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할까
김경주
물고기는 물을
흘러가게 하고
구름은 하늘을
흘러가게 하고
꽃은
바람을 흘러가게 한다
하지만
슬픔은
내 몸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그 일을 오래 슬퍼하다 보니
물고기는 침을 흘리며
구름으로 흘러가고
햇볕은 살이 부서져
바람에 기대어 떠다니고
꽃은 하늘이
자신을 버리게 내버려 두었다
슬픔이 내 몸에서 하는 일은
슬픔을 지나가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
자신을 지나가기 위해
슬픔은 내 몸을 잠시 빌려 산다
어린 물고기 몇 내 몸을 지나가고
구름과 하늘과 꽃이 몸을 지나갈 때마다
무언가 슬펐던 이유다
슬픔은 내 몸속에서 가장 많이 슬펐다
월간 『현대시』 2016년 3월호 발표
박목월의 나그네를 낭독하다 보면 구름에 '달 가듯이'가 '달 가드키'로 발음되곤 한다. '달 가득히'로도 들린다. 나그네가 지닌 장점은 역시 흘러간다는 것, 나그네의 마음 깃에 닿아 부서지는 바람도 구름도 함께 흘러가려 할 뿐, 물고기도 꽃도 그 무엇도 나그네의 발길을 잡을 순 없다. 가득한 구름 그러나 텅 빈 하늘이란 얼마나 큰 나그네의 위안이던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시감에서 시인의 변혁을 읽는다. 몸의 신비를 예찬하는 듯, 깊은 슬픔을 위로하는 듯, 부서졌다 일어난 시인의 몸을 가만히 바라본다. 내 마음도 가만, 들여다본다. <오>
20160416-20161109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상률,「택배 상자 속의 어머니」 (0) | 2016.11.26 |
---|---|
윤동주<병원> (0) | 2016.11.10 |
박준 <문병> (0) | 2016.11.08 |
도종환<가구> (0) | 2016.10.24 |
안희선 <손짓하는 낡은 시계의 추억> (0) | 2016.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