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퇴고실

가시나무새

미송 2018. 2. 21. 12:26


 

가시나무새

 

 

퉁이를 돌아설 때의 기시감처럼 

지문이 남았다 

가시나무새의 전설을 읽었다 


봉합 행위로서의 예술을 생각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 

찔림과 동시 즐거움을 주는 관계 

가시나무새를 생각하였다 

나무의 점액질에 엉덩이를 빼앗긴 새 그러나 

새의 입에 물린 나무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감정과 사물이 전복되면서 일직선상의 점으로 사라지려 할 때 

그 일치점에서의 우리는 무어라 명명되나

 

르느와르의 얼룩에서 환희를 읽는다 

배우인 동시 감독이었던 나는,




누구에게나 개방된 열린 공간에다가 자기를 표현하는 대신 내밀한 심리적 공간 속에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와 같은 심리적 공간을 카를 융은 테메노스라고 불렀다. 테메노스는 고대 희생 제의가 치러지던 공간을 말하는데, 융은 그 용어를 개인이 내면에 만들어 가지는 심리적 공간을 지칭하는 용어로 차용해왔다. 내면에 심리적 공간, 의식의 공간이 있어야 부정적인 감정을 담아두고 소화시킬 수 있다. 갈등을 폭발시키지 않고 해결책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고, 그곳에 고요히 머물며 피로해진 정신을 회복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 공간이다.

테메노스의 핵심은 밀봉에 있다고 한다. 중세 연금술사들은 헤르메스의 그릇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납, 아연, 구리들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그 속에 넣고 잘 밀봉해두면 그것이 금으로 변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연금술의 핵심이 그릇의 밀봉 상태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우리나라 발효식품 문화에서도 밀봉이 관건이다. 밥과 누룩이 변해 술이 될 때까지 열어보지 못하도록 한다. 밥을 지을 때조차 중간에 열어보면 뜸이 잘 들지 않는다.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경험과 감정, 체험과 정서를 얼마나 내면에 간직해둘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역량과 풍요로움이 달라진다. 내면에 간직된 경험만이 황금으로 변할 수 있다. 경험과 기억이 섞일 때 통찰이 생기고, 감각과 상상력이 결합되어 창의성이 발현된다. 몇 가지 경험에서 추출된 공통 원칙은 삶을 이끄는 지혜로 쌓인다. 이 모든 유익함은 밀봉된 내면에서만 이루어지는 화학 작용이다.

 

경향신문 오피니언 [김형경의 뜨거운 의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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