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구재기,『기꺼운 일』

미송 2015. 4. 4. 08:47

 

 

 

 

기꺼운 일 / 구재기

 

 

 떠나는

 바람의 등에

 삼배三拜를 올리듯

 풀잎이 자꾸만

 몸을 눕히는 걸 보면 


 바람에

 매달리고

 깊이 빠져 드는 것이

 풀잎으로서는

 너무도 기꺼운 일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5년 4월호 발표

 

충남 서천에서 출생. 충남대학 교육대학원 졸업. 1978년 《현대시학》에서 시부문 추천 완료(전봉건 시인 추천)로 등단. 시집으로 『농업시편』, 『바람꽃』, 『아직도 머언 사람아』, 『삼 십리 둑길』, 『둑길行』, 『 빈손으로 부는 바람』, 『들녘에 부는 바람』, 『정말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내 가슴 속의 날 지우는 일이다』, 『겨울은 옷을 벗지 않는다』, 『콩밭 빈 자리』, 『千房山체 오르다가』, 『살아갈 이유에 대하여』, 『강물』 등이 있고  제 2회 충남문학상, 충청남도 문화상 문학부문, 제6회 시예술상 수상. 현재 충남시인협회 회장.

 

 

 

 

 

풀, 풀잎은, 입술 달싹이면 기분 좋아지는 말이다. 입술을 단정하게 해 주는 말이다. 광풍에 휩쓸린 너를 어떤 이들은 사나워진 풀이라 명명하더라도, 나는 풀만큼 부드러운 존재를 본 적 없다 고 말하련다. 그 내면과 외면을 잘 표현해 준 오늘의 시인이 있어 나는 기꺼운 감상을 적는다. 풀은 야野하고 야시하다. 삼배가 삼천배가 되어도 죽지 않는 풀은 허리사이즈 22인치 쯤으로 변하겠다. 김수영 시인의 풀도 그렇고 구재기 시인의 풀도 그렇고 풀은 부드럽고 질기고 새벽 화장을 한 수줍은 새댁처럼 부지런하고 물기도 넘치고, 그러한 존재이다. 그러니 어찌 사람들이 싫어할 수 있을까. 국가적 알리바이로 죽은 유병언도 그 풀 위에 누워 위증을 널리 전파하지 않았던가. 풀은 순결한 역사적 반사경. 10년 전 오독의 대가大家로서 감상했던 풀은, 내게 있어선 잘도 눕고 잘도 겹치는 섹시한 여자였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풀을 제대로 읽으려 노력하자니, 풀은 더없이 정직하고 탄력 넘치는 처녀이자 성녀聖女다. 기꺼운 감상을 적는다는 게 어째 이런지 몰라도, 암튼 내 생각은 이러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