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공광규<조성호의 그림들>

미송 2009. 8. 27. 07:56

조성호의 그림들/ 공광규


[서양 양식과 동양 정신의 융합]


불암산과 수락산을 다녀오던 저녁, 종암경찰서 뒤에 있는 조성호의 화실을 들렸다. 산봉우리가 부처를 닮아 옛날 이름이 부처바위산이었다는 불암산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초가을이었다. 바위산 옆구리께는 특히 단풍이 더 붉었다. 단풍은 햇빛이 들지 않는 쪽이 더 붉고 아름다웠다. 바위산이 햇빛을 잘 받는 양지보다 음지쪽에 더 마음을 쓰고 있어서 일 것이다.

가을 산의 단풍은 잎에서 잎으로, 나무에서 나무로 마음이 옮겨 붙듯 옮겨가는 불같았다. 불암산에서 수락산으로 등산로를 따라가는데, 수락산의 싸리나무숲이 노랗게 단풍이 들어 환했다. 불암산 신갈나무숲 단풍이 불길처럼 수락산 싸리나무숲에 옮겨 붙어 환하다는 생각을 했다. 수락산에서 튀어나온 까마귀 한 마리가 검은 비닐봉지처럼 떠서 불암산으로 건너갔다. 아마 까마귀는 수락산 단풍에 산불이 난 줄 알고 놀라서 불암산으로 옮겨간 것이리라.

산에서 내려와 조성호의 화실에 들렀을 때, 불암산과 수락산의 가을이 화실 캔버스 위에 옮겨 붙고 있었다.
화실을 방문한 필자에게 조성호가 맨 처음 이젤에 옮겨놓은 작품은 고창 선운사 입구의 느티나무가 있는 30호와 50호 그림이었다. 같은 배경을 캔버스의 다른 크기로 변주한 오래 산 느티나무가 작은 냇물 쪽으로 몸을 기울인 작품이다. 필자도 두어 번 여행을 한 적이 있는 고창의 선운사 입구의 느티나무 그림은 가을 단풍을 머리에 곱게 이고 있다.

선운사 입구의 천변 느티나무를 만나려면, 우선 <선운사 동구>라는 서정주의 시를 만나야 한다.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시비에 새겨진 시를 읽어가다 보면 충청도 청양의 걸걸한 조성호의 냄새가 난다. 지금은 서정주가 묵으며 글을 썼던 동백장여관도 없고, 막걸리는 팔지언정 육자배기를 부를만한 주모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선운사 입구에서 곱게 타는 듯한 단풍을 머리에 이고 있는 느티나무는 한때 육자배기를 부르며 화사한 인생을 살았던 주모들의 환생이리라.

조성호는 선운사 입구의 오래된 가을 느티나무를 통해 화사한 민족풍경을 복원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전국 어디서나 잘 자라며, 사찰의 입구나 마을의 입구에서 마을 사람을 포함해 가장 나이가 많이 먹은 자세로 산하를 지켜준다. 우리는 이 천변 느티나무 숲을 지나야 선운사 부처님을 뵙고 동백꽃을 보고 수선화를 보고 상사화 군락을 만나볼 수 있다.

선운사에서 시작된 아름다운 단풍은 20호의 태백에서 그린 그림과 30호의 설악산 대청봉이 멀리 보이는 내등령, 80호의 도봉산, 20호의 일본 도야마에서 다까야마 가는 길에 만난 설산 그림에도 내려와 있다.

조성호는 이번에도 바위산 그림을 화단에 제출한다. 80호의 삼각산, 설악산 소청산장에서 그린 그림, 30호 도봉산, 50호의 속초가 멀리 보이는 설악산 등이다. 삼각구도의 연쇄인 바위산 그림에서 웅혼한 기상이 느껴진다. 이러한 그림들은 자연사실의 단순한 재현을 넘어 창작자의 고절한 정신의 조형화라고 할 수 있다. 경치 밖의 뜻, 뜻 밖의 묘함을 일으키고 있다.  

조성호의 그림에서 높고 깨끗한 흰 바위는 어둡고 무거운 색조에서 튀어나온다. 높고 깨끗한 흰 바위는 동양정신의 정수로 상징된다. 그러므로 조성호는 유화 도구를 사용한 기법과 채색, 구도에서 서구회화의 정통 풍경화를 고수하면서 화폭에 동양 산수의 정서를 담아내는 개성적 화가인 것이다.

