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섹스의 추억 / 최영미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창작과 비평사, 1994)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80년대를 마감하는 의미를 지녔다. 최영미의 시는 쉽고 솔직하게 읽혀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를 써내기 위해 시인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는가는, 시를 통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이념이 사라진 1990년대의 환멸을 성적인 언어 등의 도발적 언어로 표현,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끌어냈던 여성시인으로 교과서가 없는 시대를 고투하며 건너온 젊은 영혼의 편력을 도시적 감수성으로 노래했다. 청춘과 운동, 사랑과 혁명 같은 이질적 요소를 구체적 삶 속에서 융합시킨 시를 쓰고 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는 이념의 홍수가 지나간 후 그에 가담했던 세대의 과감하고 솔직한 시어들이 눈길을 끈다. 이것이 '마지막 섹스'라든지 '컴퓨터와 씹할 수 있다면' 등의 시인의 모던한 기질과 도발적 언어에 힘입어 1980년대의 사랑과 아픔과 상처와 위선, 부딪치며 살아남은 자의 깨어짐이 날것 그대로, 때로는 비틀려 더욱 투명해지는 시어들로 새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튀고 거친 표현은 시인이 말하고자는 본질이 아닐 것이다. 위의 시에서 나타나 있는 '더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은 1980년대의 민주화 과정에서 군부독재의 암울하고 힘든 현실속에서도 봄이 오는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직선적인 시간이라는 제약속에 잃어가는 것들, 그것으로 인한 무력감. 하지만 현실엔 하늘이라는 무심한 방관자가 현실을 덮는다. 80년대가 지나가고 90년대를 거치며 그는 많은 것을 회의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것들이 있다. 그의 글은 변한 것을 속속들이 드러냄과 동시에 아직도 그들 세대의 마음 속에 변치 않고 남아 있는 그 어떤 갈망을, 그로 인한 아픔과 우수를 어루만져 준다. 시인의 시가 읽는 이에게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강렬하게 흡입되는 것은, 그의 시가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일상의 진솔함에서 솟구쳐나온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사랑과 운명, 그리고 근원에 대한 질문은 최영미 시의 근간을 이루며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가 되어왔다. 이제는 오십을 바라보는 시인이 쓸 새로운 시집에서 이 추억은 어떤 형태로 그려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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