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화

심광현<포스트모더니즘과 리얼리즘>

미송 2009. 10. 21. 07:49

포스트모더니즘과 리얼리즘 : 형식주의의 인식론적 지평과 올바른 예술방법의 단초.

 

 

Ⅰ. 머릿글

유토피아가 시작된다. 의미와 섹스는 자유로운 놀이의 대상이 되며, 그 한가운데 이항 대립의 감옥에서 해방된 수 많은 의미를 지닌 형식과  감각적 실천이 무한히 확장된다. 이렇게 해서 사치스러운 문체의 텍스트와 행복한 성(性)이 탄생된다.

후기구조주의 이론의 독특하고도 극단적인 양상의 하나는 자아의 해체이다. 통합되고 안정된 존재나 의식의 자리에 자아들의 다면적이고 와해적인 놀이가 들어서며, 이런 해체된 주체의 개념은 '저자', '독자', '비평가' 모두에게 해당된다.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후반까지 기호학적 구조주의의 가장 강력한 사제였으며, 설득력 있는 구조주의와 유연한 마르크스주의를 채용하여 부르조아적 생활양식과 물화된 사유를 공격해왔던 롤랑 바르트가 1960년대 후반 프랑스의 다른 지도적 지식인들, 특히 (텔 켈) (Tel Quel) 誌와 관련된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해체론 쪽으로 방향전환하게 되면서, 그의 분석적 실천은-마르크스, 사르트르, 브레히트로부터 소쉬르를 거쳐 크리스테바와 데리다.

솔레르스, 그리고 마지막에는 라캉과 니이체에게로 옮아가면서-마르크스주의적 문화비판에서 기호학적 구조 주의를 거쳐, 다시금 (텔 켈)의 해체론으로, 그리고 나서는 쾌락적 해체론으로 나아간다. 그 결과 그가 사유하는 대상도 '역사'와 '진리'에서 '유효성'과 '진리'에로 다시금 '부분적 텍스트성'과 '산포'(dissemination),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무한한 텍스트성'과 '쾌락'으로 변모한다. 바르트는 자신의 존재에서 내용을 지워버린다.

그에게 있어서 자아란 지우는 작업이다. "우리는 해석하는 사람이 누군가고 물을 권리가 없다. 그것은 열정으로서 존재하는(존재가 아니라 과정, 되어감으로서의), 권력을 향한 의지의 한 형태인 해석 자체"라고 하는 니이체의 주장에 의거하여 바르트는 '쾌락을 위한 독자'라는 유형학을 지시하며,물신숭배자, 강박증 환자, 편집증 환자, 히스테리 환자라는 네 가지 부류의 독자 중에서 히스테리적 독자만이 이드(id)를 낱낱이 드러내면서 진정한 기쁨인 오르가즘의 경험에 도달한다고 기술한다.

이런 유형의 독자에게 텍스트는 의미와 성(性) 의 자유로운 유희를 허락하며, 이런 과정에서 독자와 의미는 무한을 향해 찬란하게 분산, 와해된다. 텍스트는 영원히 뒤섞이는 가운데서 성취되며. 이 직물조직 속에서 길을 잃은 주체는 스스로를 와해한다. 이러한 자아의 상실이 오르가즘이다.

여기서는 정확한 절단과 비평의 기준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경계선이 없는 무한한 텍스트는 편의상 말끔한 형상과 지역으로 갈라지고 나누어지며, 이 조각들이 기표들의 질주와 잡다한 양태의 인용문, 즉 텍스트와 상호텍스트를 산출한다. 이 텍스트의 기표(signifiant)들은 무한을 향해 움직이며, 이 텍스트의 쾌락은 오르가즘적 행위에 해당된다.
더 이상 단순히 하늘의 공허를 읽는 고집 세고 초탈한 예언가가 아닌 해체론적 독자는 넘치는 갖가지 사랑놀이에서 쾌락과 기쁨을 찾는 호 색적이며 열망하는 육체와도 같다.

그는 성적인 광인으로서 끊임없이 텍스트를 자르고 분할함으로써 주의 깊고 올바른 해석을 한 뒤에 텍스트를 되돌려주는 강박적인 예언자와 같을 뿐만 아니라 자신 텍스트로 전회의 만족을 지속시키고 연장시키는 물신숭배적 독자와도 같고, 텍스트의 광란적이며 완벽하게 미혹된 독서에 스며든 편집중 환자와도 같으며 과다한 진리와 기쁨 속에서 맹목적이면서도 거칠게 텍스트와 와해되는 자아를 떠받드는 히스테리 환자와도 같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텔 켈) 그룹 시기만 하더라도 바르트는 텍스트성에 관한 이론을 세우면서도 이념적 근거에서 통제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기의(signifie)를 배제 하고 기표(signifiant)를 완전히 해방하는 것은 결국 모든 의미를 거부하는 것이며, 이런 전략은 정치적 실천을 거부하는 쁘띠부르조아적 자기 탐닉의 조장행위로 간주되었었다.

그러나 후기의 바르트는 통제를 풀었으며, 초기에는 진보적 이념을 생산하기 위한 장기적 인 목표로 간주되었던 혁명적 독서가 독서행위의 성적 만족에 대한 찬미로 대체되었다. 해석의 내재적 틈새와 오류는 오르가즘적 환희를 내뿜는 끝없는 연 위의 벼랑으로 나타난다. 분석적이며 일관성이 있던 예전의 비평적 글이 장난스럽게 파편화되며 비평의 수사는 에로스적인 환상의 떨림으로 변모한다.

