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육사를 읽는 밤
친구를 사귀려면 신석초 같은 사람을 사귀어야 할 일이다. 이육사가 세상을 떠난 후 수십 년 후 석초는 단 한 사람 벗이었던 그를 위해 한 편의 글을 남겼다. 그 글은 이육사를 위한 진정한 헌사였다, 두고두고 타인들이 음미할 만한 이육사는 이유조차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건에 연루되어 북경 감옥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다. 40세를 일기로 그는 그가 원수같이 여겼을 바로 그 일제에 의해 세상을 떠나야 했다.
이육사의 시라야 전부 서른 편이나 될까. 그런데도 나는 그의 시를 전부 읽지 않았었다. 뒤늦게 공부 삼아 그를 읽다 나는 그가 내가 상상했던 유교의 사람만이 전혀 아니요, 자신의 고향을 머나먼 세계에 두고 있었던 몽상의 사람이었던 것에 놀랐다. 그러나 놀람보다 무서운 것은 그가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의 정신세계를 지켜나간 의지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시경》의 〈관저(關雎)〉 편에 대해 공자가 말한 것이다.
분노하라.
이것은 어느 번역된 얇은 프랑스 책의 제목이었던가. 슬프고 노여워하고 괴로워하고 절망하기로 말하면 어디 이육사만 했을까. 그러나 그는 기뻐하되 음하지 않고 슬퍼하되 상하지 않는 시적 경지를 지킬 줄 알았던 사람이다.
이 일 년 사이 나는 무엇을 써왔나.
기쁨과 슬픔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으나 그것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시가 될 수는 없다. 진정한 시, 오래가는 시는 명정, 명징한 상태를 지키는 데서 올 것이다. 이육사의 〈청포도〉〈파초〉〈교목〉〈꽃〉의 존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마침, 한 해가 저물어간다. 슬픔은 슬픔대로, 노여움은 노여움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는, 문학은 그것만으로는 나침판이 없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이것은 무엇이냐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생각해 볼 때다.
그러면서 육사는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지 생각한다. 그 어두운 시대에 그는 자기 한 몸에 빛을 응집시켜 스스로 발광하고 있었다. 시대가 너무 어두워서 그가 내뿜는 빛은 야광주처럼 더욱 두드러졌고, 이 빛의 존재를 깨달은 이들이 그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신석초, 김기림, 오장환 같은 이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그들은 수신호 삼아 서로를 향해 깜빡였다. 이것이 그들이 서로를 위해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있었다. 친일, 대일협력이 유행처럼, 페스트처럼 번지던 그 시대에 그들은 정신을 버리지 않으려 싸우고, 칩거하고, 멀리 떠났고, 그러면서 서로를 향해 은밀히 깜빡였다. 별처럼 깜빡이는 것, 이것이 그 시대의 진실 네트워크의 존재 방식이었다. 몹시 흐린 캄캄한 밤하늘에 드문드문 깜빡이는 별, 그리하여 희망의 존재를 입증하던 별, 이것이 그들이었다.
지금 그런 네트워크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어둠 속에 빛나는 별 같은 시인들이 필요하다. 유행에 물들지 않는, 유행이 결코 물들일 수 없는 정신이 필요하다.
2.
마음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하겠기에 슬픔은 슬픔대로, 노여움은 노여움대로 간직하더라도 그것을 용융시켜 어떻게든 육사의 시처럼 투명하고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어야 하겠노라고, 직설법도 간접화법도 둘 다 아닌, 시적 제시 그 자체에 진실과 꿈이 하나로 담긴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할 때, 시단은 다시 한 번 메마르고 가난해 보인다.
시가 현실과 따로 노는 것도, 개체들의 주관적 심상에 시종하는 것도 다 한갓 일탈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내 감정과 의지가 움직이지 않는 쪽으로 어설픈 선의를 표현하기를 단념하고 나의 시의 길에 집중하기로 한다.
타인이 아닌 나의 시, 포기할 수 없는 시의 길을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은 시가 의미를 띠고 다가온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던가비록 강퍅한 시대와 맞서
서릿발 사나운 동토로 내몰렸다 하나
의식은
추위와 고독의 절정에서 가장 명징하게
맑아질지니이성이
빙벽의 저 불타는 이마에서
반짝 빛나는 이 겨울 아침에 나는 일어나
먼저 시를 쓰리라.밤새 하얗게 내린 눈발 위에서 종종거리는
산새들의 그 정갈한
발놀림.
