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도올의 논어이야기와 함께하는 도올논어<1> 2000년 10월
<孔子의 생애와 사상> 中에서
소크라테스 부인과 공자의 부인
소크라테스의 부인은 과연 악처였을까? 소크라테스의 부인이 악처였다는 사실을 통해 반사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철인으로서 위대해졌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공자 삼대에 걸친 가족사의 비극은 공자 삼대를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어떤 반사적 장치였을까? 나는 공자를 둘러싼 이와같은 끝도없는 이야기들의 실상을 파헤치려는 노력 그 차체의 허구성을 말하려는 것이다. 즉 <세가>의 기록이든, <단궁>의 기록이든, <장자>의 기록이든, 이 모든 것이 사실의 르뽀가 아니라 어떤 일정한 양식의 목적론적 체계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즉 이러한 기록의 사실여부에 대한 추정에 앞서 근원적인 어떤 인식론적 반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단궁>의 상기의 기록은 조례를 둘러싼 어떤 양식적 논의 속에서 공패미리의 인물들이 하나의 극단적 구현체로서 설정된 것일 뿐이다. 진위의 논변 그 자체가 무의미할 뿐이다.
나는 세칭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경우, 반드시 그 정체를 폭로하고 그 가면을 벗겨내려고 그 신화적 의미를 깍아내리는 짓을 통해서만 그들의 실상이 드러나고 실증사학의 정신이 성취된다는 그러한 바보스러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비신화화의 목적이 저속화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파헤치고 있는 것은 단 하나의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공자라는 인간, 그 인간의 삶과의 만남이다.
예수의 방귀
기독교인들에게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 그들을 분개할 것이다. 그 질문자체가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가 너무도 인간적일 수 없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는 분명 상상속에 날조된 인물일 수밖에 없다. 가버나움의 시문 베드로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하고, 예루살렘의 타락한 성전을 뒤엎어 버리고, 가롯 유다의 오해속에 로마병정에 팔려 넘김을 당하고, 십자가라는 형벌속에서 죽고, 다시 돌무덤을 열고 부활의 영광을 보인 그 예수, 벤허와 같은 수없는 당대의 인물들이 그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을 그 예수의 역사적 실존성을 거부하는 사태를 용인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성령스러운 빛의 화현이었던, 죽어도 죽지 않고 부활하는 로고스였던지 간에, 그 예수가 역사속에 실존한 역사적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기독교인들은 동시에 분명하게 나의 질문에 대답하여야 한다.
"예수는 방귀를 뀌었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은 "역사적 예수를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그 아무도 던지지 않는 질문이다. 그러나 지금 인간공자를 말하려는 나에게 있어서는 예수가 방귀를 뀌었냐는 이러한 질문처럼 심각한 철학적 질문은 없다. 예수가 사람이라면 분명 똥도 누었을 것이고, 방귀도 뀌었을 것이다. 그가 방귀를 뀌었다면 어떤 냄새가 났을까? 지금 중동사람들이 올리브 기름을 잔뜩 먹고 어떤 퀴퀴한 내음새나는 종류의 방귀를 뀌었을까? 예수는 하루에 몇끼의 음식을 먹었을까? 술(포도주)은 많이 먹었을까? 그는 취한 적이 있을까? 그는 막달라 마리아와 동침한 적이 있을까? 그의 일상적 삶의 행위방식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그는 완벽한 금욕주의자였을까?
아주 끝없이 하찮은 질문같지만 최소한 내가 말하는 인간은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인간이다. 바로 우리와 같은 동일한 일상성속에서 모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그러한 인간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자의 일상적 삶에 관한 기록을 전달하는 모든 문헌이 그 일상적 현실감각을 결하는 어떤 양식이나 케리그마의 소산이라는데 그 근원적 문제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끊임없이 우리의 인식론적 반성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논어>는 유교의 최대 이단서
공자는 과연 어떤 삶을 산 사람이었을까? 그 삶의 과정을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문헌인 <공자세가>가 결코 이러한 문제에 시원한 대답을 제공할 수 없다면 과연 우리의 다음의 접근방식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사기>위에 다른 문헌이 있는가? 있는가? 있다! 그럼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논어>라는 문헌인 것이다.