우리나라 산악 자연미의 핵심은 암봉과 암릉이다. 울창한 수림에서 솟아난 대자연의 웅장하고 호방한 산세를 암봉이 자세를 잡아 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세계 종교의 성지가 돌이 많은 지형이나 바위산인 경우와 같다. 암봉은 하늘 다음으로 높은 곳이며, 영성이 깃들인 바위산에는 정신적 수도 도량과 기도처가 많다. 조성호는 울창한 수림에서 솟아난 헌걸차고 수려한 바위산을 화폭에 담으면서 암봉을 마주하여 근심을 잊고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며 호연지기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조성호는 몇 편의 설산 그림도 선보이고 있다. 10호와 30호의 네팔 히말라야, 50호의 설악산 울산바위, 20호의 일본 도야마, 20호의 일본 도야마, 그리고 일본 다까야마 호텔 뒤, 20호 일본 도야마와 다까야마 사이의 산 등이다. 조성호의 그림에서 설산의 고결한 맛은 바위와 어울릴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설산은 밝은 지혜와 맑은 수행을 상징한다. 본격적이 수행을 결심한 석가가 왕자의 옷을 버리고 헤어진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수행승 아라라를 만나 절대경지를 향해 고행했던 곳이다. 아라라는 당시 최고의 선정가였다. 석가는 거기서 6년 동안 고행한 끝에 법을 증득하고 스승인 아라라와 함께 대중들을 가르친다.

우리의 현대 시인 황지우는 시 <겨울산>을 통해 설산을 이렇게 형상화하고 있다.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 황지우 <겨울산> 전문


기회주의자들이 들끓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이 시의 내용은 엄동설한의 세월을 견디는 사람에 비유된다. 현실에 대응하는 조성호의 정신이 설산 그림의 경치 밖의 의미로 캔버스 위에서 발현된다.

조성호의 산 그림은 중국 북송의 산수화가이며 화론가였던 곽희가 언급한 산수화론과 겹친다. “산은 큰 물체이다. 그 모습을 솟아올라 빼어난 듯해야 하고, 거만하게 높은 듯해야 하며, 널찍하게 툭 터져 있는 듯해야 하고, 발을 쭉 뻗고 앉은 듯해야 하며, 벌리고 앉은 듯해야 하고, 두툼하면서 원만한 풍채가 나타나는 듯해야 하며, 웅장하고 호방한 듯해야 하며, 신기가 솟은 듯해야 하며, 엄하고 무거운 듯해야 하며 …… 이러한 것이 산의 큰 물체다운 모습이다.” 조성호의 산 그림들이 그렇다.        

이번에 출품되는 조성호 그림의 장소적 공간도 넓어졌다. 국내의 자연에서 네팔 히말라야, 일본 도야마, 그리스의 미코노스와 맛데오레, 산토리니 등에서 채집한 대상들도 여러 편 보인다. 외국 풍경화 가운데 여러 편이나 되는 산토리니 항구의 연속 작품들이 흥미롭다. 하늘-건물-암석-건물-바다라는 복층구도에서 바다와 건물 사이에 있는 바위 벼랑의 색깔이 여러 가지로 변화하면서 그림 전체의 조화를 주도한다. 오랜 시간 대상을 주시하면서 여러 개의 그림을 복제하듯이 그려내는 동안 태양의 밝기와 화가의 심리적 변화에 의하여 창작자의 심리가 색조에 투영되는 것이다.

이번에 출품되는 조성호의 그림을 인상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첫 번째 특징은 여전히 회화의 대상으로 산을 구상화한다는 점이다. 조성호는 여전히 산의 화가이다. 그리고 구상화를 고집한다. 그동안 산을 대상으로 대형의 그림을 그렸으며, 이번에 출품되는 작품에서도 산을 주요 제재로 그린 대형작품들이 눈에 띤다.

두 번째 특징은 그림에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인물의 화가가 아니라 자연의 화가이다. 거대한 자연 풍경 대상을 캔버스에 축소하다 보니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림에서 드물게 등장하는 건물이나 배의 경우도 경계를 세밀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사물간의 경계를 분명히 하며 대상을 오밀조밀하고 섬세하게 그릴 경우 사실에 집착해야하므로 상상의 서정을 잃어버릴 수 있다.

세 번째 특징은 같은 대상을 여러 번 반복 변주하며 그린다는 점이다. 대상의 변주를 통해 끊임없이 작가의 의식을 확인한다. 산 그림에서는 산의 모형을 단순 변주하거나 연쇄 변주를 하며, 대상을 여러 위치에서 직관하면서 여러 개의 그림을 그려내기도 한다.

그의 화실에서 그림들을 구경하고 난 후에 지리산 천은사와 화엄사, 구례 죽림정사, 담양의 소쇄원과 환벽당, 식영정을 다녀오고, 삼각산을 다녀왔다. 여행이나 산행 중 내내 조성호의 그림을 생각해봤다. 조성호의 화실에서 이젤에 올라온 그림들을 기억으로 종합해보면, 그동안 주로 산을 대상으로 그려온 조성호가 좀 다른 방향을 찾기 시작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조성호의 그림이 논리적, 이성적, 수학적 형식에서 감각적, 감성적, 생명적 형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감지된다. 선운사 단풍 그림과 양평 용문산을 배경으로 하여 화사한 봄 풍경을 그린 그림, 그리스 여행에서 채집한 그림들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그동안 바위산 중심의 기하학적 구성과 선의 차가운 형식과 무거운 색조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선과 강렬하면서도 따뜻한 색감의 온화한 형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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