— 오세영 〈겨울 아침〉(《발견》 겨울호)
이 시의 화자는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의 힘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다. 그는 시만을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하나, 지상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많지 않은 사람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시를 쓴 사람은 오세영 시인이다. 오랜 세월 동안 참여시의 개념이 오도되어 있음을 비판하고, 담론적 차원에서 ‘순수’ 서정시의 길을 견지해온 시인이다. 그런데 이 시에 나타난 화자의 심리나 정서는 그가 이른바 현실 또는 시대에 관한 고민을 안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는 지금 “강퍅한 시대”에 살고 있고 “서릿발 사나운 동토”를 느끼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는 생각한다. “의식은/ 추위와 고독의 절정에서 가장 명징하게 맑아”지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는 그처럼 정신이 맑게 깨어나는 아침에 시를 쓰겠다고 생각한다.
시적 승화라는 지향성에서 그는 여전히 일관되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그는 변화하고 있다. 시간이, 세월이 그로 하여금 이 세계에 대한 인식을 단련시킨 때문일까?
사실, 이 분은 나의 은사이시다. 3주 전쯤 되었나? 내게 전화를 하셨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계시다는 것이다. 침술을 놓는 사람의 주소를 드렸다. 이 시를 보니 과연 맑고 평온한 아침을 맞이하고 계시는지 걱정이 앞선다.
3.
앞에서 잠깐 언급한 이육사의 시 가운데 〈교목〉이 있다. 잘 알려진 시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 피진 말아라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지 못해라
이 시가 의미심장한 것은 여기에 노래하고 있는 교목이 이육사의 정신세계 자체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육사는 한 그루 직립의 나무에서 외관상의 곧음만을 보지 않고 그 내부까지 들여다보았고, 거기서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보았다. 그런데 여기에 이와 같은 시작법을 가진 또 다른 나무의 시가 있어 인용해 본다.
꼿꼿이 서서
허공에, 기다란 대가리 박고
물구나무 선 채로 나무는
한 뼘 초록을 키워
앙상한 가지 끝에 매다는 것이다푸른 잎―들을 흔들며
외부의 모양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때, 뿌리는 온 몸으로
강물을 움켜쥐고 있을 것이다.뿌리가 저려 올수록 나무는
수많은 잎―들을 흔들어대는 것이다
내부의 수액을 뿜어 올리고 싶은 것이다
일평생 직립의 자세로 말하는 것이다
— 김연성 〈나무의 형식〉(《시작》 가을호)
이 시는 나무의 직립이 물구나무서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 뼘 초록”을 피워 올리기 위해서다. 이 초록에는 그가 강물에서 온몸을 다해 흡수해 들인 “내부의 수액”이 들어 있다.
이 시의 관점이 독특한 것은 직립의 나무가 “푸른 잎―들을 흔들며/ 외부의 모양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니까 나무는 외부의 모양으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내부를 표현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물구나무를 서고 있기에 나무는 팔과 같은 뿌리가 저려 온다. 그래도 창고 온 힘을 다해 푸른 잎들을 피워 올린다. 황지우의 시 〈겨울―나무에서 봄―나무에로〉는 겨울나무의 인고와 승리를 노래하고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 이런 나무 시의 계보가 있다. 그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 시 또한 새로운 관점에서 인내를 통한 나무의 결실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4.
시적 대상에 침닉되지 않고 확실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 긴장의 힘으로 대상의 내적 속성, 욕구, 의미를 갈파하는 시인으로서 김기택만 한 이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늘 입는 고급 프록코트를 버리지 않는 사람처럼 유행을 타지 않는 시적 태도를 유지하며 이러한 태도로써 시의 흐름의 한 중심을 형성한다.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니 본래 그렇다 하겠지만, 이 일관된 태도만은 오랜 시간에 걸쳐 양성된 것이요, 그러니 쉽게 깨어질 수도, 함부로 넘볼 수도 없는 것이다.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초미니스커트를 향했다. 어떻게 해서 풍속이 이에까지 이르렀는지 모르지만, 이 육체 현시적인 현상에서 모종의 욕구나 의미를 투시해 볼 수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작은 원피스 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그녀는
이미 충분히 줄인 몸을 다시 줄인다
숨 막히게 압박하는 허리에 맞춰 위장을 비운다
찢어지기 쉬운 얇은 옷감에 적응하기 위하여
맨살을 옷으로 만든다
자꾸 부풀어 오르는 살을 깎고 조이고 기름 친다
몸무게를 위아래로 잡아당겨 기럭지로 만든다
남자의 이별과 폭음과 울음에 한눈파는 사이
꼭 맞던 원피스가 갑자기 작아지면
몸을 뭉개고 반죽하여 처음부터 다시 빚기도 한다
몸매가 아무리 가늘어져도
가슴과 히프는 밖으로 터져나오려고 옷을 밀어내다가
옷이 찢어지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멈춘다
가림과 노출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높이 더 높이 안 입은 느낌을 향하여
치맛단이 올라간다
더 이상 길어질 수 없을 때까지 늘어난 다리를
킬힐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늘려
미니가 확 짧아지면
초미니 원피스는 저절로 몸에 달라붙어 피부가 된다
— 김기택 〈초미니 원피스 입기〉(《현대시학》 10월호)
김기택의 시는 끈질긴 시선으로 대상을 끝까지 꿰뚫어 보는 데 그 특질이 있다. 그 또한 직관의 시인이로되 한 번 힐끗 보고 번개처럼 떠오른 단상을 표현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보고 또 보면서 그 안에 감춰진 것을 다 들추어내고서야 시선을 거둔다. 그러니 이 초미니스커트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두고 우리는 잠시 이 시가 제시하는 그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이 시에 따르면 초미니스커트는 이 시대의 여성들의 심리의 집약체다. 과연, 복식은 특정한 시대의 문화적 심리를 대표한다. 필자는 대학 때 한울출판사인가에서 나온 의상의 역사에 관한 두꺼운 책을 탐독하기도 했는데, 거기에는 복식의 변천사에 담긴 시대마다의 성 심리와 풍속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도 현대의 복식사를 쓴다면 이 시대가 매우 독특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부각될지 알 수 없다. 스웨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한 지인은 한국 여성들의 화장이 짙고 성형이 성행하고 옷이 짧은 데 놀란다. 일본에서 한국에 공부하러 온 사람은 한국 여성들의 옷차림이 지나치게 짧고 또 어떤 성적인 메시지를 날카롭게 전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여성이다.
