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퇴고실

시원찮은 물건일수록 外

미송 2020. 10. 3. 12:10

 

 

1

시원찮은 물건일수록

 

무를 넣었으나 무국도 아니고 감자를 넣었으나 감자국도 아닌 멸치를 넣었으나 매운탕도 아닌

이상한 국을 식탁에 올린 아침 이 국이 무슨 국인고 하는 질문을 받는다

저 국의 반대말이오 하려다 밥 한 공기 비우는 내내 국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추임새까지 넣었으나 국으로부터 멀어진 남자의 수저

미안해 이런 맛에 익숙치 않아서 라던 남자 다시 왈, 세상에서 제일 시원찮은 물건이 인간이라는

물건이라서 말 많고 의미 장황하고 지루하고 이상한 국 보다

더 시원찮은 게 인간이라서

 

 

2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비 내리는 금요일 불금이 무색하다 문 열어놓고 바퀴에 치어 돌아가시는 빗소리를 듣는다

안방에서 거실로 이동한 것처럼 등교하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손님이 오나

안 오나 이곳을 지키는 나는 주인이라는 근성을 발휘한다

몸을 인형에 비스듬히, 잠시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시험공부도 방과 후 수업도

손님도 미래도 다녀가지 않았다

그런데 근심하며 왜 사는가, 믿음은 어디에 두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평소 과제들은 영영 오지 않았다 

 

천국은 입술 윤곽 한 번 더 진하게 그리는 순간 볼 수도 있는 것

 

20151103-20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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