"부재하는 기원의 잃어버린 또는 불가능한 현존에로의 복귀를 애태우는 조각난 직접성이라는 이 구조주의적 주제는 슬프고 부정적이며 향수 어리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놀이를 생각하는 룻소적 측면이다.

이와 반대 되는 측면은 니이체적 긍정으로서 세계가 놀이화되어가는 것과 적극작인 해석에 수반되는 '허구', 혹은 더이상 진리와 기원이 존재하지 않는 기호들의 세계를 순수히 받아들이는 태도이다‥‥이처럼 해석과 구조, 기호와 놀이에는 두 개의 해석이 있게 된다.

하나는 암호를 해독하고자 하며 놀이와 기호의 한계를 넘어서는 해석의 필요성과 진리 또는 기원을 해독하고 싶어하는 망명자. 다른 하나는 더 이상 기원이 무엇인지 묻지 않으며 놀이를 긍정하고 인간과 휴머니즘을 넘어 서고자 한다."

예언자로서 쟈크 데리다는 우리에게 해체적 인간을 선보이는데 그는 기쁨과 긍정에 차서 세계가 놀이화되어 가는 순수함을 받아들이며, 중심의 주변에서 기표들의 자유로운 놀이와 구조의 편향적 생산을 추적하고, 낡은 이성중심주의의 마법을 비난하면서 억압적인 기호학을 밟고 넘어서서 기쁨과 긍정이라는 모독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과 긍정은 문자 그대로 순수한 현존의 기쁨과 긍정이 아니다. 훗설이 어떤 매개작용이나 의미화의 작용 없이도 가능하다고 본 자기현존의 원초적 구성을 꿈꾸는 곳에서 데리다는 (차이)와 (흔적)을 목격한다. 글쓰기가 존재론을 침범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원초적 변 별화를 드러내는 힘이 존재와 현존을 움직이고 생산한다.

여기서는 (차연) (differance)의 두 가지 특징인 (지연)의 구조와 (차이) (기표와 기의, 기의와 지시물간의)에 의해 현존의 윤리가 붕괴되며, 기호에는 실질도 현존도 없이 (차이)들의 놀이만이 존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전통적으로 해석 행위를 안정화시켜온 현존하는 실체로서의 진리는 그 초월적 의미화의 중심을 파괴시키는 (차연)의 놀이에 의해 붕괴되며, 사물들간에 벌어진 틈새, 떨어져 나가는 불안정한 작업들, 시간의식을 파괴하는 파편적인 힘들이 전면화된다. 이들은 모두 동질적이고 자기 현존적인 온갖 집합체를 뒤흔들어 놓는다. 바로 이때 우리는 벼랑에 서게 된다.

초기에 데리다는 끝없이 (잘못된)해석을 '유쾌한'것으로 생각했었다. 그것은 무한성을 향해 단절하고 또한 배열시켰던 행복한 증폭이었다. 그러나 이제 말할 것도 없이 해체 론자들은 모두 벼랑 위에서 현기증을 느끼고 있다. 해석의 막다른 골목, 즉 비평적 독서와 글쓰기가 처하게 된 곤경을 지칭하기 위해 해체론자들이 자주 쓰는 개념이 아포리아(apo- ria)이다.

가령 모든 텍스트가 그 자체로서 해체이고 일단 한번 해체의 대상이 되면 어느 곳에서든 목적지는 보이지 않게 된다. 이것이 아포리아의 구조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바르트의 유토피아는 실제로 벼랑 위에서 전개되었으며, 의미와 섹스의 자유 로운 놀이는 결국 아포리아의 다른 명칭에 불과하였다.

아마도 이러한 아포리아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구조주의이든 탈(또는 후기) 구조주의이든 양자는 모든 것을 언어에 -말이든 글이든 -의해 다시 한번 재고찰하려는 시도, 말하자면 사유의 모델로서 언어를 채택하려는 사 고체계라고 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이 언어학적 모델의 우월성을 그 출발점으로 설정하는 일은, 오늘날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우는 나라들의 사회생활의 구체적 성격과 상응하는 것이다.

이 나라들은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에 의해 본연의 자연이 추방당한 세계, 메시지와 정보로 가득 차 있는 세계라는 구경거리(스펙타클)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들이 가진 복잡한 상품조직망은 기호체계의 원형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서의 어학과 오늘날 우리의 체계화되고 몸체잃은 악몽으로서의 문화는 서로 일치하는 면이 많다.

말하자면 의미와 섹스의 자유로운 유회로서의 유토피아는 실제로는 끝없는 (차연)으로 서의 심연 위에 놓여진 벼락이며, 벼랑위에 선 해석자는 끊임없이 붕괴되는 사물들의 틈새 앞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포리아에 직면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런 아포리아는 애당초 스스로 설정했던 언어학적 모델의 독단적 우월성으로 인해 야 기되었던 것이다.