김기택의 시는 그러한 미니스커트 현상에 담긴 문화적, 심리적, 성적 메시지를 낱낱이 해부해 보인다. 이렇게 육체를 과도하게 전시하려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것은 분명 어떤 욕망이지만 시인은 그것을 낳은 원천까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유가 너무 뻔하거나 복합적이거나, 설명 없는 대상 자체의 제시에서 시적 효과를 기대하려는 어떤 ‘전략’ 때문일 것이다.
치맛단을 잘라 “더 이상 길어질 수 없을 때까지 늘어난 다리”를 만들었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킬힐이 이 늘어난 다리를 한 번 더 늘려준다는 표현도 재미있다. 이 긴 다리는 도대체 어떤 신호를 보내려는 것일까? 그러한 풍속의 무의식적 의미는 무엇일까?
5.
이 시인을 나는 많이 접해 볼 수 없었다. 이 시인의 시가 실린 잡지도 나는 드문드문 읽어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다만 한 가지, 우연을 따라 몇몇 편 그의 시를 접했을 때 대개 패착이 없고 늘 내적으로 견고하다는 인상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시인은 자기 세계가 분명하고 오랫동안 시업에 몰두해 온 사람이다.
마침 나는 요즈음 바다가 그리운 사람이다. 김기림의 시 〈연륜〉에 나타나듯이 초라한 이력의 육지를 떠나 푸른 하늘과 붉은 산호초와 꽃향기가 있는 섬으로 떠나고 싶은 사람이다.
마늘밭을 바다 삼아 쓴 이 시는 이 슬프고 고단한 시대가 곧 가고 내가 염원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한번 다시 읽어본다.
납작하게 비탈에 붙어서서
푸른 꼭지 마늘 칩을 꽂고 있다 그녀들
막막한 땅의 바다에
매운 배를 띄워 보내고 있다
그들은 캄캄하게
환하게 반짝이는 대양으로 흘러갈 것이다겨울의 압축이 풀리며
가만히 부풀어 올라
어룽대는 물 틈새
이제 목장성 넘어온
따스한 전류가 흐를 것이고
바다는 다시
푸르게 배를 밀며 돌아올 것이다
— 김만수 〈눌태리 2월〉(《포항문학》 통권 41호)
이 시에 나오는 “목장성”은 별 이름이냐, 지명 이름이냐. 면목없지만 사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일명 석병성(石屛城)이라고도 한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리 돌문마을에서 눌태리 계곡과 응암산을 거쳐 동해면 흥환동 배일리에 이르기까지 산등성이를 따라서 쌓은 석성이다. 1655년(효종 6)에 축성하였으며 둘레 25리에 높이가 10척이나 되었다. 이 성은 목장으로 이용되었는데, 소속은 울산목장으로 감목관의 관할하에 군사 244명이 1,008필의 말을 놓아 길렀으며, 목장 안에는 말에게 물을 먹이는 웅덩이 50여 곳과 마구간 19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눌태리 등지에 성벽의 잔해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으며, 구룡포읍 읍사무소 정원에 당시 성의 출입문으로 쓰이던 돌문 일부가 남아 있다.”
아하, 그렇다. 눌태리는 포항 인근의 지명이다. 그곳에 2월이 왔고 아낙네들이 마늘을 심고 있다.
아름다운 시다. 명랑한 상상력의 시요, 자연적 삶의 건강함을 아는 이의 시다. 나는 이 시의 마지막 두 행이 마음에 쏙 든다. 그렇다. 바다는 다시 푸르게 배를 밀며 돌아올 것이다. 나의 2월의 겨울 밭에도 곧 고달픈 손님이 청포를 입고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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