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나라야마 부시코 (The Ballad of Narayama, 1982)

미송 2017. 7. 2. 14:47

 

 

1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이름을 적어본다. 내일이면 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뇌. 뇌의 정체는 무엇인가. 딱딱한 의자에 앉아 내일이면 잊을 것이 뻔한 사람의 이름을 굳이 기록하고 있는 손가락. 잊을 것이 뻔하다는 전제를 서둘러 내리는 뇌의 지령에 골똘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너무 흔한 핑계와 너무 흔한 자기합리화로 점철된 일상은 누구의 지령을 받아오던 것들인가. 왜 나는 관습적인 전제를 깔고 앉아 게으름을 지속하고 있는 것인가. 곧장 잊을수도 있는 이마무라 쇼헤이를 한번 더 발음하고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2

나는 어제의 쇼핑목록을 기억해 내고 싶었다. 그 이전, 목록들을 적어놓은 메모지를 잊고 나갔던 일부터 다시 정리하고 싶었다. 콜라비를 왜 자꾸 세라비로 부르는지 묻고 싶었다. 누구나 기억의 오류를 내는 것은 흔한 일. 고착된 생각을 반복하였다. 전두엽이 무디어져서. 알고리즘이 형성되지 않아서. 뉴런이 단순하게 반짝해서. 이런 변명만을 거듭하는 고질적인 게으름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질타한다. 자신의 죽음을 향해 미리 달려가면서 자유로워질 때만이 우연히 들이닥치는 여러 가능성 속에서 자기를 상실하는 것으로 부터 벗어나게 해 줄수 있다는 하이데거의 실존을 이야기한다.    

 

3

너의 기억은 제한될 수 있어. 너가 그렇게 정신없이 잊어먹는 건 주변 상황의 스트레스 때문이야. 너가 하고 있는 일이 어디 한 두가지니. 기억이나 암기란 머리좋은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야. 등속의 합리화들로 꽁꽁 싸매고 있지 않은가. 너는 이제 늙었으니까. 너의 뇌는 쉴 때도 되었으니까. 그렇게 많은 걸 어떻게 다 기억하니 괜찮아 괜찮아 하며 반복하는 실수에도 너그러운. 이 노망스러운 생각은 그릇된 생각.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 (천국으로 가는 노래. 천국으로 향하며 부르는 노래)에 나오는 여자주인공 오린은 69세. 죽음의 자리로 옮겨지기 직전까지의 그녀의 생각과 행동을 본다. 나는 반성해야 한다. 자신없는 목소리로 날 죽여주세요(그말은 난 어떡해서든 살고 싶어요 라는 반어적인 말)하기 전에 내가 얼만큼 기억하려고 노력하였는가. 그 기억하려는 기억들이 무엇인가를 또렷이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기억과 암기에 대해 무능한 자신을 언제까지나 변명하려는 것에 대한 반성문이자, 나중에 볼 영화에 대한 기록이자, 이것은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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