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칼럼

자연과 인간, 생태와 순환이 공존하는 마을이 희망이다

미송 2009. 10. 25. 07:29

 

도법 스님과 김용택 시인의 문학적·사상적 자서전

[화제의 책]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

 

 

자연과 인간, 생태와 순환이 공존하는 마을이 희망이다

한 권의 책에 두 사람의 삶이 들어있다. 한 사람은 선(禪) 속에, 다른 한 사람은 시(詩) 속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시 선 속으로, 시 속으로 들어갔다. 스님과 시인, 두 사람의 삶은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하면서도 닮았다. 도법과 김용택이 자신의 삶을 말했다. 출가하게 된 개인사나 문학수업 시절의 참담한 과정처럼 혼자서 말하기에는 부적절한 것, 쑥스러운 것도 들어있다. 다른 이가 대신 말해 주었다. 그래서 더 생생하다.

도법이 죽음을 화두로 잡고 선방에서 몸부림칠 때, 김용택은 젊은 날의 객기를 버리기 위해 세상을 떠돌았다. 시인이 섬진강변에 묻혀 시심을 기를 때 스님은 자신의 그림자를 지우며 길을 걷고 있었다. 스님이 부처를 따라 배울 때 시인은 어머니를 배웠다. 이들의 배경에 공히 자연이 있다.

그럼 두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깨치고 무엇을 얻었는가.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삶을 한 방에 걸어두고 얘기했다. 지구는 헐떡거리는데 인간은 도대체 왜 유들거리는가. 왜 무서운 줄을 모르는가. 도대체 인간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지속가능한 사회'는 올 것인가. 서로에게 말했다.


"우리가 지금 현대의 대안으로 낼 수 있는 것은 공동체인 것 같아요.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는 '마을이 희망이다'라고 말하죠. 그 근본을 한번 짚어보면, 인간이 세상 이치에 맞게, 그것에 근거해서 만들어낸 사회상의 최초 원형이 바로 마을이에요.

기본적으로 마을은 자연과 어울리는 거예요. 자연에 의지하고, 자연과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관계를 맺는 거죠. 다음으로는 이웃과 잘 어울리는 거예요. 이웃은 적대자가 아니에요. 의지하고 도우면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죠. 세상 이치를 무시하고 만들어진 사회에는 자연이 없고 인간만 있어요." (도법)


"내 머릿속에는 언제나 진메 마을이 꽉 들어차 있어요. 나는 평생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 살면서 내 이웃들, 즉 농민들의 삶을 보아왔어요. 그들은 생태와 순환을 중요시해요. 그리고 모두 같이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아요. 마을 단위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런 힘은 더욱 강하죠. 강한 결속력이 자연의 무서운 힘을 극복하고 고된 노동을 힘 모아 해결했지요. 그런 삶이 농촌공동체의 삶이었어요. 바로 그런 농촌 공동체적인 가치가 지구촌이 된 오늘 날 삶의 가치로, 새로운 가치로 부활해야 한다는 거예요." (김용택)


두 사람은 모두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꿈꾸고 있다. 스님의 마을과 시인의 마을도 역시 다르지만 닮았고, 같은 듯 달랐다.

스님이 설파한 사상, 시인이 쓴 시는 매우 쉽다. 스님은 불심으로, 시인은 동심으로 어려운 것들을 지워버렸다. 스님의 말씀은 알아듣기 쉽다. 그러나 실천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시인의 시는 쉽다. 그러나 그 속으로 들어가기는 그리 쉽지 않다. 사상적, 문학적 자서전은 이토록 어려운 것들을 제거했다. 우리 시대의 절박한 사상을, 진실한 이야기를 겸손하게 펼쳐놓았다.

나는 도법스님과 한때 같이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그의 화엄사상에 빠져 들어갔다. 스님은 위기의 근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존재의 실상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 치열하게 싸워서 스님이 얻은 것은 삶의 평화였다. 그걸 나눠주기 위해서는 다시 치열하게 걸으며 얘기해야 했다. 스님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평화로웠다. 스님과 시인. 이 시대의 등불이다. 그 등불을 앞세우고 어디까지라도 가고 싶다.

 

/김택근 시인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