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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풍크<내가 에리히프롬에게 배운 것들>中

미송 2021. 1. 23. 14:40

"한 사람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결코 상대방에게 달려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아닌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 그것을 지향하려는 능력에서 좌우된다."

 

스스로 연구하고 스스로 스승을 찾고 스스로 수행을 하는 모습에서 생이지지(生而知之)하는 모습이 보인다.

 

-라이너 풍크<내가 에리히프롬에게 배운 것들>.

 

**생이지지(生而知之)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알다. 는 대명사로, ‘그 어떤 것을 가리킨다.

공자(孔子)가 말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사람이 최상이요, 배워서 아는 사람이 그 다음이며, 막힘이 있어 배우는 것은 그 다음이다. 막힘이 있어도 배우지 아니하는 것은 최하이다. 2016-07-16

 

 

책 속으로

 

방어는 사실 공격이며, 의무는 복종에 불과하고, 도덕은 순종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모르는 한, 내가 나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평판이 인품과 같지 않다는 것을, 역사는 승리자가 쓰는 왜곡에 불과함을,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오만의 극치임을, 지나친 탐욕과 집착은 결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내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권력에 눈이 어두워 정의, 진리, 사랑을 발로 짓밟는 사람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떠받드는 무리가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현대 산업 사회가 그토록 떠벌리는 사랑과 존중이 소유와 소비에 눈이 먼 시장 전략일 뿐이라는 것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싸구려 상품으로 만들 뿐이다. 내가 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 세상의 보이지 않는 측면을 분석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내가 무슨 의도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아닌 나’로 탈바꿈하는지 모르는 마당에 우리는 물을 수밖에 없다. 내가 아는 나는 정말 나인가? -prologue 중에서

우리의 대화는 프롬의 해박한 지식 덕분에 늘 활기가 넘쳤다. 그는 역사, 정치, 사회, 정신분석 등의 전문가들과 만나 쌓아 온 경험들을 토대로 대화를 막힘없이 풀어 주곤 했다. 더욱이 잊을 수 없는 것은 프롬의 위트다. 프롬은 재밌는 발상이 떠오르면 꼭 내게 들려주고는 예의 그 환한 미소를 짓곤 했다. 대화의 내용이 무엇이건 프롬이 만들어 내는 직접적인 만남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프롬과의 만남을 되돌아보면서 분명해지는 점은, 그가 나의 감성과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충동을 어루만지면서 나의 자아는 하루가 다르게 커 갔다는 사실이다.

-chapter 1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의 시작 중에서

프롬에게 체벌은 권위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유물이었다. 권력을 행사하는 데 필요하다면 물리력을 동원하겠다고 말하는 권위주의 사회에는 이른바 암묵적인 ‘상식’이 존재한다. 권력에 복종하는 온순한 시민을 키워 내고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일 뿐, 누구를 해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이 바로 그 ‘상식’이다. 개인이 합리화에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틀에 박힌 상식으로 포장된 이데올로기에 매달리는 것이다.
-chapter 3 내 욕망은 어디에서 왔는가 중에서

그들이 내세운 전략에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공감을 얻지 못했을 때 그들은 그저 패자가 되고 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물론 이런 정체성의 위험을 벗어나려 할 것은 분명하다. 그 방법이 처음에는 자신의 정체성 상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은 뛰어나다고 자위하는 나르시시즘적인 태도로 나타난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사소한 것에서조차 그는 곧 자신이 성공에 목말라하고,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자신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매출은 갈수록 보잘것없어지고, 성과급은 점점 더 줄어들며, 고객들은 경쟁사에게 빼앗기고, 자식들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만 같다. 이런 경험이 쌓여 가기 시작하면 자신감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chapter 5 나를 찾기 위해 지금 당장 버려야 할 것들 중에서

인간을 태어나면서부터 ‘원초적인 나르시시즘’을 가진 수동적 젖먹이로 보았던 프로이트와 달리, 프롬은 인간이 ‘일차적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 자신의 힘으로 현실과 맞서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감지하고 운동하며 자신의 감정으로 관계를 일구어 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chapter 4 나는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중에서

 

출판사서평

 

왜 지금 에리히 프롬인가?


