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김유정 <산골나그네>

미송 2009. 2. 19. 00:08

  밤이 깊어도 술꾼은 역시 들지 않는다. 메주 뜨는 냄새와 같이 쾨쾨한 냄새로 방안은 괴괴하다. 윗간에서는 쥐들이 찍찍거린다. 홀어머니는 쪽 떨어진 화로를 끼고 앉아서 쓸쓸한 대로 곰곰 생각에 젖는다. 가뜩이나 침침한 반짝 등불이 불쪽 지게문에 뚫린 구멍으로 새어드는 바람에 반뜩이며 빛을 잃는다. 헌 버선짝으로 구멍을 틀어막는다. 그러고 등잔 밑으로 반짇고리를 끌어당기며 시름없이 바늘을 집어든다.

  산골의 가을은 왜 이리 고적할까! 앞뒤 울타리에서 부수수 하고 떨잎은 진다. 바로 그것이 귀밑에서 들리는 듯 나직나직 속삭인다. 더욱 몹쓸 건 물소리 골을 휘돌아 맑은 샘은 흘러내리고 야릇하게도 음률을 읊는다.

  퐁! 퐁! 퐁! 쪼록 퐁!

바깥에서 신발 소리가 자작자작 들린다. 귀가 번쩍 띄어 그는 방문을 가볍게 열어젖힌다. 머리를 내밀며

  " 덕돌이냐?" 하고 반겼으나 잠잠하다. 앞뜰 건너편 수퐁 위를 감돌아 싸늘한 바람이 낙엽을 훌뿌리며 얼굴에 부닥친다.

 용마루가 쌩쌩 운다. 모진 바람 소리에 놀라 멀리서 밤 개가 요란히 짖는다.

 "쥔어른 계서유?"

  몸을 돌려 바느질거리를 다시 집어들려 할 제 이번에는 짜정인기가 난다. 황겁하게

 "누기유?" 하고 일어서며 문을 열어보았다.

 "왜 그리유?"

 처음 보는 아낙네가 마루 끝에 와 섰다. 달빛에 비끼어 검붉은 얼굴이 해쓱하다. 추운 모양이다. 그는 한 손으로 머리에 둘렀던 왜수건을 벗어 들고는 다른 손으로 흩어진 머리칼을 쓸어담아 오릴며 수줍은 듯이 주뼛쭈뼛한다.

 " 저.....하룻밤만 드새고 가게 해 주세유....."

남정네도 아닌데 이 밤중에 웬일인가. 맨발에 짚신짝으로 그야 아무렇든---

 " 어서 들어와 불 쬐게유."

나그네는 주춤주춤 방 안으로 들어와서 화로 곁에 도사려 앉는다. 낡은 치맛자락 위로 뼈지려는 속살을 아무리자 허리를 지그시 튼다. 그러고는 묵묵하다. 주인은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밥을 좀 주랴느냐고 물어보아도 잠자코 있다. 그러나 먹던 대궁을 주워모아 짠지쪽하고 갖다주니 감지덕지 받는다. 그러고 물 한모금 마심 없이 잠깐 동안에 밥그릇의 밑바닥을 긁는다.

  밥숟갈을 놓기가 무섭게 주인은 이야기를 붙이기 시작하였다.

미주알고주알 물어보니 이야기는 지수가 없다. 자기로도 너무 지쳐 물은 듯싶을 만치 대구 추근거렸다.  나그네는 싫단 기색도 좋단 기색도 별로 없이 시나브로 대꾸하였다. 남편 없고 몸 붙일 곳 없다는 것을 간단히 말하고 난 뒤 "이리저리 얻어먹어 단게유." 하고 턱을 가슴에 묻는다.

첫닭이 홰를 칠 때 그제야 마을 갔던 덕돌이가 돌아온다. 문을 열고 감사나운 머리를 디밀려다 낯선 아낙네를 보고 눈이 휘둥그렇게 주춤한다. 열린 문으로 억센 바람이 몰아들며 방 안이 캄캄하다. 주인은 문 앞으로 걸어와 서며 덕돌이의 등을 뚜덕거린다. 젊은 여자 자는 방에서 떠꺼머리총각을 재우는 건 상서롭지 못한 일이었다.