공자는 <세가>속에도 <예기>속에도, 여타의 어느 문헌 속에도 없다. 공자는 오직 <논어> 속에만 살아 있다. 나는 <논어>이상의 진실한 공자에 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 <세가>도 결국 <논어>의 논과 어를 설명하기 위하여 역사적 사건들을 배열했을 뿐이다. 논어를 역사적으로 배열하기 위하여 그럴듯한 역사적 사태들을 구성해낸 것이다. 논어 속에는 공자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논어 속에만 공자의 숨결이 생동치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세가의 기록대로 BC 551에 탄생했는가? <춘추공양전>이나 <곡양전>의 기록대로 노양공이십일년(BC 552년)에 탄생했는가? 이러한 논쟁은 학자들에 따라 끊임없는 고증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이러한 논의가 전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공자가 언제 태어났든 공자의 이해나 공자를 둘러싼 역사의 이해와 무관한 사태라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가능한 사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실이 <논어>의 기록과 무관한 사태란 것이다. 논어가 말하는 공자의 사실만이 궁극적으로 공자의 사실인 것이다. 우리는 공자를 말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논어 그 하나만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주장은 또 다시 인식론으로 중대한 문제를 노정시킨다. 우리의 문제의식은 또 다시 논어라는 문헌 그 자체의 문제로 집중되지 않을 수 없다. 논어 그 자체가 공자의 삶의 직접적 전달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자가 직접 쓴 것도 아니고, 공자의 직전 제자들이 편찬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공자 사후에 오랜 세월에 걸쳐 공자문인들의 다양한 류파에 의하여 성립한 단편들이 집적된 것이다. 그렇다면 논어가 세가나 여타문헌에 비해 그 오리지날리티를 보장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매우 희박해진다. 어찌 논어만이 공자의 진실한 모습을 전달한다고 호언할 수 있단 말인가? <논어>도 공자가 죽은 후 삼사백년 후에 날조된 것이라고 한다면?
<논어>는 유교의 최대의 이단서일 수도 있다. <논어>야말로 성인공자의 최대의 걸림돌일 수 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논어>가 유교의 이단이라 함은, 유교를 국가종교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 유교를 절대적인 권위체계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논어>의 정직하고 비권위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은 이단으로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논어>가 성인 공자의 걸림돌이라 함은, 공자를 성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논어>속의 너무도 인간적이고 변화무쌍한 희노애락의 공자상은 성인화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논어>에 있어서 처럼 인간 공자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펼쳐진 문헌은 그 유례가 없다. <논어>는 인류문명사의 한 축복이다.
논어는 분명 공자사후에 제자들의 활약으로 분기되어나간 여러 학파들의 전승, 또 공자를 흉내내는 유사집단들에게 화제가 된 전승등을 통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집적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현존하는 논어 텍스트는, 공관복음서의 "原마가자료" (Ur-Markus, 마태 누가에 공통되는 마가 자료)나 "Q자료"와 같이, 어떤 공자의 생생한 모습을 전달하는 초기 자료, 즉 이미 공자의 생전에 기록되었을지도 모르는 원자료들이 상당부분 그 기저에 남아 있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공자는 천민출신의 "개비"적 인간이었지만, 그의 최대의 강점은 문자를 활용하는 능력과, 문헌을 다루는 실력에 있었다. 그의 제자집단이 강력한 유대감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문자적 표현의 학습과정에서 획득되어진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문아한 측면을 가장 잘 계승한 제자는 "안회"였다. 그러나 안회는 불행히도 장년의 나이에(나는 안회의 죽음의 나이를 30세 전후로 보지 않고, 40세 전후로 본다),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만약 안회가 공자 사후에 장시간 살아 남았더라면, 오늘 논어의 모습은 보다 전일하고 체계적인 성격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안회의 요절은 공자에게 저주이자 축복이었다. 안회가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논오는 안회의 인식의 울타리에 갇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안회의 요절은 공자를 안회의 인식의 울타리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러나 논어에는 분명 안회의 오리지날한 기록의 파편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공자와 자로와이 대화는 그 생생한 캐릭터의 모습과 내면적 심성에서 북받쳐 우러나오는 거짓없는 진실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아마도 공자와 자로의 대화의 대부분은 안회에 의하여 기록된 매우 초기의 파편에 속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논어라는 텍스트의 경우 정확하게, 공관복음서 문제와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논어는 공자의 어록일 뿐이다. 복음서 또한 예수의 어록이지만, 논어와는 매우 다른 성격의 것이다. 그것은 예수의 말을 의미있게 만드는 확고한 삶의 내러티브(narrative)를 전제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어록인 것이다. 그리고 그 내러티브는 예수의 삶의 일정한 시간적 서열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공관복음서의 원자료라고 생각되는 마가복음은 매우 단순한 서열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1)세례요한의 이야기, 2) 예수의 세례와 광야의 시험, 3) 예수의 갈릴리 선교, 4) 유대아로의 여행, 5) 예루살렘에서의 클라이막스, 6) 수난의 내러티브, 7) 빈무덤의 발견, 마가에는 예수처녀탄생 설화나 예수의 부활이야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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