모든 게 범람하는 세상이다. 각종 콘텐츠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재차 공급되고, 이미지가 흘러넘치며, 그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과잉이다. 그 안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노력은 제 자신조차 과잉된 이미지 속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여피족, 보보스족 등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이름이 붙는 마당에 입고, 쓰고, 먹는 것은 모두 나라는 인간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나 자체이다. 이제 개성은 ‘몰개성’과 다른 말이 아니다. 그야말로 ‘잇 아이템’으로 가득채운 ‘자아 쇼핑’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감을 잃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더 과잉된 세상 속에서 허우적댄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이 악순환은 끝나지 않는다.

 

책 『내가 에리히 프롬에게 배운 것들』은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이 이루어 온 평생의 연구를 집대성하며 자기 자신과 오롯이 만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그와 마지막까지 함께한 제자 라이너 풍크의 내밀한 기록은 자기분석에 있어서 에리히 프롬의 사상과 학문이 가진 탁월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 자기분석 여행에서 우리는 자신의 치부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감수했을 때 우리는 인정하기 싫었던 치부에 가려져 있던 자신의 생산적 에너지와 마주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이 이끄는 이 여행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에리히 프롬과의 만남으로 인생이 바뀐 한 정신분석학자의 내밀한 고백

 

책은 라이너 풍크가 프롬의 마지막 8년을 함께하며 배운 자기 자신과의 만남에 이르는 길을 내밀히 기록하고 있다. 스승에 대한 저자의 존경 어린 시선을 쫓아가는 일은 프롬의 학문은 물론 그 배경이 되는 프롬의 삶까지 세밀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라이너 풍크는 프롬과의 만남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고백한다. 이는 사회라는 테두리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속에서 인간이 방해받지 않고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프롬의 학문이 보여 주는 탁월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프롬은 그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고, 타인과의 만남에 있어서도 진정 어린 모습을 보여 주었다. 프롬 자신이 독일계 유대인이라는 장벽을 뛰어 넘는 자기실현을 보여 준 것이다. 이렇듯 삶이 곧 사상이었던 프롬과의 만남은 그의 내면이 생동하고 있음을 깨우쳐 주고, 자신의 내면과 오롯이 만나고 싶게 했다.

2) 에리히 프롬의 자기분석이 제기하는 2가지 문제
프롬은 지난 20세기를 이끈 최고의 사상가로 평가 받고 있는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이다. 그는 인간의 잠재의식 속 뒤틀린 욕망을 다스리고 아직 발현되지 못한 가능성을 펼치게 하는 데 평생을 바쳐 연구했다. 프롬의 자기분석은 지금껏 자신에 대해 당연하게 여겨 온 것들을 문제 삼는 데서 출발한다. 내가 알고 있는 나, 그 안에 숨어 있는 욕망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때 프롬이 제기하는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 부를 향한 끝없는 열망, 공황에 가까운 휴대 전화에 대한 집착, 명품을 향한 소유욕 등을 통해 인간 욕망의 근원이 곧 사회에서 출발함을 보여 준다. 책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보이지 않는 측면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내가 욕망하는 것들의 가치’를 자문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이성적으로 보이는 것에 뒤틀린 욕망이 내재한다고 지적한다. 프롬은 이를 ‘일상성의 병리학’이라 설명하며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라고 그걸 바른 행동이라 할 수 없듯,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형태의 심리 장애를 앓고 있다고 그게 병이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책은 지극히 당연하고 이성적인 것이 우리의 내면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음을 강조하며, 지극히 당연한 ‘나’로 받아들이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감춰진 욕망과 마주하고 해소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라고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을 바로 보려는 자발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3) 나를 아는 것은 모두를 아는 것이다
책은 이렇게 외부와 내면의 현실을 둘러싼 기만과 속임수를 밝혀내며 온전한 자신과의 ‘직접적인 만남’으로 이끈다. 자기분석이 이 같은 거짓을 밝혀냄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해 환멸과 실망을 느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와 세상이 처한 현실을 직시했을 때, 그제야 내 안에 존재하는 고유한 힘이 고개를 들고 기지개를 켠다.

