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화

틱낫한의 사랑법

미송 2018. 6. 29. 16:04


▲ 배유미, 빛과 어둠, 100.0x65.1cm, Oil on Canvas, 2016




 

뱀을 더 잘 잡는 법

 

 

 

<뱀을 더 잘 잡는 법을 아는 경>(이하 <뱀 잡는 경>으로 줄임. 숫타니파타의 사경蛇經과는 다른 것임-옮긴이)에서 부처님은 개념이나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실을 분명하게 보는 방법을 우리에게 일러주십니다. 나는 <금강경>을 읽은 지 몇 년 뒤에 <뱀 잡는 경>을 읽었는데, 부처님의 뗏목 비유와 '천둥치는 침묵'이란 말씀의 뿌리가 그 초기 경전에 있음을 알고 많이 행복해 했습니다.

 

<뱀 잡는 경>에 따르면, 다르마를 공부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잘못 이해할 경우 자기 자신과 남에게 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르마를 이해하는 것은 뱀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만일 뱀의 몸통을 손으로 잡는다면 뱀은 머리를 돌려 여러분을 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이 갈라진 나무 작대기로 뱀의 머리를 누르면 그 뱀은 아무에게도 상처를 입힐 수 없지요.

 

"온몸과 마음으로 다르마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너는 그것을 잘못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너와 남에게 많은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다르마를 공부할 때는 삼가 조심하여 몸과 마음을 한데 모아야 한다." 부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에는 해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논쟁에 이기거나 호기심을 만족시키려고 경을 공부하는 삶들이 언제나 있다. 그런 동기로 공부를 하면 가르침의 핵심을 놓치게 마련이다. 많은 고생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겠지만 별로 얻는 게 없고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중략]

 

<금강반야바라밀다경>에는 이 <뱀 잡는 경>의 구절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구절이 있습니다. "법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야 더 이를 말이랴." 비록 참된 다르마라 해도 그것을 움켜잡지 말고(스스로 떠나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불교 경전인 <아함경阿含經>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의 예가 기록되어 있지요. 부처님께서는 바이살리도성 가까운 곳에 혼자 안거하시기 전 한때의 덧없음과 몸의 불결함과 무아無我에 관하여 법어를 베푸셨는데 수도승 몇이 잘못 알아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 이 생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 모든 것이 불결하다. 그러니 마땅히 버려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부처님이 안거하러 떠나신 뒤 부처님이 설법하신 바로 그 절에서 자살했습니다. [중략] 

 

<뱀 잡는 경>에서 아릿타라고 하는 수도승은, 부처님께서 "감각의 쾌락이 수행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치셨다고 주장합니다. 벗들이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그는 자기 생각을 거두어들이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들으신 부처님께서 대중 앞에 아릿타를 불러 세우고 물으셨지요. "아릿타야, 내가 감각의 쾌락이 수행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는 말을 네가 했느냐?" 

아릿타가 대답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베푸신 가르침의 정신에 따르면 감각의 쾌락이 수행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나는 이 구절에 대해 오랜 시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배님들은 이 구절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조사도 해보았지요. 여러분은 경을 읽을 때 부처님의 전체적인 가르침과 함께 경의 맥락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그래야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릿타라는 사람이 매우 흥미로운 인격의 소유자여서, 부처님께서 6년 고행의 경험과 극기수련에 관해 말씀하신 것을 듣고 그렇게 이해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고행 또는 금욕주의가 깨달음을 얻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히려 당신의 몸을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셨지요. 그래서 우루벨라 촌 마을 사람들한테 우유죽과 다른 음식을 공양 받으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아름다운 아침과 깨끗한 물 한 잔을 즐길 줄 아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아난다와 함께 수리봉에 서서 눈 아래 펼쳐지는 논밭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아난다야, 누렇게 익은 저 벼들이 아름답지 않느냐? 수도승들의 법복을 저 모양으로 만들자." [중략]


우리 둘레에 있는 것들과 우리 속에 있는 것들을 즐기는 것이, 그것들이 본디 덧없는 것임을 알고 있는 한, 아무 문제 될 바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목이 마를 때 시원한 물 한 잔 즐거이 마시는 데 뭐가 잘못될 게 있습니까?  실제로 그것을 참되이 즐기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에 있어야만 합니다. 

 

꽃 한 송이가 시들어갈 때 우리는 울지 않습니다. 그것의 덧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만물의 덧없음에 대하여 깨어 있다면 수련할 때 우리는 덜 괴롭고 더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물이 덧없는 것임을 알면 그것들을 지금 여기에서 소중히 여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본디 덧없는 존재인 줄 알기에 지금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덧없음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덧없으니 그 어느 것도 즐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불자들이 있더군요. 해탈이란 모든 것에서 발을 빼는 것이고 그래서 아무것도 즐기지 않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처님께 꽃을 드릴 때 그분은 그 아름다움을 깊이 감상하시리라 고 나는 믿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아릿타가 몸과 마음의 건강함을 즐기는 것과 쾌감에 빠져드는 것의 차이를 분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중략]

 

불교 명상의 첫번째 상想은 '멈추어 고요하기' 요, 두번째 상은 '깊게 꿰뚫어보기' (위파샤나)입니다. 대승불교를 공부하면 '깊게 꿰뚫어보기'가 그 중심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살들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을 위해, 통찰을 얻고 변화를 이루도록 도움을 주는 구체적 수행법을 제시해 주십니다. 불교의 초기 가르침인 <뱀 잡는 경>을 공부할 때 우리는 그것이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안내하는 훌륭한 입문서임을 알게 됩니다. 그 열려 있는 자세, 견해에 집착하지 않는 성격이 대승불교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으로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대승 사상의 씨앗이 불교의 초기 가르침 속에 이미 들어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틱낫한의 사랑법 41~49쪽

 

* 법(法)은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의 번역으로서, "지키는 것 지지하는 것" 이 원뜻이다.


20120215-20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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