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함께 걸어가는 삶 - 이순원의 『나무』를 읽다 / 정연수
연인에게
사람과 사람이 만난 자리는 늘 상처투성이다. 그 상처가 두려워 사람을 멀리하면 살아가기도 한다. 더는 상처를 만들지 않으려고 만나는 시작부터 과도한 조심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사람이 만든 상처보다 더 아픈 게 또 있을까?
얼마 전, 외로울 땐 나무와 대화를 나눈다는 사람을 만났다. 사람사이에서 생기는 상처가 두려워 나무와 대화를 나눈다는 사람. 그의 말끝에서는 허무와 쓸쓸함이 배어났다. 사람이 두렵다고 섬이 되고, 바위가 되어 살아갈 수야 없지 않은가? 서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이순원의 소설 『나무』가 가슴에 와 닿은 것은 그 때문이다.
“제 몸을 잘라 낸 자리에 다른 나무의 가지를 받아들이는 아픔 속에서 비로소 ‘감나무'라는 이름을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감나무 밑동에 울퉁불퉁한 상처가 있었다.”(p.110-111)는 대목에서 삶의 상처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감을 즐겨 먹으면서도, 감나무가 지닌 아픔을 몰랐다.
그동안 말쑥하게 차려입고 화사하게 웃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가 그런 모습으로 내 앞에 서기까지의 고통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백조가 우아한 모습으로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발아래에서는 얼마나 많은 물길질이 필요했을 것인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든 못하든 간에 모든 생명은 삶을 위해 저마다의 준비가 있었다는 것을 새삼 새기게 된다.
“비로소 나무든 풀이든 꽃 한 송이를 피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가슴 졸이는 것인가를 알았다."(p.106)는 작은 나무의 고백을 통해 생명과 존재의 유지에 얼마나 더 진지해야 하는 가를 묵상하게 된 것이다. 나는 내 삶에 진지했던가? 우주의 생명에 동참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껴안았던가? 힘들고 가슴 졸이는 것이 싫어서 도피하거나 우회하지는 않았던가? 윤구병의 철학우화 『모래알 사랑』(보리, 2007)에 보면 “살이 닳고/뼈가 부서지는/아픔을 참고/오래오래 어루만졌다."(102)는 모래들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실날 같은 빈틈이 천리보다 멀고",(p.12) “어쩌다 바람결에 몸 닿아도/고통일 뿐"(p.13)인 모래알들의 삶이 서로 고통을 참으며 어루만지는 행위를 통해 사랑을 획득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들은 이 부대끼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바람이 되어 날아가거나, 남남으로 돌아서서 외로워한다.
사람간의 만남도 상처와 단점을 견딘 꽃만이 사랑의 열매를 맺는다. 어느 가지에서 맺힐지 모를 그 열매를 위해 무수한 사람과 만나며 마음을 열어 보인다. 마음을 여는 방법에서 진실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가슴 밑바닥에서 절절하게 우러나는 사랑의 언어보다 진귀한 보석이 있을까?
할아버지 나무가 작은 나무에게 들려주는 삶의 지혜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울림이 길었던 대목은 “잎사귀에 닿는 것 하나도 흘리지 말고 빛을 모으렴."(p.112)이란 글귀에서였다. 눈길을 한참 머물면서 빛을 그려보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가 빛인 것을, 내게 주어지는 모든 기회가 빛인 것을! 그 빛을 모을 때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을! 세상의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날 찾아오는 사람 - 이들은 모두 내 삶의 빛이다. 이 빛을 모으고, 이 빛과 더불어 환한 사랑나무의 숲을 일구어야겠다.
아들에게
“때로는 말이라는 게 참 이상했다. 어떤 말은 듣기만 해도 저절로 힘이 나고, 또 스스로 자랑스러워지기도 했다"(p.100)는 글귀는 이 책에서 읽어내는 주제와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이미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어떤 말 때문에 내 인생이 변화된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나의 연인에게, 나의 친구에게, 나의 아들에게 이런 놀라운 말을 전하며 살고 있는 걸까. 어떤 말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아 두렵다. 이제부터 하루에 한 번 씩은 그런 한 마디를 건네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생명을 주는 언어, 상대의 원기를 찾아주는 언어를 찾는데 더 힘써야겠다는 통절한 반성을 하는 것이다.