 

프롬이 ‘일차적인 성향’이라고 칭하고 확신했던 인간의 고유한 힘은 ‘성장’을 향한 열망이다. 책은 비오필리에(생명에 대한 사랑), 생산적 성격 지향성 등의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이러한 일차적인 성향을 막힘없이 꽃피우는,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행복해질 수 없다.

 

직접적인 만남으로 가는 길은 곧 직접적인 만남이 펼쳐지는 길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직접적인 만남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대신할 수 없다. 지식이나 반성 혹은 담론 등에 그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오직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나아갈 때에만 직접적인 만남이라는 목표에 이를 수 있다. 프롬 자신이 선호했던 직접적인 만남에의 길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l 프롬은 환자나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정신분석 치료를 하면서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자신의 여러 측면을 만나곤 했다.

 

l 사랑은 직접적인 만남을 이루는 소중한 기회이다. 프롬은 사랑을 통해 자신의 감각을 키우고 실행에 옮겨 왔다. 프롬에게 살아 꿈틀대는 사랑이 없는 삶은 눈을 잃어 앞을 볼 수 없는 인생과 같았다.

 

l 프롬에게 정치 활동이란 인간의 성공을 경제와 사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이를 위해 프름은 상존하고 있는 위험 요인들을 항상 주목하고 경계하려 했다. 그래서 직접적인 만남에 이르는 길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프롬과 만나고 난 뒤면 올바른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인간 프롬의 열정을 입을 모아 증언하게 됐다.

 

l 친구, 친지, 학자들과의 활발한 만남.

 

l 철저한 자기분석과 직접적인 만남을 위한 사전 훈련

 

여기서 말하려는 건 바로 마지막에 언급한 사전 훈련에 관한 것이다. 특히 프롬의 유고 중에는 이 부분을 다루고 있는 것이 많다. 프롬의 연인이자 동료였던 카렌 호니는 1942년에 ‘자기분석’을 다룬 책 한 권을 펴냈다. 이는 자신이 행한 ‘자기분석’의 경험을 토대로 프롬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실린 프롬의 편지에도 그가 아침저녁으로 한 ‘훈련’이 언급되어 있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매일 적어도 아침에 20분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20분씩 집중력 훈련을 하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프롬이 연습과 자기분석에 관한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강조한 것은 규칙적인 실천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명상과 집중력 훈련뿐만 아니라 자기분석도 규칙적으로 실행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그저 ‘기분이 내켜서 하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볼 때 자기분석의 과정이 강제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마지못해 의무를 다하듯 불편한 마음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특정 목표를 이루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자세를 갖는 게 좋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이런 과정은 해방감과 함께 기쁨을 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통과 슬픔, 두려움, 환멸 등 감정을 겪게 되더라도 말이다.

 

그럼 프롬이 말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전 훈련에는 어떤 게 있을까? 자기 분석 입문으로 프롬이 추천하고 있는 것은 심신이 평안한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느껴 보는 ‘집중력 훈련’이다. 이 훈련은 눈을 감고 앉아 긴장을 풀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얀 평면을 떠올려 본다. 그 사이 자꾸 끼어드는 장면이나 생각을 몰아낸다. 그런 다음 자신의 호흡을 그대로 느껴 본다. 자신의 숨결을 느끼면서 그에 관해 생각하거나 강제로 바꾸려고 하지 말라. 그저 편안하게 자신의 숨결을 따라가라.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감지하라.