"얘 덕돌아, 오늘은 마을 가 자고 아침에 온."  

 

 

가을할 때가 지났으니 돈냥이나 좋이 퍼질 때도 되었다. 그 돈들이 어디로 몰리는지 이 술집에서는 좀체 돈맛을 못 본다. 술을 판대야 한 초롱에 오륙십 전 떨어진다. 그 한 초롱을 잘 판대도 사날씩이나 걸리는 걸 요새 같아선 그 잘량한 술꾼까지 씨가 말랐다. 어쩌나 전일에 펴놓았던 외상값도 갖다줄 줄을 모른다. 홀어미는 열벙거지가 나서 이른 아침부터 돈을 받으러 돌아다녔다. 그러나 다리품을 들인 보람도 없었다. 낼 사람이 즐겨야 할 텐데 우물쭈물하며 한단 소리가 좀 두고 보자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날이 양식은 딸리고 지점집에서 집행을 하느니 뭘 하느니 독촉이 어지간치 않음에야.....

" 저도 인젠 떠나겠세유."

그가 조반 수 나들이옷을 바꾸어 입고 나서니 나그네도 따라 일어선다. 그의 손을 잔상히 붙잡으며 주인은 "고달를 테니 며칠 더 쉬어 가게유." 하였으나

"가야지유. 너무 오래 신세를...."

"그런 염려는 말구." 라고 누르며 집 지켜주는 셈 치고 방에 누웠으라 하고는 집을 나섰다.

백두 고개를 넘어서 안말로 들어가 해동갑으로 헤매었다. 헤실수로 간 곳도 있기야 하지만 맑았다. 해가 지고 어두울 녘에야 그는 흘부들해서 돌아왔다. 좁깔 닷 되밖에는 못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돈 낼 생각커녕 이러면 다시 술 안 먹겠다고 도리어 얼려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만도 다행이다. 아주 못 받으니보다는. 끼니때가 지었다. 그는 좁쌀을 씻고 나그네는 솥에 불을 지펴 부랴사랴 밥을 짓고 일변 상을 보았다.

밥들을 먹고 나서 앉았으려니깐 갑자기 술꾼이 몰려든다. 이거 웬일인가. 처음에는 하나가 오더니 다음에는 세 사람 또 두 사람. 모다 젊은 축들이다. 그러나 각각들 먹일 방이 없음으로 주인은 좀 망설이다가 그 연유를 말하였으나 뭐 한 동리 사람인데 어떠냐 한데서 먹게 해달라 하는 바람에 얼씨구나 하였다. 이제야 운이 트나 보다. 양푼에 막걸리를 딸쿠어 나그네에게 주며 솥에 넣고 좀 속히 데워달라 하였다. 자기는 치마꼬리를 휘둘러가며 잽싸에 안주를 장만한다. 짠지 동치미 고차장, 특별한 안주로 삶은 밤도 놓았다. 사촌 동생이 맛보라고 며칠 전에 갖다준 것을 아껴 둔 것이었다.

방안은 떠들썩하다. 벽을 두드리며 아리랑 찾는 놈에 건으로 너털웃음 치는 놈 혹은 수군숙덕하는 놈..... 가지각색이다. 주인이 술상을 받쳐 들고 들어가니 짜위나 한 듯이 일제히 자리를 바로 잡는다. 그중에 얼굴 넓적한 하이칼라 머리가 야리가 나서 상을 받으며 주인 귀에다 입을 비겨댄다.

"아주머니 젊은 갈보 사왔다지요? 좀 보여주게유."

영문 모를 소문도 다 도는고!

