께 고속도로를 따라 자동차 여행을 하고 있는데, 동화에나 나옴직한 소 떼 수백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입이 벌어진다. 이런 장관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20분 후. 못 보던 소들이 나타났다. 조금 전에 본 것들이 이제는 평범해 보일 뿐이다. 바로 '보랏빛 소'다.

90년대, 모든 제품은 TV로 통했다. 제품이 '리마커블'하냐는 제1의 요소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라. 삼성, LG, 대우의 냉장고가 뭔 그리 차이가 있었는가. 그 때는 스타를 동원해 엄청난 마케팅비를 쏟아 부으면 시장을 잠식할 수 있었다. 과장해서 말하면 평범한 제품과 위대한 마케팅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마케팅의 시대가 아니다. 필요한 물건은 이미 다 가지고 있고 원하는 것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TV를 끄니 광고를 볼 시간도 없다. 지금은 광고보다 제품 자체가 마케팅 파워의 핵심이 되는 시대다. 물론 욕망은 중요하다. 하지만 절대 사용자 경험을 넘지 못한다. 모바일 비즈니스에서 대기업들이 죽 쓰고 있는 광경을 보라.

 

이제 인재의 차원에서 <보랏빛 소>를 생각해보자. 90년대만 하더라도 명문대를 적당한 성적으로 나와 몇 개의 스펙을 갖추면 웬만한 대기업은 취직할 수 있었다. (80년대 학번까지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실함만 받쳐주면 큰 무리 없이 승진하다 정년을 채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메커니즘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1997년 IMF,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비즈니스는 복잡한 전쟁판이 됐고, 인재상도 바뀌었다. 요즘 근면함을 강조하는 사람 봤나. 지금 인재의 키워드는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이다.

대기업의 채용 슬로건을 보라. 바이킹형 인재, 통섭형 인재, 스티브 잡스형 인재. 같은 얘기를 다르게 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억울한 일이다. 학교에선 숙달과 스피드를 미덕으로 배웠는데, 정작 기업은 도전정신과 창의력을 요구하고 있다. 어쩌겠는가, 강물은 흐르는데. 기업은 이류요, 학교는 삼류다. 삼류를 이류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정책이 지금의 초등학교 선행영어학습 금지, 중학교 자유학기제, 고교 영어절대평가제 같은 것들이 되겠다. 창조경제 하려면 교육이 따라와 줘야 한다.

 

참고로 언젠가부터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채용시장에서 쏙 빠지고 있는데, 영어의 시대가 가고 있다는 증거다. 소설가 복거일은 여전히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것 역시 역사의 해프닝으로 기록될 것이다. 사회에 나와 본 사람들은 안다. 영어가 참으로 필요 없다는 것을. 영어공부, 필요한 사람만 하면 국가경쟁력 두 단계는 올라갈 것이다.

어쨌든 기업 입장에서는 수천 명 중에 골라 애써 뽑았는데도 영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요즘 핫한 다음카카오의 이석우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스펙 좋은 신입사원들, 익숙한 문제가 주어지면 빠르게 잘 해결하지만 처음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할 때는 아주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주 많이'란다. 괜히 뽑았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하고 있는 거다.

노 스펙과 면접 강화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신의 직장 공기업도 성과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다. 특이한 사례로 시작됐지만 점차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사회 곳곳에 쏠림이 없어지는 건(대표적으로 의대, 고시열풍은 시장이 정리해 줄 거다)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방증이고 개혁이 시작됐다는 신호다.

당신은 도전정신과 창의력으로 무장한 보랏빛 소인가? 난감한 질문해서 미안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결국 보랏빛 소가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만 알면 된다. 이건 재미있는 역설이다. 세상이 팍팍해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안전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누런 소에 가까워질 뿐이다.

 

2개의 마인드

 

2013년에 연출한 다큐프라임 <퍼펙트 베이비>의 기획은 가톨릭대 정윤경 교수의 한 마디에서 비롯됐다. "아이들은 만 5세부터 본격적으로 망가져 갑니다. 한국 아이들은 더 빠릅니다. 평가를 위한 평가 때문이죠."

이 지적은 학교 교육 일반의 한계와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무엇을 평가하는지 잘 알고 있다. 기존의 방식을 빨리 암기하고 숙달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래서 지독할 정도로 선형적이면서도 연역적인 훈련을 반복한다. 각종 공식과 순서 외우기를 상기해보라. 학습은 내가 궁금하고 원하는 것보다는 평가자가 원하는 쪽에 초점을 맞춘다. 수업 시간에 정답과 무관한 질문을 하는 걸 상상할 수 있겠는가? 선진 교육이란 이 한계를 누가 더 멀찌감치 벗어나느냐에 달려 있다.