 

사람들은 종종, 불과 몇 초 만에 호흡을 느끼는 것을 그만두고 잡념에 빠져 들곤 한다. 하지만 호흡에 집중이 잘되면 잘될수록 전체 과정을 유기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포롬이 즐겨하는 또 다른 집중력 훈련으로는 사를로테 젤버에게서 배운 운동이 있다.

 

긴장을 푼 자세로 눈을 감는다. 양손은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마치 앉은 자세의 파라오 조각상과 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천천히 한쪽 팔을 45도 각도가 되도록 들어 올린다.

 

보통 우리는 어떤 목표를 가리키기 위해 팔을 든다. 하지만 눈을 감은 상태에서 팔을 아주 천천히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리는 것은 오로지 운동의 과정을 경험하기 위한 것이다. 일종의 기예인 태극권을 응용한 자세도 훌륭한 집중력 훈련이 될 수 있다. 프롬은 이를 노년에 카탸 텔리코바에게서 배웠다.

 

프롬이 집중력 훈련 다음으로 꼽는 사전 훈련은 명상이다. 집중력 훈련은 프롬에게 명상에 이르는 직접적인 길이기도 했다. 프롬은 명상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수행자의 고유의 힘을 감지하기 위해 정신과 몸의 긴장을 풀고 가벼운 최면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프롬은 이런 명상법은 자기 암시적인 기교를 쓴다하여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반면에 프롬은 불교에서 행하는 참선을 무척 높게 평가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는 냐나포니카에게서 배운 참선으로 명상에 전념했다. 참선은 ‘묶여 있지 않은 상태’, 곧 해탈이라는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것은 탐욕과 증오, 환상 등을 극복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깨닫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같은 명상은 인간의 영혼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활동이다. 이는 내면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람만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집중력 훈련과 명상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이를테면, 요가나 참선, 언어 명상, 긴장 풀기 훈련 등이 그것이다. 긴장 풀기 훈련으로는 알렉산더나 야콥슨 혹은 펠덴크라이스 등이 대표적이다. 어떤 방법이든 자기 분석에 도움이 되는 것을 택하여,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리히 프롬

 

지난 20세기를 이끈 최고의 사상가로 평가 받고 있는 사회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이다. 프롬은 인간의 잠재의식 속 뒤틀린 욕망을 다스리고 아직 발현되지 못한 가능성을 펼치게 하는 데 평생을 바쳐 연구했다. 이 책의 저자인 정신분석학자 라이너 퐁크는 프롬과 마지막까지 함께한 제자로, 원래 신학과 윤리학을 공부했다. 그런 그로서는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역사를 통해 이미 파괴적인 인간과 세계를 뼈저리게 경험했을 독일인, 그것도 유대인의 프롬이 신에 대한 믿음 없이 인간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과감히 논쟁을 하기 위해 프롬을 찾아간다. 이렇게 만남은 시작되었다.

 

라이너 퐁크는 프롬과의 이 만남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고백한다. 이는 사회라는 테두리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속에서 인간이 방해 받지 않고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프롬의 학문이 보여 주는 탁월성 때문만은 아니다. 프롬은 그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고, 타인과의 만남에 있어서도 진정 어린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삶이 곧 사상이었던 프롬과의 만남은 그의 내면이 생동하고 있음을 깨우쳐 주고, 자신의 내면과 오롯이 만나고 싶게 한 것이다.

 

책은 라이너 퐁크가 프롬의 마지막 8년을 함께하며 배운 자기 자신과의 만남에 이르는 길에 대해 내밀히 기록하고 있다. 바쁘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낙오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조차 힘겨운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어떤 가능성을 가진 사람인지, 지금껏 날 괴롭혀 온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는 일은 세상 속에 던져진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닌, 꿋꿋이 세상 위에 설 수 있는 힘을 준다. 우리는 라이너 퐁크의 스승에 대한 애정 어린 고백과 마주하는 동시에 그 힘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