"갈보라니 웬 갈보?" 하고 어리뻥뻥하다. 생각을 하니 턱없는 소리는 아니다. 눈치 있게 부엌으로 내려가서 보강지 앞에 웅크리고 앉았는 나그네의 머리를 은근히 끌어안았다. 자 저패들이 새댁을 갈보고 횡보고 찾아온 맥이다. 물론 새댁 편으로 망측스러운 일이겠지만 달포나 손님의 그림자가 드물던 우리 집으로 보면 재수의 빗발이다. 술국을 잡는다고 어디가 떨어지는 게 아니요 욕이 아니니 나를 보아 오늘만 술 좀 팔아주기 바란다.

이런 의미를 곰상궂게 간곡히 말하였다. 나그네의 낯은 별반 변함이 없다. 늘 한 양으로 예사로이 승낙하였다. 술이 온몸에 돌고 나서야 되술이 잔풀이가 된다. 한잔에 오 전 그저 마시긴 아깝다. 얼간한 상투박이가 계집의 손목을 탁 잡아 앞으로 끌어당기며

"권주가 좀 해. 이건 뀌어온 보릿자룬가."

"권주가? 뭐야유?"

"권주가? 아 갈보가 권주가도 모르나 으하하하." 하고는 무안에 취하여 풀 숙인 계집 뺌에다 꺼칠꺼칠한 턱을 문질러본다. 소리를 암만 시켜도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만 기울일 뿐. 소리는 못하나 보다. 그러나 노래 못하는 꽃도 좋다. 계집은 영 내리는 대로 이 무릎 저 무릎으로 옮아 앉으며 턱빝에다 술잔을 받쳐올린다.

술들을 담뿍 취하였다. 두 사람은 고라져서 코를 곤다. 계집이 칼라머리 무릎 위에 앉아 담배를 피워 올릴 때 코웃음을 흥 치더니 그 무지스러운 손이 계집의 아래 뱃가죽을 사양 없이 움켜잡았다. 별안간 "아야" 하고 퍼들껑하더니 계집의 몸뚱어리가 공중으로 도로 뛰어오르다 떨어진다.

"이 자식아, 너만 돈 내고 먹었니?"

한 사람 사이 두고 앉았던 상투가 콧살을 찌푸린다. 그러고 맨발 벗은 계집의 두 발을 양 손에 붙잡고 가랑이를 쩍 벌려 무릎위로 지르르 끌어올린다. 계집은 앙탕을 한다. 눈시울에 눈물이 엉기더니 불현듯이 쪼록 솓아진다.

방 안에서 왱마가리 소리가 끓어오른다.

"저 잡놈 보게 으하하...."

술은 연신 데워서 들여가면서도 주인은 불안하여 마음을 졸였다. 겨우 마음을 놓은 것은 훨씬 밝아서이다. 참새들은 소란히 지저귄다. 지직 바닥이 부스럼 자국보다 질배없다. 술 짠지쪽 가래침 담뱃재---뭣해 너저분하다. 우선 한 길치에 자리를 잡고 계배를 대보았다. 마수걸이가 팔십오 전 외상이 이 원 각수다. 현금 팔십오 전 두 손에 들고 앉아 세고 세고 또 세어보고....

뜰에서는 나그네의 혀로 끌어올리는 인사.

"안녕히 가십시게유."

"입이나 좀 맞추고 뽀! 뽀! 뽀!"

"나두."

 

 

찌르쿵! 찌르쿵! 찔거리쿵!

"방아머리가 무겁지유?....고만 까불까."

"들 익었세유. 더 쪄야지유."

"그런데 얘는 어쩐 일이야...."

덕돌이는 읍엘 보냈는데 날이 저물어도 여태 오지 않는다. 흩어진 좁쌀을 확에 쓸어 넣으며 홀어미는 퍽이나 애를 태운다. 요새 날새가 차지니까 늑대 호랑이가 차차 마을로 찾아내린다. 밤길에 고개 같은 데서 만나면 끽소리도 못하고 욕을 당한다.

