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 게바라와 바보 노무현
- Posted at 2009/06/14 15:05
'체 게바라와 오리아나 팔라치' 글을 여기에 올려봅니다. '흠모할 수 밖에 없는 인물, 권력주의에 저항하는 영원한 마이너리티, 반영웅적 영웅, 사람냄새 나는 혁명인간'이지요. .
언젠가는 '바보 노무현과 체 게바라' 을 쓰게되는 날도 있겠습니다. 기대해 보지요.
이 글은 <김진애의 남녀열전> 책에 실렸던 한 꼭지랍니다.
체 게바라(1928-1967, 혁명가, 게릴라, 의사, 시인)와 오리아나 팔라치(1930-. 종군기자, 인터뷰 기자, 작가)는 20세기의 대표적 ‘반 권력 아이콘’이다. 한 사람은 게릴라전의 주역이었고 또 한 사람은 반전 작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력’과 ‘필력’, ‘총’과 ‘펜’을 각자의 도구로 하여 권력과의 치열한 전쟁을 치른 두 인물은 이를테면 ‘반 영웅적 영웅’이다.
이들의 사상과 행적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두 인물은 ‘흠모’의 대상이다. 인간의 ‘순수성’, ‘분노와 연민’, ‘절망과 희망’, ‘소신과 행동’에 대한 본원적 의문을 제기하는 인물들이 아닐 수 없다. 제도권에서는 비록 마이너리티에 불과하였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매혹의 대상, 흠모의 대상이 되는 것 아닐까?
강렬한 눈매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의 유명한 포스터 사진(사진가 알베르타 코르다의 작업)은 무언가 운명적인 것, 어딘지 불멸적인 것을 연상시킨다. 현실에 괘념하지 않는 눈빛, 저 높은 것을 향한 눈빛, 미소를 머금은 듯한 야무진 입매, 헝클어진 굽실 머리, ‘메시아’적인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할까.
최초의 여성 종군기자로서 베트남에서 활약했던 사진 속의 팔라치는 도전적이면서도 우아하다. 길게 내린 생머리, 세계를 빨아들일 듯 큰 눈, 갸름한 턱 선에서 절대로 꺾이지 않을 듯한 그 어떤 강단이 느껴진다. ‘복수의 천사처럼 권력가들을 비판한다.’는 평이 썩 어울린다. (오른쪽. 가장 대표적인 오리아나 팔라치 사진)
흠모할 수밖에 없는 순수 인간
우리는 어떤 사람을 흠모하게 될까? 기득권을 던져 버릴 수 있는 사람, 도전을 할 수 있는 사람, 생각뿐 아니라 행동을 하는 사람, 길을 아는 것 이상으로 그 길을 걷는 사람, ‘더 큰 목적’에 자신을 투입할 수 있는 사람, 일생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사람 아닐까? 한마디로 ‘순수한 인간’이다.
체 게바라는 극한적으로 자신을 던졌다. 안정된 중산층의 삶, 의사로서의 삶을 던져 버리고 총을 들었고 자기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에 가서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다. 조국을 떠나서 과테말라에서 혁명가로서 다시 태어났으며, 1959년 카스트로와 함께 미국의 코앞에서 쿠바 혁명을 성공시켰고, 쿠바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이라는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제국주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싸워야 한다는 성스러운 임무를 안고 새로운 전장을 찾아간다.’는 편지를 남기고 아프리카 전선으로 떠났다가 결국 볼리비아 전선에서 죽는다.
게바라만큼 극적이진 않더라도 팔라치의 행적 역시 범상찮다. 상대적으로 안온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게바라가 의사 자격증을 따고 이십대에 남아메리카를 순례했던 여행에서 뒤늦게 현실에 눈을 떴다면, 피렌체 출신의 팔라치는 열 살 적부터 아버지가 리더였던 파시즘 저항운동에 동참하며 총 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열다섯 살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났고 열여섯 살에 기자가 되었다니, 팔라치의 말마따나 ‘정치의 시대에, 가난하게, 여성으로 태어난 운명’이 그를 이끌었다고 할까?