그 아포리아는 스스로를 수감시킨 언어의 낡은 감옥 안에서 야기된 것에 불과하였다."누군가 지시물을 훔쳐낸 결과 세상에는 미끄러지는 기의 (signifie)와 부유하는 기표(signitiant)들만이 가득차고 말았다. 누가 지시물을 훔쳤는가? ‥‥모두가 데리다를 쳐다보고 있다‥‥그가 문제의 인물이다‥‥의심할 것도 없이 소쉬르가 그에게 가르쳤을 것이다. 하이데거와 훗설, 레비-스트로스는 부지중에 잠재적인 함정을 가리켜주었을 것 이다. 또 바르트와 리들은 데리다와 같은 노선을 걸어왔다‥‥지시물은 어디에 있는가?

지시물이 없는 상태에서 기표들은 대기를 울려댄다. 우리는 숨이 막힐 것 같다. 진리의 공기가 소진되어 버린다. 모든 것이 흔란스럽게 되고 세계는 미쳐 돌아간다." 문제의 원인은 사물들의 세계로부터 의도적으로 차단된 -쁘띠부르조아의 안전한 유 토피아인-언어의 `감옥'에 놓여 있었다.

이 감옥 안에서 "의미화는 따라서 언어의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에로의,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에로의 이항에 불과하며, 의미는 이같은 약호이전의 가능성일 뿐이다.

" 언어의 감옥 내에서는 이러한 약호이전이 끝나지 않으며, 이와 같은 끝없는 후퇴구조는 바로 구조주의자 또는 후기(탈)구조주의자들의 "문체론적 차원에서의 불행한 의식"이다. 이들의 "불행한 의식"은 자신들의 이론적 이율배반을, 또한 자신들의 아포리아를 무기한으로 연기시키거나 망각에 빠뜨린다. 변증법적 의미에 서의 구체적인 것을 불연속적인 것, 특수한 것으로 대신하며, 개별적인 자료를 고립시켜서 그것이 총체성과 가지는 관계를 파편화시키며 결국 총체성은 보이지 않음으로써 다루어질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기껏해야 언어학적 모델의 개념적 감옥의 벽을 더듬 거리면서 내부로부터 그 감옥을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떠한 언어의 감옥도 완벽하게 밀폐되어 있지는 않다. 그 감옥에는 수많은 구멍이 뚫려있으며 그 구멍을 통해 역사의 바람이 항상 불어오고 있다. 해체론자들이 이 바람을 정면으로 맞게 될 때 해체론의 언어학적 모델이 본격적으로 해체될 것이다. 그러나 해체론자들은 아직도 불어닥쳐오는 역사의 바람을 텍스트성(textuality)의 얇은 피막으로 또는 상호텍스트성이라는 어지러운 거미줄로 막아내려 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바람은 결코 해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의 감윽이나 텍스트성의 벽에 의해 차단되어야 할 유해물질이 아니다. 또한 일시적으로 차단된다고 해도 그러한 차단이 결코 지속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거세게 몰아치는 역사의 바람이야말로 언어와 기호에 대해 생명과 생기를 부여해 주는 원천이며, (차이)와 (흔적)의 생생한 원천이다. 지시물이냐 기호냐, 기표냐 기의냐 하는 식의 양자택일, 현존인가 부재인가, 중심인가 탈중심인가, 구조인가 놀이인가, 구조화인가 해체인가, 룻소적 향수인가 니이체적 긍정인가, 이성중심주의인가 탈이성중심주의인가, 순수존재인가 순수언어인가, 동일성인가 차이인가‥‥이러한 양자택일들은 언제나 고사되어가는 언어의 메마른 감옥 내에서만 일 어날 뿐이다.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양자가 공히 이에 해당된다.

이를 좀더 정확히 말 하자면 관념론의 감옥, 형이상학적 또는 주관적 심리의 (유토피아에 갇혀있으며, 동시에 그에 의해 세계를 재구성하고 싶어하는 쁘띠부르조아적)의식의 감옥이라고도 기술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론적 모델이 예술에서도 유사한 양상을 띄고 나타나는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의에서도 역시 한 치의 예외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들 모두는 동일한 철학, 동일한 인식구조 내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행동양태들이다.


이 글은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론적 논의들을 검토해보면서 이와같은 필자의 입장을 확인해 보고, 이런 논의들에 내재된 유해성을 극복하고 우리의 현실에 적절하면서 생산적일 수 있는 인식론의 모델과 그와 연관된 예술창작방법론의 단초를 찾아보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물론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의 논의는 제임슨의 말대로 20세기 서구사회의 정치경제적-문화적 구조와 실행의 광범위한 역사적 짜임관계를 검토하는 접근방법을 통해서만 옳게 파악될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주로 그 인식론적인 전제를 검토하는 것에 목표를 한정하고자 하며, 따라서 그런 만큼 일정한 의의와 동시에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Ⅱ. 포스트모더니즘

최근 들어 비록 많은 공격을 받아왔다 해도, 하나의 관행으로서의 모더니즘이 결코 소멸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모더니즘은 적어도 하나의 전통으로서는 승리를 거두었으며, 물론 죽은 형식으로서이긴 해도, 대학과 미술관, 화랑등 제도화된 공간 내에서 지배적인 위세를 떨쳐왔으며 그 위세는 일정한 범위내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말하자면 모더니즘은 특수한 역사적 조건에 기초했던 문화적 산물로서 일정기간 동안 일정한 성과를 생산했지만 그것은 일정한 역사적 한계내에서 가능한 것이었으며 이제는 점차 지나간 역사의 유산으로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 따라 모더니즘의 성공과 실패는 이제 그 한계가 서서히 드러나게 된 오늘날에서야 비로소 밝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바로 그와 같이 모더니즘의 죽은 형식과 그것이 기초했던 역사적 한계에 대한 반성 또는 반작용의 양상과 관련된 현재 서구사회 특정한 문화적 태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가 과거와 현재 양자의 모습과 그 관계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또한 그중 어느 측면을 강조하고 어느 측면을 배제할 것인가하는 점이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관건이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현대사의 시기구분을 시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리시대가 주체의 죽음의 시대(Baudrillard)또는 중심적인 서술구조의 상실의 시대 (Owens)임을 주장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그 속 에서는 일체의 반대 행위를 수행하기 어렵게 만드는 소비사회 속에 살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인가(Jameson), 또는 우리가 인문과학이 주변화되는 범용성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의 미하는 것인가(Said)?