나그네가 방아를 괴어놓고 내려와서 키로 확이 좁쌀을 담아 올린다. 주인은 그 머리를 씨담고 자기의 행주치마를 벗어서 그 위에 씌워준다. 계집의 나이 열아홉이면 활짝 필 때이건만 버케 된 머리칼이며 야윈 얼굴이며 벌써부터 외양이 시들어간다. 아마 고생을 짓한 탓이리라.

날씬한 허리를 재발이 놀려가며 일이 끊일 새 없이 다기지게 덤벼드는 그를 볼 때 주인은 지극히 사랑스러웠다. 그러고 일변 측은도 하였다. 뭣하면 딸과 같이 자기 곁에서 길래 살아주었으면 상팔자일 듯싶었다. 그렇 수만 있다면 그 소 한 바리와 바꾼대도 이것만은 안 내놓으리라고 생각도 하였다.

아들만 데리고 홀어미의 생활은 무던히 호젓하였다. 그런 데다 동리에서는 속 모르는 소리까지 한다. 떠꺼머리총각을 그냥 늙힐테냐고. 그러나 형세가 부침으로 감히 엄두고 못 내다가 겨우 올 봄에서야부터 서둘게 되었다. 의외로 일은 손쉽게 되었다. 이리저리 언론이 돌더니 남산에 사는 어느 집 둘째딸과 혼약하였다. 일부러 홀어미는 사십 리 길이나 걸어서 색기의 손등을 문질러보고는

"참 애기도 잘도 생겼네!"

좋아서 사돈에게 칭찬을 뇌고 뇌곤 하였다.

그런데 없는 살림에 빚을 내어가며 혼수를 다 궤매놓은 뒤였다.

혼인날을 불고 이틀 격해놓고 일이 고만 빗나갔다. 처음에야 그런 말이 없더니 난데없는 선채금 삼십 원을 가져오란다. 남의 돈 삼 원과 집의 돈 오 원으로 거투꾼에게 품삯 노비 주고 혼수 하고 단지 이 원 --- 잔치에 쓸 것밖에 안 남고 보니 삼십 원이란 입내도 못 낼 소리다. 그 밤 그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넋 잃은 팔을 던져가며 통밤을 새웠던 것이다.

"어머님! 진지 잡수세유."

새댁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끔찍이 귀여우리다. 이것이 단 하나의 그의 소원이었다.

"다리 아프지유? 너무 일만 시켜서.....?     

 

 

주인은 저녁 좁쌀을 쓸어 넣다가 방아다리에 깝신대는 나그네를 걸삼스럽게 쳐다본다. 방아가 무거워서 껍적이며 잘 오르지 않는다. 가냘픈 몸이라 상혈이 되어 두 볼이 새빨갛게 색색거린다. 치마도 치마려니와 명주 저고리는 어찌 삭았는지 어깨께가 손바닥만 하게 척 나갔다. 그러나 덕돌이가 왜포 다섯 자를 바꿔 오거는 첫대 사발화통된 속곳부터 해 입히고 차차 할 수밖엔 없다.

"같이 찝시다유."

주인도 남저지 방아다리에 올라섰다. 그리고 찌껑 위에 놓인 나그네의 손을 눈치 안 채게 슬며시 쥐어보았다. 더도 덜도 말고 그저 요만한 며느리만 얻어도 좋으련만! 나그네와 눈이 고만 마주치자 그는 열적어서 시선을 돌렸다.

"퍽도 쓸쓸하지요?" 하며 손으로 울 밖을 가리킨다. 첫밤 같은 석양판이다. 색동저고리를 떨쳐 입고 산들은 거방진 방아소리를 은은히 전한다. 찔그러쿵! 찌러쿵!

그는 나그네를 금덩이같이 위하였다. 없는 대로 자기의 옷가지도 서로서로 별러 입었다. 그리고 잘 때에는 딸과 진배없이 이불 속에서 품에 꼭 품고 재우곤 하였다. 하지만 자기의 은근한 속셈은 치마 입에 드어내어 말은 못 건넸다. 잘 들어주면 이어니와 뭣하게 안다면 피차의 낯이 뜨뜻한 일이었다.