난 아기들이 얼마나 완벽한지 증명하는데 힘을 쏟았다. 두세 살짜리 아기들의 행동을 유심히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넘치는 호기심과 열정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다. 실수를 해도 전혀 창피해하지 않는다. 자질 면에서도 이미 훌륭하다. 모든 아기들은 심리학자, 언어학자이면서 과학자다. 우리는 모두 '보랏빛 소'였던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예이츠는 "교육이란 물통에 물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촌철살인이면서 아름다운 문장이다. 역시 위대한 시인답다.

저명한 사회학자 벤저민 바버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 세상을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으로 나누지 않는다. 학습하는 사람과 학습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눈다." '학습하고자 하는 열정'이 바로 아기들이 주는 교훈이며 보랏빛 소의 본질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캐롤 드웩 교수는 이 열정을 성장마인드와 고착마인드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간단히 말해 '인간의 능력을 성장하는 것으로 볼 것이냐,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볼 것이냐'라는 신념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난 다큐에서 캐롤 드웩의 실험을 그대로 재연해봤다. 만 5세 아이들을 초대해 세 차례에 걸쳐 퍼즐을 풀게 했다.

 

1. 쉬운 퍼즐을 푼다. 모든 어린이 성공.

2. 더 쉬워 보이는 다른 퍼즐을 푼다. 모두 실패 (의도적으로 타임워치를 앞당겼음)

3. 조금 전의 퍼즐 2개를 주어 고르게 한다.

많은 아이들이 한번 맞혔던 첫 번째 퍼즐을 고르는 반면, 일부의 아이들은 오히려 맞히지 못했던 두 번째 퍼즐을 다시 한 번 해보겠다고 한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뉴저지주립대 마이클루이스 교수는 "어떤 감정을 경험했느냐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똑같이 실패를 경험해도 수치심을 느꼈다면 다시 도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패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캐롤 드웩이 말한 고착마인드다. 반면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성장마인드다.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여기 저기 복작복작 술판이 벌어지고, 웃음보따리가 터진다. 모임에서 가장 들떠 있는 사람이 눈에 띈다면 분명 선배다. 어찌 기분이 안 좋겠는가. 젊고 상냥하고 유능한 사람이 바로 내 후배니 말이다.

그러나 점차 깨닫는다. 신입 중 적지 않은 수가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직장생활을 터닝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뭔가 다를 거라 믿었던 신입들 중 일부(?)는 다음과 같이 변한다.

첫째, 욕구(need)가 없다. 간단한 질문을 던져보자. "올해 뭐하고 싶니?" "..." "다음주에는?" 대게는 묵묵부답이다. 혹은 질문 자체를 힐난한다.(생각 없이 공부하는 친구에게 공부 왜 하냐고 물어봐라. 거북해할 것이다.) 그는 아마 지난주에 하던 일을 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일을 지속시키는 힘은 습관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어제 하던 일을 한다. 하지만 욕구가 없다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재미와 성취가 끼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둘째, 내(I)가 없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물어보면 "부장님이 동의하지 않을 텐데요." "그래? 그러면 너의 의견은 뭐니?" "다른 부서에서 동의하지 않을 텐데요." "너의 의견이 뭐냐고??" 세 번째 묻는다. "하면 좋겠지만..." 이쯤 되면 대화는 거의 종점에 온 거다.

무언가 하고자 하는 것이 없는데, 성공 경험이 쌓일 수 있을까. 성공 경험이 없으니 재미도 없고, 재미가 없으니 퇴근이라도 일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아니면 조건이라도 더 좋은 곳을 찾아 떠나든가. 이 때부터 일과 놀이가 확실히 분리된다. 회사가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들린다.

신입사원의 조기 이직이 점점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핵심은 자존감이다. 자신이 유능하다는 느낌, '내가 해냈다'라는 경험이 빈곤할수록 자존감이 뚝뚝 떨어진다. 안전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자존심이 들어선다. 말만 많은 꼰대 선배는 이렇게 탄생한다.

 

당신은 '보랏빛 소'인가? '누런 소'인가?