이런 주장들이 묵시록적 단언은 아닐 것이며 또한 과거와의 명백한 단절에 따른 전혀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기껏해야 새로운 모델과 낡은 모델간의 갈등-전적으로 자율적이지 못한 문화적 모델과 전적으로 결정론적이지 못한 경제적 모델 사이의-, 그리고 그들에 내재된 이익과 관심들 사이의 갈등의 산물이라고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핼 포스터의 지적과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해서는 적어도 서로 상이한 두 가지 입장이 구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문화 정책에서는 모더니즘을 파괴하고 보수적인 정체상태(Status guo)에 저항하고자 시도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적 정체상태를 옹호하기 위해 모더니즘을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 근본적인 대립이 존재하고 있다. 말하자면 저항적인 포스트모더니즘과 반동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립이 그것이다.

하버마스의 주장처럼 반동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은 신보수주의 자들에 의해 주창되고 있고 또 널리 공감을 얻고 있기도 한데, 이들은 문화를 사회적인 것으로부터 분리시킨 후 모더니즘 문화의 관행이 서구사회의 현대화(modernization)과정의 병폐를 낳았던 주된 원인이라고 비난한다.

이렇게 원인과 결과가 서로 혼동된 상태에서 `저항적'문화는 거부되며, 경제적, 정치적 현상태가 옹호되고, 그에 적합한 `긍정적'문화가 새롭게 주창되는 것이다. 이들은 모더니즘을 문화적 오류로서의 (국제적인 양식으로서의) 형식주의라고 비판하면서 前 또는 後 모더니즘의 요소들을 반입하고, 19세기식의 전통적인 휴매니스트의 전통을 보존하고자 한다.

이에 반하여 저항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공식문화에 대해서뿐 아니라 반동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의 "그릇된 규범성"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고 일어선다. 저항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이비 또는 대중적인 역사적 형식들의 도구적인 모방적 재탕(pastiohe)이 아니라 전통에 대한 비판적인 해체(deconstruction)에, 또한 기원 (origins)에로의 복귀가 아니라 기원에 대한 비판에 관심을 갖는다.

요약하자면 이들은 문화적 약호들을 소모하기보다는 그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것에 내재한 사회적, 정치적 제휴관계를 은폐하기보다는 폭로하고자 애쓰는 것이다.

이 글의 주된 관심은 핼포스터가 분류한 방식에 따라 저항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불리우는 방향에 대한 분석에 놓여져 있다. 실제로 논점과 이론적 토대가 분명하고 그 철학적 근거가 확실한 쪽은 대체로 저항적인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포스트모더니즘이 문자 그대로 정말 `저항적'인 것인가?

그 저항성이라는 것이 실제로 생산적이며 진보적인 성격을 동반하는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필자의 답변은 부정적인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저항적인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조차도 보수적이거나 또는 반동적인 성향이 깊게 각인되어 있으며, 그러한 반동성은 사실상 그에 선행했던 모더니즘문화의 이데올로기와 깊은 연관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다시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일정한 범위 내에서 연속성을 지니며, 그에 따라 그역사적 토대는 상실했지만 여전히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함축하고 있는 모더니즘의 잠재와 뒤섞인 채, 애매모호한 저항속에서 스스로를 해체해갈 운명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럼으로 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더욱 다채롭고 복잡한 양상을 띄운다.

그러한 복잡한 양상 속에서 맥맥히 흐르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구조적 본질과 그 운명을 예측해 보는 일이 이 글의 과제라 할 수 있다.

1) 미적 질서와 개념에 있어서의 단절

목적으로서의 순수성, 결과로서의 형식적 법칙, 전개로서의 역사주의와 맥락으로서의 미술관, 독창적인 작가와 유일무이한 작품, 이것들은 모더니즘이 특권을 부여해온 용어 들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이 제시하는 것과는 대립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있어서 그것들은 현재로서는 그 생명이 고갈되어버린 행위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런 행위의 인습성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닐 수 없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술은 순수성에 사로잡혀 물화되어 버렸던 모더니즘의 모더니즘의 매체들 사이에, 그 너머에, 흑은 그들 밖에서, 또는 새로운 아니면 무시되었던 매체들(비데오나 사진) 속에 존재한다.

`미술'이라는 대상이 미술관에 의해 역사화되고 화랑에 의해 상품화되어 중성화되어버린 까닭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미 술은 그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공간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예술의 영역이 일정하게 변화함에 따라 작가의 역할도, 미학적 의미도 변화하게 되었다.