그러자 맘먹지 않았던 우연한 일로 인하여 마침내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나그네가 온 지 나흘 되던 날이었다. 거문관이 산기슭에 있는 영길네가 벼방아를 좀 찧어달라고 한다. 나그네는 줄밤을 새움으로 낮에나 푸근히 자라고 두고 그는 홀로 집을 나섰다.

머리에 겨를 보얗게 쓰고 맥이 풀려서 집에 돌아온 것은 이럭저럭 으스레하였다. 늘큰한 다리를 끌고 뜰 앞으로 향하다가 그는 주춤하였다. 나그네 홀로 자는 방에 덕돌이가 들어갈 리 만무한데 정녕코 그놈일 게다. 마루 끝에 자그마한 나그네의 집석이가 놓인 그 옆으로 길목채 벗은 왕달집석이가 우악살스럽게 놓였다. 그러고 방에서는 수군수군 낮은 말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는 무심코 닫은 방문께로 귀를 기울였다.

"그럼 와 그러는 게유? 우리 집이 굶을까 봐 그리시요?

'...."

"어머니도 사람은 좋아유..... 올에 잘만 하면 내년에는 소 한바리 사놓을 게구 농사만 해두 한 해에 쌀 넉 섬 조 엿 섬 그만하면 고만이지요....내가 싫은 게유?

"....."

"사내가 죽었으니 아무튼 얻을 게지유?" 옷 타지는 소리. 부스럭 거린다.

"아이!아이! 아이 참! 이거 노세유."

쥐 죽은 듯이 감감하다. 허공에 아롱거리는 낙엽을 이윽히 바라보며 그는 빙그레한다. 신발 소리를 죽이고 뜰 밖으로 다시 돌쳐섰다.

저녁상을 물린 후 그는 시치미를 딱 떼고 나그네의 기색을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젊은 아낙네가 흣몸으로 돌아다닌대두 고생일 게유. 또 어차피 사내는...."

여기서부터 사리에 맞도록 이 말 저 말을 주섬주섬 꺼내오다가 나의 며느리가 되어줌이 어떻겠느냐고 꽉 토파를 지었다. 치마를 홉싸고 앉어 갸웃이 듣고 있던 나그네는 치마끈을 깨물며 이마를 떨어뜨린다. 그러고는 두 볼이 발개진다. 젊은 계집이 아 시집가겠소 하고 누가 나서랴. 이만하면 합의한 거나 틀림없을 것이다.

혼수는 전에 해둔 것이 있으니 한시름 잊었다. 그대로 이앙이나 고쳐서 입히면 고만이다. 돈 이원은 은비녀 은가락지 사다가 각별히 색시에게 선물 내리고.....

일은 밀수록 낭패가 많다. 금시로 날을 받아서 대례를 치렀다. 한편에서는 국수를 누른다. 잔치 보러 온 아낙네들은 국수 그릇을 얼른 받아서 후룩후룩 들이마시며 색시 잘났다고 추었다.

주인은 즐거움에 너무 겨워서 추배를 흥근히 들었다. 여간 경사가 아니다. 뭇사람을 삐집고 안팎으로 드나들며  분부하기에 손이 돌지 않는다.

"얘 메누라! 국수 한 그릇 더 가져온------"

어찌 말이 좀 어색하구면---다시 한 번

"메누라 얘야! 얼른 가져와-----"

삼십을 바라보자 동굿을 찔러보니 제불에 멋이 질려 비뚜름하다. 덕돌이는 첫날을 치르고 부쩍부쩍 기운이 난다. 남이 두단을 털 제면 그의 볏단은 석 단째 풀쳐 나간다. 연방 손바박에 침을 뱉아 붙이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끅! 끅! 끅! 찍어라 굴려가 끅! 끅! "

동무의 품앗이 일이다.