종종 내 삶은 왜 이렇게 더딘지, 내 아들의 발전은 왜 이렇게 더딘지 조급해 했다. 하지만 나는 늘 나를 믿고, 내 아들의 역량을 믿는다. 나와 아들은 환경을 잘 받아들이고,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늦음을 안타까워하지만, 대추나무를 보면서 언젠가는 꽃이 피고 열매 맺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긴 겨울잠을 자며 저 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더 충실한 여름준비와 가을 준비를 하는 게야. 또 대추나무는 밖으로 나온 모든 가지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거든."(p.99)
나는 감성이 여린 아들이 좀 더 강인해졌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다. 그 선량한 눈빛 속에다 매서운 기운도 담았으면 하고. 자신의 나태와 주위의 유혹에도 꿋꿋하게 맞서 오로지 한 방향으로 전진하는 저돌력이 있었으면 하고 말이다. 매화를 아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저 꽃잎이 무슨 힘이 있을까만, 이 마당 안에 저렇게 눈을 맞으면서도 꽃을 피울 나무는 매화밖에 없단다. 너는 그럴 기상이 있는냐?"(p.41) 아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은 모두 소설 『나무』에 잘 담겨 있다. 이 책을 아들에게 권한 것도 아빠의 충고를 줄이려는 의도였다. 아들이 어른이 되면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고집쟁이 작은나무가 성장하여 할아버지 나무의 충고를 이해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눈과 추위가 나무를 단련시키고, 꽃을 단련시키는 거지. 매화나무가 언제 내릴지 모를 눈과 추위가 두려워 제때 꽃을 피우지 않는다면 그 나무는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는 법이란다."(pp.41-42)
나 역시 계획하고 실행한 일들이 모두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낙담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만난 인연들이 모두 소중한 사람들로 내 곁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만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원수 같은 인연때문에 후회가 더 많았다.
“모든 꽃이 다 열매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열매도 처음 달린 게 끝까지 다 익는 건 아니란다."(p.120)는 대목에서 위안을 얻는 것도 그 때문이다. 피운 꽃이 모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만난 인연이 모두 사랑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무가 달고 있는 수많은 꽃 중에서 장마와 태풍과 열기를 견딘 꽃만이 열매를 맺는다는 진실 앞에서 어떤 무게감이 전해진다.
이제 막 뜨거운 여름을 지난 내 삶의 가을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이다. 할아버지 나무가 작은 나무에게 충고한 것처럼 모든 꽃과 열매를 안고 갈 수는 없다. 적당한 수의 열매를 위해 나머지 꽃은 떨어트리고, 나무의 온전한 삶과 커다란 열매를 위해서는 작은 열매를 제 손으로 떨어트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뿌리 없는 삶은 부평초처럼 떠돌게 한다. 사람은 사람에게 뿌리내려야 하고, 사람은 자신의 철학 속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단단하게 뿌리 내리는 삶의 지혜를 보여주는 나무로 밤나무가 있다. “밤은 먼저 뿌리부터 내리기 시작한단다. 그리고 그 뿌리에서 줄기가 올라오는 거야. 그러니 다른 나무보다 뿌리가 든든할 수밖에 없는 거지.
"(p.144) 밤나무는 새 생명의 단단한 뿌리를 위해 제 온 몸을 던진다. 첫해에 뿌리와 줄기를 뻗어 나무 모양을 갖춘 다음에도 씨밤이 썩지 않고 땅 속에 그대로 있단다. 그러다 다음해 줄기가 더 크게 자라야 할 때 껍질만 남기곤 자기 몸의 영양을 다 내주는 거야."(p.144-145)
그래 아들아! 난 문득 아들을 위해 온전히 내 몸을 썩혔는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아들을 위해 썩을 준비가 되었는지도 말이다. 단단히 뿌리를 내린 큰 나무로 자랄 것을 주문하면서도 정작 아들을 위한 영양공급은 없었던 게다. 아들의 뿌리를 위해, 아들의 줄기를 위해 나를 내던지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 올 가을엔 각종 시험에 지친 널 데리고 밤나무 숲부터 거닐 생각이다. 그리고 너의 뿌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너에게 물어 볼테다.
정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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