로잘린 크라우스(Rosalin Krauss)에 의하면, 포스트모더니즘 조각은 매체라든가 양식의 역사적 전개라는 맥락에 의해서는 모더니즘 조각과 명백히 구별되지 않으며, 다만 문화적 맥락에서의 형식들의 논리적 운영이라는 차원에서만 그 특수성이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매체라든가 역사적 맥락이라는 맥락이 아니라 오직 추상적인 문화적 논리라는 맥락에서 모더니즘과 단절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단절은 이제 모더니즘의 문화공간을 폐쇄시켜 버린 후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공간을 개 방시켜 주는 것처럼 보인다.

크라우스에게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징후가 미술영역(조각영역)의 확장이라면, 더글라스 크림프(Douglas Crimp)에게 있어 그것은 `작위성'(theatricality) (모더니즘 말 기에는 금지되었었던)에로의 복귀이며, 또한 크레이그 오웬스(Craig Owens)의 경우에는 `언어의 분출'이자 `알레고리적'인 또는 `해체적인' 충동이다. 미닌멀 조각의 `작위성' 에 반대했던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와는 달리 크림프는 (그림들)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대부분의 이런 작가들이 미니멀리즘에서 쟁점이 되었던 퍼포먼스의 영 역에서 영향을 받았다 해도 그들은 고것의 우선 순위를 뒤바꾸기 시작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연출된 사건의 지속을 지극히 심리학적으로 다루어진 하나의 그림(tableau)으로 만든다. 결국 퍼포먼스는 오로지, 그림을 연출하는(staging) 많은 방법들 중의 하나가 된다. "

또한 오웬스는 모더니즘적 시각예술이 억압해왔던 '담화의 출현'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서 현저해지는 점에 주목한다.

"언어가 미의 영역으로 분출-스미드슨, 모리스, 앙드레, 주드, 플래빈, 라이너, 르윗에 의해 드러나는-된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의 결정적인 지표는 아니라 하더라도(적어도) 그와 상옹하는(성질의) 것 이다. 이러한 '격변'은 미의 영역을 특별히 구분되는 분야로 갈라 놓았던 모딕니즘 회화의 안정상태를 뒤흔들어 버렸다.

가장 깊이 충격받았던 것 중의 하나는, 문학행위를 정체되어 있는 시, 소설, 수필(‥‥) -고유의 영토에서 끌어내어, 미적행위의 전체 영역에 걸져 분산시켜 버린 것이다.

" 오웬스는 미니멀 아트에 잇따라 발생하는 작품들(콘셉츄얼 아트, 스토리 아트, 특정위 상의 아트 site-specific art)을 과거의 작품처럼 어떤 오브제와 결부된 한정성을 띈 것으 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가변적인 텍스트적인 것(textual)으로 간주한다. 이 경우 "텍스트란 단일한 '신학적' 의미(신과도 같은 저자의 메시지라는 점에서)를 방출하는 말의 배열이 아니라, 어떤 것도 원형적(original)이지 않은 수많은 저서들이 흔합되고 상충하는 하나의 다차원적인 공간이다. " 이러한 텍스트성(textuality)에 의할 경우, 궁극적인 의미나 원저자의 독창성(originality)이 사라지는 대신 다의미적으로 조직된 유동하는 약호들과 유일한 의미의 창조자로서의 예술가의 '죽음'이 함축되어진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노선은 후기구조주의의 노선과 그 맥을 같이 하는데, 이는 양자가 공히 약호화된 문화를 기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후기구조주의적 미학은‥‥모 더니즘적 범례의 소멸을 의미한다-신화와 상징, 순간성이 고정됨에 따라 유기적 형식과 구체적 보편, 주체의 자기동일성과 언어적 표현의 지속성‥‥그것들이 전략적으로 '텍스트' 흑은 '기술체'(ecriture)로 재편되면서 비지속성, 알레고리, 기계적인 것, 기의와 기표간의 간극, 의미의 소멸, 주체의 체험의 상실이 강조된다." 여기서는 이제 낡은 기호가 다시금 새로운 논리로 다루어지며, 예술가는 여러형태의 수사학을 변형, 조립시키고 또 조작하는 정교한 수사학자가 된다.

크림프에게 있어서 문제는 모더니즘적 자율성이 아니라 '재현의 충위'(strata of representation)이며, 근원이나 원천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작용외 구조가 추구된다. 각각의 그림의 저변에는 언제나 또 다른 그림이 놓여져 있다. 결국 모 더니즘의 미적 한계는 인용, 발췌, 구상, 각색 등의 전략을 통해 초월되며, 그에 따라 꽉 짜여졌던 매체들뿐이 아니라 표현과 해석의 수준들도 서로 상충된다.

이렇게 해서 대상 그 자체가 변화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술은 어떤 하나의 형태나 매체, 또는 위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간의 다차원적 관계의 그물망 내에서 불확정한 상태로 유 동하게 되고, 그만큼 주체(관찰자)도 혼란되고, 모든 예술의 확정적인 질서도 분열된다. 이와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미적 질서와 개념들과의 단절로서 제기된다.>


2)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론적 방법론과 자기모순 - 후기 구조주의와 해체론

데리다에 의하면 "초월적이거나 특혜를 누리는 기의(signifie)란 없으며, 따라서 의미의 영역이나 작용에도 한계가 없다. 기호라는 말 자체도 거부해야 한다. 그것은 정확하게 다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 오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체에 대한 충동은 모더니즘의 자기 비판적 경향과도 구별되어야 한다. " 매체에 집중된 자기비판은 (적어도 형식주의의 보호아래) 본질적인 것 혹은 `순수한'것을 지향하고 있는 반면, 해체는 의미의 `비순수성'을 분석시켜 노출시킨다.