검으무투룩한 젊은 농군 댓이 볏단을 번차례로 집어든다. 열에 뜬 사람같이 식식거리며 세차게 벼알을 절구통 배에서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얘! 장가들고 한턱 안 내니?"

"일색이드라 딴딴히 먹자. 닭이냐? 술니냐? 국수냐?"

"웬 국수는? 너는 국수만 아느냐?"

저희끼리 찧고 까분다. 그들은 일을 놓으며 옷깃으로 땀을 씻는다. 골바람이 벼깔치를 부옇게 풍긴다. 옆 산에서 푸드덕 하고 꿩이 날며 머리 위를 지나간다. 갈퀴질을 하던 얼굴 얿적이가 갈퀴를 놓고 씽긋하더니 달려든다. 장난꾼이다. 여러 사람의 힘을 빌려 덕돌이 입에다 헌 짚신짝을 물린다. 버들껑거린다. 다시 양귀를 두 손에 잔뜩 훔켜잡고 끌고 와서는 털어놓은 벼무더기 위에 머리를 틀어박으며 동서남북으로 큰절을 시킨다.

"야아! 야아! 아!"

"아니다, 아니야. 장갈 갔으면 산신령에게 이러하다 말이 있어야지 괜스레 산신령이 노하면 눈깔망나니(호랑이) 내려보낸다."

 뭇 웃음이 터져 오른다. 새신랑이 옷이 이게 뭐냐. 볼기짝에 구멍이 다 뚫리고....빈정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덕돌이는 상투의 먼데기를 털고 나서 곰방대를 피워 물고는 싱그레 웃어 치운다. 좋은 옷은 집에 두었다. 인조견 조끼 저고리 새하얀 옥당목 겹바지. 그러나 아끼는 것이다. 일할 때엔 헌 옷을 입고 집에 돌아와 쉴 참에 입는다. 잘 때에도 모조리 벗어서 더럽지 않게 착착 개어 머리맡에 위해놓고 자곤 한다. 의복이 남루하면 인상이 추하다. 모처럼 얻은 귀여운 아내니 행여나 마음이 돌아앉을까 미리미리 사려두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야말로 이십구 년 만에 누런 이 조각에다 어제서야 소금을 발라본 것도 이 까닭이었다.

덕돌이가 볏단을 다시 집어올릴 제 그 이웃에 사는 돌쇠가 옆으로 와서 품을 앗는다.

"얘 덕돌아! 너 내일 우리 조마댕이 좀 해줄래?"

"뭐 어째?" 하고 소리를 뻑 지르고는 그는 눈귀가 실룩하였다.

"누구보고 해라야? 응? 이자식 까놀라!"

어제까지 턱없이 지냈단대도 오늘의 상투를 못 보는가---

바로 그날이었다. 윗간에서 혼자 새우잠을 자고 있던 홀어미는 놀라 눈이 번쩍 띄었다. 만뢰 잠잠한 밤중이다. "어머이! 그거 달아났세유. 내 옷두 없고...."

"응?" 하고 반마디 소리를 치며 얼떨김에 그는 캄캄한 방 안을 더듬어 아랫간으로 넘어섰다. 황망히 등잔에 불을 당기며

"그래 어디로 갔단 말이냐?"

영산이 나서 묻는다. 아들은 벌거벗은 채 이불로 앞을 가리고 앉아서 징징거린다. 옆자리에는 빈 베개뿐 사람은 간 곳이 없다. 들어본즉 온종일 일한 게 피곤하여 아들은 자리에 들자 고만 세상을 잊었다. 하기야 그때 아내도 옷을 벗고 한자리에 누워서 맞붙어 잤던 것이다. 그는 보통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새침하니 드러누워서 천장만 쳐다보았다. 그런데 자다가 별안간 오줌이 마렵기에 요강을 좀 집어달래려고 보니 뜻밖에 품 안이 허룩하다.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다. 그래서는 어림짐작으로 우선 머리맡에 위해놓았던 웃을 더듬어보았다. 딴은 없다--

필연 잠든 틈을 타서 살며시 옷을 입고 자기의 옷이며 버선까지 들고 내뺐음이 분명하리라.