 

세계적인 경영 전략가인 세스 고딘은 그의 출세작 <보랏빛 소가 온다>에서 21세기 비즈니스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한마디로 '리마커블'(remarkable, 주목할 만한 요소)하라는 건데, 표현이 민숭민숭하니까 보랏빛 소라는 은유를 끌고 왔다. 다음과 같은 장면을 상상해 보자.

가족과 함께 고속도로를 따라 자동차 여행을 하고 있는데, 동화에나 나옴직한 소 떼 수백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입이 벌어진다. 이런 장관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20분 후. 못 보던 소들이 나타났다. 조금 전에 본 것들이 이제는 평범해 보일 뿐이다. 바로 '보랏빛 소'다.

90년대, 모든 제품은 TV로 통했다. 제품이 '리마커블'하냐는 제1의 요소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라. 삼성, LG, 대우의 냉장고가 뭔 그리 차이가 있었는가. 그 때는 스타를 동원해 엄청난 마케팅비를 쏟아 부으면 시장을 잠식할 수 있었다. 과장해서 말하면 평범한 제품과 위대한 마케팅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마케팅의 시대가 아니다. 필요한 물건은 이미 다 가지고 있고 원하는 것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TV를 끄니 광고를 볼 시간도 없다. 지금은 광고보다 제품 자체가 마케팅 파워의 핵심이 되는 시대다. 물론 욕망은 중요하다. 하지만 절대 사용자 경험을 넘지 못한다. 모바일 비즈니스에서 대기업들이 죽 쓰고 있는 광경을 보라.

 

이제 인재의 차원에서 <보랏빛 소>를 생각해보자. 90년대만 하더라도 명문대를 적당한 성적으로 나와 몇 개의 스펙을 갖추면 웬만한 대기업은 취직할 수 있었다. (80년대 학번까지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실함만 받쳐주면 큰 무리 없이 승진하다 정년을 채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메커니즘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1997년 IMF,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비즈니스는 복잡한 전쟁판이 됐고, 인재상도 바뀌었다. 요즘 근면함을 강조하는 사람 봤나. 지금 인재의 키워드는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이다.

대기업의 채용 슬로건을 보라. 바이킹형 인재, 통섭형 인재, 스티브 잡스형 인재. 같은 얘기를 다르게 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억울한 일이다. 학교에선 숙달과 스피드를 미덕으로 배웠는데, 정작 기업은 도전정신과 창의력을 요구하고 있다. 어쩌겠는가, 강물은 흐르는데. 기업은 이류요, 학교는 삼류다. 삼류를 이류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정책이 지금의 초등학교 선행영어학습 금지, 중학교 자유학기제, 고교 영어절대평가제 같은 것들이 되겠다. 창조경제 하려면 교육이 따라와 줘야 한다.

 

참고로 언젠가부터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채용시장에서 쏙 빠지고 있는데, 영어의 시대가 가고 있다는 증거다. 소설가 복거일은 여전히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것 역시 역사의 해프닝으로 기록될 것이다. 사회에 나와 본 사람들은 안다. 영어가 참으로 필요 없다는 것을. 영어공부, 필요한 사람만 하면 국가경쟁력 두 단계는 올라갈 것이다.

어쨌든 기업 입장에서는 수천 명 중에 골라 애써 뽑았는데도 영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요즘 핫한 다음카카오의 이석우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스펙 좋은 신입사원들, 익숙한 문제가 주어지면 빠르게 잘 해결하지만 처음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할 때는 아주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주 많이'란다. 괜히 뽑았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하고 있는 거다.

노 스펙과 면접 강화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신의 직장 공기업도 성과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다. 특이한 사례로 시작됐지만 점차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사회 곳곳에 쏠림이 없어지는 건(대표적으로 의대, 고시열풍은 시장이 정리해 줄 거다)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방증이고 개혁이 시작됐다는 신호다.

당신은 도전정신과 창의력으로 무장한 보랏빛 소인가? 난감한 질문해서 미안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결국 보랏빛 소가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만 알면 된다. 이건 재미있는 역설이다. 세상이 팍팍해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안전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누런 소에 가까워질 뿐이다.

 

2개의 마인드

 

2013년에 연출한 다큐프라임 <퍼펙트 베이비>의 기획은 가톨릭대 정윤경 교수의 한 마디에서 비롯됐다. "아이들은 만 5세부터 본격적으로 망가져 갑니다. 한국 아이들은 더 빠릅니다. 평가를 위한 평가 때문이죠."

