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공광규<적당한 거리>

미송 2009. 8. 21. 18:12

적당한 거리 / 공광규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수목정원 한쪽
바위에 기댄 소나무 허리에 흉터가 깊다
일생을 기대보려다 얻은 상처인 것이다
일곱 가지 보물로 지은 법당이 있고
한량없는 하늘 사람들이 산다는 도솔천
지장보살도 어쩌지 못하는 관계가 있나 보다
내원궁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진달래꽃과 생강나무 꽃이 거리를 두고 환하다
당신과 나, 적당한 거리가 도솔천이다.

 

◆ 시 읽기 ◆

 

선운사 도솔암을 찾은 시인은 내원궁 수목정원 한쪽, 소나무는 홀로 당당히 서지 못하고, 일생을 바위에 기대고 살아보려다 깊은 흉터를 얻었음을 본다. 그리고 내원궁 계단 옆의 진달래꽃과 생강나무 꽃이 환하게 핀 것은 각기 홀로서기가 된 두 꽃나무가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을 본 것이다.

 

어떤 사물의 어떤 관계이든 모든 관계는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알맞음, 불안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더욱 그렇다. 홀로서기가 되지 않은 사람살이는 부딪침 많아 상처가 생기고 흉터가 남기 마련이므로 힘들고 고단한 사람살이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삶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다.

이 시의 결미에서 시인은「당신과 나, 적당한 거리가 도솔천이다.」라는 확고한 결론을 보여준다. 불교에서 유래된 도솔천이란 육욕천의 넷째하늘, 수미산의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이 되는 곳에 있는 내외(內外)의 두 원(院)을 일컫는 곳으로써, 內院은 미륵보살의 정토이며, 外院은 천계대중이 환락하는 장소라고 한다. 도솔천은 유토피아와도 같은 뜻이다.

 

알맞다는 것, 적당하다는 것은 흑과 백의 이분화 논리가 아니라 중용의 의미와도 같은 이치다. 이는 경계가 없는 경계의 조화로움이 아니던가. 우리들의 이상향인 유토피아적 삶이란 소통과 중용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함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잠언적 주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 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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