"도적년!"

모자는 광술불을 켜들고 나섰다. 부엌과 잿간을 뒤졌다. 그러고 뜰 앞 숲 풀 속도 낱낱이 찾아봤으나 흔적도 없다.  "그래도 방 안을 다시 한 번 찾아보다."

홀어미는 구태여 며느리를 도적년으로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거반 울상이 되어 허벙저벙 방 안으로 들어왔다. 마음을 가라앉혀 들쳐보니 아니면 다르랴, 며느리 베개 밑에서 은비녀가 나온다. 달아날 계집 같으면 이 비싼 은비녀를 그냥 두고 갈 리 없다. 두말없이 무슨 병폐가 생겼다.

홀어미는 아들을 데리고 덜미를 집히는 듯 문밖으로 찾아나섰다.

마을에서 산길로 빠져나는 어귀에 우거진 숲 사이로 비스듬히 언덕길이 놓였다. 바로 그 밑에 석벽을 끼고 깊고 푸른 웅덩이가 묻히고 넓은 그 물이 겹겹산을 에돌아 약 십 리를 흘러내리면 신연강 중턱을 뚫는다. 시새에 반쯤 파묻혀 번들대는 큰 바위는 내를 싸고 양쪽으로 질펀하다. 꼬부랑길은 그 틈바구니로 뻗었다. 좀체 겆지 못할 재갈길이다. 내를 몇 번 건너고 흠상궂은 산들을 비켜서 한 오 마장 넘어야 겨우 길다운 길을 만난다. 그러고 거기서 좀더 간 곳에 낵사에 외지에 일허진 오막살이 한 칸을 볼 수 있다. 물방앗간이다. 그러나 이제는 밥을 찾아 흘러가는 뜬몸들의 하룻반 숙소로 변하였다.

벽이 확 나가고 네 기둥뿐인 그 속에 힘을 잃은 물방아는 을씨년궂게 모로 누웠다. 거지고 고 옆에 홑이불 위에 거적을 덧쓰고 누웠다. 거푸진 신음이다. 으! 으! 으흥! 서까래 사이로 달빛은 쌀쌀히 흘러든다. 가끔 마른 잎을 뿌리며---

"여보 자우? 일어나게유 얼핀!"

계집의 음성이 나자 그는 꾸물거리며 일어앉는다. 그리고 너털대는 홑적삼을 깃을 여며잡고는 덜덜 떤다. "인제 고만 떠날 테이야? 쿨룩...."

말라빠진 얼굴로 계집을 바라보며 그는 이렇게 물었다. 십 분 가량 지났다. 거지는 호사하였다. 달빛에 번쩍거리는 겹옷을 입고서 지팡이를 끌며 물방앗간을 등졌다

골골하는 그를 부축하여 계집은 뒤에 따른다. 술집 며느리다.

"옷이 너무 커----좀 적었으면...."

"잔말 말고 어여 갑시다 펄쩍..."

계집은 불이 나게 그를 재촉한다. 그러고 연해 돌아다보길 잊지 않았다.

그들은 강길로 향한다. 개울을 건너 불거져내린 산모롱이를 막 꼽들려 할 제다. 뒤에서 사람 욱이는 소리가 끊일 듯 날듯 간신히 들려온다. 바람에 먹히어 말저는 모르겠으나 재없이 덕돌이의 목성임은 넉히 짐작할 수 있다.

"아 얼른 좀 오게유." 똥끝이 마르는 듯이 계집은 사내의 손목을 겁겁히 잡아끈다. 병든 몸이라 끌리는 대로 뒤툭거리며 거지도 으슥한 산 저편으로 같이 사라진다. 수은 빛 같은 물방울을 품으며 물결은 산벽에 부닥뜨린다. 어디선지 지정치 못할 늑대 소리는 이 산 저 산서 와글와글 굴러내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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