확실히 포스트모더니즘이 단지 양식적이거나 연대기적인 용어로서가 아니라 `인식론 적인 단절'로 간주되고 있는 것을 볼 때,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식의 형태-또는 그 물적조건-에 기초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분명히 1960 년대 말 프랑스에서 발흥된 후기구조주의와 해체론의 철학에 기초하고 있으며, 모더니 즘-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는 인식론적으로 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의 관계와 상응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때로는 편협한 양식적 의미로, 또는 복고적인 역사주의의 의미로 인지되는 또는 수많은 소규모 형식들과 범주들의 상층되는 층위들간의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때로는 자기 모순적인 것으로 보여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내재된 좀더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인식론적 방법 개념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보다 정교한 이해를 위해서는 후기구조 주의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요청된다.

구조주의가 등장한지 불과 몇년이 채 되지 않은 1960년대 후반에 이미 강력하게 부상하기 시작한 후기(또는 탈)구조주의는 구조주의의 중요한 특성 모두를 비판하면서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내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말하자면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주의가 구축해 놓은 (구조)를 그 내부로부터 (해체) 또는 (탈구조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조보다는 개체 역사성에 대한 새로운 관심, 절대적 진리나 센터, 근원의 독선과 횡포가 아닌 타자와 탈 중심화 등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 중에서도 구조주의와 후기(탈) 구조주의를 구별짓는 가장 큰 차이점은 기호들의 재현능력과 그것들이 지칭하는 대상의 현존과 `기호-대상'의 연계성이라는 이상주의적인 가정의 붕괴이다.

탈구조주의는 바로 구조주의의 그런 이상주의적인 가정에 회의를 표명하고, (기호)가 더 이상 확실한 것이 아니며 (의미) 역시 유동적이고 일시적으로 유보된 상태일 뿐이라는 깨달음으로부터 비롯되어졌다.

데리다는 우선 구조주위자들의 (구조)나 (기호)라는 개념이 (의미)의 (센터)가 (현존) 하고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센터)에 대한 이러한 욕망과 확신은 구조주의를 포함하여 서구 형이상학의 근간을 이루어 온 것으로서 실제로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며, 다만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그것의 (흔적)과 (자취) 또는 (대체물)만이 가능할 뿐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말하자면 말이든 글이든 모두가 현존이 결핍된 의미화(signifi- cation)의 `과정'인 셈이다.

그렇다면 기호는 왜 완전한 현존이나 재현이 되지 못하는가? 데리다에 의하면 그 이유는 (차연) (differance)개념에 의해 설명된다. 그에 의하면(차연)은 두 가지 의미-(차이) 와 (지연)-를 지니고 있는데, 공간적 개념인 (차이)는 언어와 그것이 재현하려는 지시 물과의 숙명적인 차이를, 그리고 시간적 개념인 (지연)은 언어가 재현하려는 현존의 끝없는 유보를 의미한다.

하나의 텍스트 속에서 어느 한 요소의 의미는 그 텍스트 내의 다른 요소들과 필연적으로 상호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완전히 자립된 상태로 현존할 수 없으며, 이는 나아가 또 다른 텍스트의 요소들과 연결된다. 이런 과정으로 인해 (의미)는 영원한 (차이)를 갖게되고 끝없이 (유보)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텍스트성(textuality)및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의 이론이 생겨난다.

데리다는 하늘/땅, 자연/문화, 서양 /동양, 정상/광기, 저자/독자, 의식/무의식, 정신/육체 등의 전통적인 이분법적 대립을 (폭력적인 서열제도)라고 부르면서, 이 양자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보충과 대체)의 관계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미 헤겔, 마르크스 이래 변증법적 논리의 골간을 이루어왔던 것이다.)

결국 데리다는 이를 위해서 기존의 이성중심주의의 서열적 구조를 그 근본으로부터 해체(deconstruct)하게 되는데, 그러나 바로 이러한 사실로부터 후기(또는 탈)구조주의의 이론적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데리다의 해체론은 자기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우리가 반대하는 전통의 사고 관습과 언어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령 어떠한 형태의 청산주의도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지는 못한다. 실제로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텍스트의 불확정성과 무한한 해석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언어의 자유 유회)라고 표현하는데, 이럴 경우 (중심) 또는 (현존)과 그것의 해체의 (유희) 사이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중심)이 이미 없는 텍스트는 (해체)될 수 있는가?

아니면 거꾸로 해체의 (유희)가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심)을 미리부터 가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지점에 이르게 되면 데리다가 구조주의와 완전히 결별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상당부분 구조주의의 연장선에 놓여있다는 인상을 받게된다.

사실상 데리다는 형이상학을 공격하면서도 형이상학의 용 들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고, (근원)을 부정하기 위해 사용된 (자취)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그는 (근원의 근원) (origin of origin) 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렇게 보면 형이상학의 닫힌 체계를 깨뜨리려는 그의 시도도 다시금 그 전통을 부활시켜놓고 그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유입되어 버리는 셈이 되는데, 이로 인해 그의 새로운 시도의 성공(가능성)역시 영원히 (유보)될지도 모르게 된다.