이 지적은 학교 교육 일반의 한계와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무엇을 평가하는지 잘 알고 있다. 기존의 방식을 빨리 암기하고 숙달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래서 지독할 정도로 선형적이면서도 연역적인 훈련을 반복한다. 각종 공식과 순서 외우기를 상기해보라. 학습은 내가 궁금하고 원하는 것보다는 평가자가 원하는 쪽에 초점을 맞춘다. 수업 시간에 정답과 무관한 질문을 하는 걸 상상할 수 있겠는가? 선진 교육이란 이 한계를 누가 더 멀찌감치 벗어나느냐에 달려 있다.

 

난 아기들이 얼마나 완벽한지 증명하는데 힘을 쏟았다. 두세 살짜리 아기들의 행동을 유심히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넘치는 호기심과 열정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다. 실수를 해도 전혀 창피해하지 않는다. 자질 면에서도 이미 훌륭하다. 모든 아기들은 심리학자, 언어학자이면서 과학자다. 우리는 모두 '보랏빛 소'였던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예이츠는 "교육이란 물통에 물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촌철살인이면서 아름다운 문장이다. 역시 위대한 시인답다.

저명한 사회학자 벤저민 바버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 세상을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으로 나누지 않는다. 학습하는 사람과 학습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눈다." '학습하고자 하는 열정'이 바로 아기들이 주는 교훈이며 보랏빛 소의 본질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캐롤 드웩 교수는 이 열정을 성장마인드와 고착마인드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간단히 말해 '인간의 능력을 성장하는 것으로 볼 것이냐,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볼 것이냐'라는 신념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난 다큐에서 캐롤 드웩의 실험을 그대로 재연해봤다. 만 5세 아이들을 초대해 세 차례에 걸쳐 퍼즐을 풀게 했다.

 

1. 쉬운 퍼즐을 푼다. 모든 어린이 성공.


2. 더 쉬워 보이는 다른 퍼즐을 푼다. 모두 실패 (의도적으로 타임워치를 앞당겼음)

3. 조금 전의 퍼즐 2개를 주어 고르게 한다.

많은 아이들이 한번 맞혔던 첫 번째 퍼즐을 고르는 반면, 일부의 아이들은 오히려 맞히지 못했던 두 번째 퍼즐을 다시 한 번 해보겠다고 한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뉴저지주립대 마이클루이스 교수는 "어떤 감정을 경험했느냐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똑같이 실패를 경험해도 수치심을 느꼈다면 다시 도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패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캐롤 드웩이 말한 고착마인드다. 반면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성장마인드다.

 

 

 

'보랏빛 소'가 되고 싶다면

 

애들 실험이지만 절대 애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캐롤 드웩은 청년들에게 '당신 자신이 똑똑하다는 느낌이 드는 때는 언제인가'라는 간단한 설문을 돌렸다. 고착 마인드와 성장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 간의 차이는 뚜렷했다.

고착 마인드 :

- '실수'를 하나도 저지르지 않을 때, 똑똑하다는 생각이 든다.

- 내가 쉽다고 생각한 어떤 일을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

성장 마인드 :

- '노력'해서 전까지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을 때.

- 오랫동안 머리를 싸매던 문제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할 때.

 

보는 바와 같이 고착 마인드는 완벽을 중시하며 결과를 타인과 비교한다. 반면 성장 마인드는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며, 무언가를 배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고착 마인드라면 성장 마인드를 이길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는 성장 마인드가 좋다고 개념적으로는 이해하지만 디테일에서 무너지니까. 그리고 습관화하지 않는 한 초심을 잃게 된다. 캐롤 드웩의 조언을 따라 할 수 있는 건 해보자. 한 번의 솔직함이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기
→ 대화 중에 모르는 사자성어 나오면 아는 척 넘어가지 말고 물어 본다. 그 사람은 점점 당신의 솔직함에 반하게 될 것이다.

■ 비판하는 사람에게 감사하기
→ 주변에 비판하는 사람이 없다는 건 당신이 고착 마인드란 걸 적나라하게 증명해준다.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잘 들어보면 구체적이지 않은 레토릭만 가득할 것이다.

■ 비법을 물어보면 알려주기
→ 제과 장인 김영모는 누가 비법을 물어보면 주저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를 가르치면 반드시 나도 하나를 배운다는 신념을 경험을 통해 터득했기 때문이다.

 

 

2015년 02월 16일 EBS PD 김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