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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인생은 고달파>

미송 2009. 10. 9. 19:45

 

 

모옌 <인생은 고달파(1,2)> 출판사 : 창비

 

우화 같은 인생, 비릿한 웃음 / 정관성

 

 

소설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표현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그것도 동양의 구어체 고전에 의하지 않고는 제대로 먹혀들기 힘든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주인공 서문뇨는 지주로 살다가 중국의 공산화 과정에서 '악덕지주'로 찍혀 총살 당한다. 염라대왕한테 대들고, 저승사자를 윽박지르는 등의 오만방자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결국 나귀로 환생한다. 나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다시 소로 환생하고, 소에서 다시 돼지, 개, 원숭이, 사람 순으로 소위 말하는 육도윤회를 거친다.

 

서문뇨가 환생을 거듭하면서 서문촌을 배경으로 벌어진 1950년부터 2000년 밀레니엄 베이비로 환생하는 과정의 중국의 현대사가 구체적이고 우화적인 방법으로 비춰진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모티브로 가장 현실적인 중국현대를 묘사한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물의 눈으로 인간 군상의 추잡하고 구질구질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가끔씩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게 뭘까?" 하며 고개를 끄덕인 적이 여러 번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붉은 수수밭>이란 영화의 원작자인 모옌은 소위 말하는 중국 최고의 "구라꾼"의 면모를 여지 없이 드러낸다. 사람과 동물이 번갈아가며 말하는 방식을 취한 소설의 형식도 파격이지만, 동물의 본능과 인간으로서의 의식과 기억이 뒤섞이는 점도 상상력의 극치라 할 만 하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삶도 조금만 각색하면 우화와 다를 바 없는 인생이겠거니 생각해 봤다. 결말은 새로운 탄생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죽음으로 맺어진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문화혁명에서 성과를 올리고 개방 이후에는 자본주의적 속성을 쫓아 다닌 영악한 서문금룡의 허탈한 죽음, 인생 초반 인간적인 면이 많았지만 결국 늦바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산 남검의 아들, 다시 그들의 아들이 펼치는 파란만장한 3대에 걸친 애욕과 갈등의 변주는 내 눈엔 비극이었다.

 

인생, 나름대로 즐겁다고 살아가지만 결국 죽음으로 이른다는 측면에서 비극일 뿐이라는 생각에 책을 덮고 음습한 기분을 느꼈다. 내 마음 속의 우울함, 그 근원은 무얼까? 생각하다가 잡은 책이라서 그런지 재밌는 필담의 냄새가 비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우울하고 조급한 마음의 한 면을 채울 뭔가가 필요한 것이다. 인생은 고달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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