그러나 (텍스트의 밖이란 없다)-즉 우리는 결코 텍스트를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여 모든 것을 텍스트와 언어의 문제로 귀결시켰던 데리다와는 달리, 역시 후기구조주의의 대표적 인물의 하나였던 푸코는 (글쓰기)란 곧 복합적인 힘을 창조하는 행위이고 (텍스트) 란 곧 이 복합적인 힘들어 권력투쟁을 벌이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데라다가 끝내 텍 스트성 內에 갇히게 되면서도 텍스트의 해체를 주장했던 자기모순에 처하게 되었던 데에 비해 푸코는 지식과 권력과 억압 사이의 함수관계에 대한 새로운 성찰로 나아감으로써 텍스트의 안과 밖을 넘나들 수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 푸코는 텍스트와 언어 그리고 그것에 의해 산출되는 지식의 외부에 항시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함으로써 일단은 해체론의 자기모순의 원인이었던 언어의 감옥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푸코가 발견한 역사, 언어의 감옥 너머에 편재해 있는 역사는 일정한 방식으로 그 내용을 제거당한 `추상적인' `권력'의 역사였다.

3) 지식(또는 인식)과 권력

`통상적'인 역사는 어떤 하나의 중심을 상정하고 그 둘레로 모든 현상들을 끌어다 붙이는 전체화하는 역사이다. 그것은 연속성, 인과율, 목적론 등의 개념으로 깊이 채색되어 있는 역사이다. 그에 반해 푸코가 보는 역사는 방산(攷散)의 공간으로서 갖가지 현상들이 어느 한 곳을 향해 결집되거나 그와 유사한 관계구조를 드러내지 않고 단지 흩어져 있을 뿐이다.

이것은 데리다가 개진하는 언어와 의미의 불확정성의 이론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씨니피앙 대신에 현상이란 용어를 끼워넣으면, 데리다의 텍스트 개념은 곧 푸코의 역사개념에 해 당된다고 할 수 있다. 데리다의 주장을 극한으로까지 밀고나간 예일학파의 비평가들은 텍스트성을, 그 속에서 어떠한 의미도 알 수 없고 결정할 수 없는 (밑없는 광대한 심연)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푸코는 이 공간 내부에서 발견되는 한 묶음의 규칙 즉 에피스테메(episteme)에 의해 그 방산의 공간도 일정하게 규정되어질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이 에피스테메는 기존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중심, 단일개념 혹은 초월적 의식과는 분명히 다르며, 갖가지 성격이 다른 요소들을 포함한 이질적인, 따라서 `문제적'인 단일체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고 사멸한다.

하지만 결국 에피스테메는 구조주의적 사고방식에 의해 상정된 개념적 단일체이며, 각시대의 역사적 충족성을 설정하는 위장된 형이상학적 용어라는 점이 밝혀지게 되며, 푸코의 언 술행위이론(theory of discourse)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강조점을 이동시킨다. 즉 언술행위는 에피스테메에 기초한 법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행위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푸코는 1977년의 대담 「진실과 권력」에서 이러한 변화를 자기비판의 형식으로 잘 요 약해주고 있다. 그는 자신이 「말과 사물」 (1966)에서 다루려 했던 것이 바로 불연속성에 의해 생겨나는 상이한 체제(regime)들이었는데, 그때는 그 체제가 갖는 특유한 힘의 효과를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체계성, 이론적 틀, 혹은 패러다임과 같은 것으로, 즉 에피스테메와 혼동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 결과 지식의 형태를 바꾸게 하는 것은 결국 권력의 문제였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 자신이 이전에 운용했던 고고학이 역사에서 배제되거나 주변으로 밀려난 국부적 사실들을 찾아내고 분석하는 방법이라면, 새로운 계보학은 그런 작업을 토대로 해서,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진리 혹은 지식이라는 것의 기원이 사실은 지배와 종속, 여러 세력 사이의 관계 즉 권력에 뿌리박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억압된 지식이 지배전략의 지식에 대해 반대하고 투쟁할 수 있게 해주는 디딤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체작업 이후에 그가 부딪치게 되는 것은 권력의 의지들의 `유희'이다 따라서 불변적인 것, 근원적인 것들이 모두 해체된 터에 각각의 권력의 의지가 진리의 체제로 내세우는 것은 각기 자기나름의 지배를 위한 `해석'에 불과하게 된다.

현실은 언술행위에 의해 `반영'된다기 보다는 오히려 언술행위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에 하나의 해석은 현실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다른 해석들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이처럼 모든 해석에는 사실 정당한 보편적 근거가 없으며, 따라서 어느 해석이 다른 해석보다 올바르다고 말할 수 없게된다.

아마도 유일한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각 시대의 권력의 의지일 뿐이리라. 그에게 있어서 역사란 언어와 기호들이 아니라 전쟁과 전투의 모델로 보여지며, 우리를 끌고 가며 결정하는 역사는 씨니피앙과 씨니피에 사이의 의미관계가 아니라 그 너머에 존재하는 권력의 관계들로 보여진다.

역사는 수많은 권력에의 의지들이 언술행위와 진리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는 해석의 유희였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역사는 부조리하거나 일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로서 객관적인 (의미)는 없다. 단지 있다면 (지배전략)으로서의 (의미)가, 또한 (지배전략)으로서의 (진리)가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역사가 바로 텍스트의 공간이었다.

처음에 그는 그 광대무변한 공간에서 형식적인 규칙들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언술행위를 우리가 사물과 세계에 가하는 일종의 폭력행위 즉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행위로 파악하면서부터 그는 그같은 형식적 규칙 대신에, 권력에의 의지들간의 언술행위를 둘러싼 유희와 전투의 전개과정을 탐색하게 되었다.

푸코가 데리다의 텍스트성을 넘어서서 마주치게 된 것은 바로 권력의 의지와 역사의 폭력이었다. 이 지점에서 그의 해체론은 다른 후기구조주의자들이 탐닉했던 끝없는 오 르가즘의 유회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해체론의 벼랑 위에서 그가 바라보게 된 것은 막연한 심연이 아니라 권력과 폭력으로 가득찬 전장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는 후기구조주의 또는 해체론 전반에 내재한 이론적 모순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그는 그 모순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생리학의 법칙을 따르고 역사의 영향과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어왔던 육체에서까지도 사실은 그것이 각기 특징적인 수많은 권력의 지배체제를 거치면서 형 성되어 왔기 때문에 마치 그것이 하나의 역사인 것처럼 과거의 수많은 이질적인 폭력의 혼적들이 육체 속에 남아 있는 것에 주목한다.

그가 보기에 권력은 항시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고 권력이 아닌 것, 즉 인간적인 학문이나 개인적인 자기인식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단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수많은 소단위의 권력(예를 들면 군대, 학교, 병원등)으로 분산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개개인을 그들 자신도 모르게 지배, 속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푸코의 계보학은 권력의 행사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권 력으로부터 단절된 지식은 없으며, 만약 권력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지식은 위선이나 오류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권력을 분석하는 그 자신의 작업 역시 권력과 지식의 연관관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때문에 푸코 역시 지식과 권력의 이질적인 대립과 모순관계 속에 놓여지게 되는 셈인데, 중심, 기원, 목적과 같은 어떤 형태의 절대적 가치도 분쇄하고 모든 것을 역사적으로 파악하려는 탈구조주의자의 일원으로서 그 자신 역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이 결코 이성과 진리를 대변하는 사람, 즉 (보편적 지식인)이 아니라 특정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특수한 지식인)일 뿐임을 밝힌다. 특수한 지식인으로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의 본질이 어떠한 것인가,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섬세한 메카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권력이 지배를 위해 사용하는 구체적인 기술과 전술은 어떠한가를 살피는 것이다.

이러한 탐구를 토대로 그가 할 일은 "현재 지배권의 여러 형태 -즉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형태들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진리의 권력을 그 지배권의 여러 형태로부터 떼어내는 것" 이며, 달리말하자면 현재의 체제 속에서의 권력의 균형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4) 권력에 익명성과 주체의 부재

그러나 이같은 상황이 되면 지식과 권력의 관계분석에 있어서 주체의 문제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
푸코에게 있어서 (주체)의 개념은 본래 능동적 주체라는 의미와 수동적인 주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이는 사회적 실천의 과정에 대한 분석과정에서 점차 후자의 의미로 기울어지게 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즉 주체는 (대상화)된다.

푸코는 주체의 대상화과정이 봉건적 지배질서의 느슨한 권력구조가 무너지고,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구조가 전국적 단위로 확립되는 동시에 인간의 동원과 통제를 본격적으로 체 계화하여 통치의 기술로 삼았던 근대자본주의 국가의 형성과정과 발맞추어 진행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권력의 문제를 계급간의 문제로, 즉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압하는 강제력으로 파악하지 않고, 계급과 무관한 다양한 권력의 원천을 상정함으로써 권력의 (주체)가 누구냐는 문제를 의미없는 질문으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주체)의 대상화과정과 마찬가지로 근대자본주의의 분업화과정에 따라 권력의 익 명화과정이 발생한다. 말하자면 자본을 집적, 집중시키는 과정에서 지본가가 자본의 소 유자-소비자라기보다 오히려 자본의 운동이 그를 통해 관철되도록 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듯이 권력의 담지자, 행사자는 권력순환의 복잡한 유통구조 내에서 한나의 매개고리 역할을 할 뿐 권력의 원천은 아니라는 것이다.

권력은 제도도 아니며, 구조도 아니며,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부여된 특정한 힘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주어진 사회 내의 어떤 복잡하고 전략적인 상황에 부여된 명칭인 것이다.

이 때문에 지식과 권력의 보이지 않는 관계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특수한 지식인의 역할은 애매해지게 되며, 투쟁의 (주체)와 극복 대상및 그 방향, 그리고 방법 등이 지극히 불투 명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푸코는 (언술행위의 불가시성)이라든가 (권력의 익명성)으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을 추동적으로 뚫고 나갈 수 있는 변혁의 (주체)를 명확히 설정하지 않음로써 사회현상은 본래(주체)의 힘으로는 대항하기 힘든,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어떤 무엇으로 보는, 지극히 암울한 전망에 사로잡힌다.

따라서 푸코가 탈구조주의자들 중에서 누구 못지 않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에드 워드 사이드에 의하면 '세속적인'-문제를 소재로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구조 주의의 치명적인 한계인 (주체의 부재)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여타의 해체론자들과 별 차이 없이, 벼랑에 서서 권력의 의지들의 투쟁과 갈등으로 가득찬 역사의 소용돌이를 다분히 방관자적 입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보인다.


/심광현(서울미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