1967년은 각별한 해다. 체 게바라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독재 정권하의 볼리비아 군에 의해 체포되어 CIA의 지침에 의해 또는 묵인하에(그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재판 한 번 없이 바로 사살당했고, 팔라치는 당시 활동하던 <유럽인(Europeo)> 지의 인터뷰 기자로서의 명성을 뒤로 하고 베트남으로 가서 7년 동안 종군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최초의 여성 종군기자 기록이다.
체의 죽음은 바야흐로 유럽의 1968년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현장에서 시신조차 없어져 버린 체 게바라. 오직 남은 것은 눈을 활짝 뜨고 죽은 체 게바라의 사진. 이미 세계적 인물이 되었던 게바라는 마치 예수처럼 죽음을 통해 다시 태어난 셈이다. 유럽의 학생들은 체의 사진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바다와 대지 위에 체라는 혁명의 태양이 떠오른다.’라는 깃발을 펄럭이며.
만약 팔라치와 체 게바라가 만났더라면 어떤 인터뷰, 어떤 논쟁을 했을까? 팔라치의 수많은 인터뷰 중에는 카스트로 총리도 끼어 있지만 애석하게도 체 게바라에 대한 인터뷰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시간의 운명이 그러했다. 두 인물이 만났었더라면 과연 어떤 대화가 이루어졌을까 무척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팔라치는 체 게바라에게 어떤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을까?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를 붉으락푸르락 만들었던 질문, ‘전쟁에 대해서 얘기해 봅시다. 당신은 평화주의자가 아니죠?’에 필적할 만한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든 찾아냈을 것 같지 않은가.
팔라치와 체 게바라는 권력과의 전쟁을 다른 방식으로 수행했다. 체 게바라는 무력을 선택했고 팔라치는 필력을 선택했다. 자신의 조국을 포함해서 라틴 아메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을 제국주의와 그 비호 아래 전횡하는 독재정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체 게바라의 갈망. “인간의 운명을 결정지어 온 이들이 보통 사람과 달랐던 점은 그들의 지성도 힘도 해탈의 경지에 이른 사상도 아니며, 오직 보다 원대한 야망 하나뿐이었다.”는 팔라치의 통찰은 체 게바라에게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어떤 사람 속에나 숨어 있는 청년적 혼을 두들겨 깨우는 체 게바라의 말.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이 말은 팔라치에게 어떤 의미로 적용될까? ‘전쟁으로 몰아넣는 세속 권력, 인종차별, 남녀차별, 폭력을 없애고 싶다.’는, 인간 세계에서 거의 불가능한 것 같은 꿈을 잃지 않으면서 나름의 무기를 택하여 리얼리스트로서의 삶을 살아왔다고 팔라치는 자신에게 되물을까?
사람 냄새 나는 혁명 인간
체 게바라와 팔라치가 ‘혁명 아이콘의 경지’에까지 이른 것은 이들의 행적뿐 아니라 이들에게서 풍기는 인간의 냄새 때문일 것이다. 그 인간적 냄새가 이들의 행동을 견인한 것도 분명하다.
팔라치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은 저널리스트 활동 이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세 편의 소설 덕분이다.『한 남자』,『인샬라』,『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보내는 편지』. 각기 그리스의 독재정치, 이슬람 국가에서의 폭력, 유산과 여성 폭력에 대한 분노와 깊은 절망으로부터 태어난 책이다. 팔라치는 “깊은 감정, 즉 심리적이자 정치적인 감정과 지적인 감정에 의해 자신의 책이 태어난다.”는 술회를 한 바 있는데, 그가 행한 정치 인터뷰에 그의 감정이 담긴 만큼이나 그의 책은 저자의 감정을 독자에게 동화시키면서 ‘인간, 오리아나 팔라치’를 느끼게 한다.
그 중에서도『한 남자』라는 책은 그리스의 파파도풀루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 투사 알레코스 파나굴리스와 1973년부터 암살당하는 1976년까지 3년 동안 빠졌던 광풍 같은 사랑에서 태어난 책이다. 파나굴리스는 냉정하고 치열한 투사였던 모양이다. 대통령 암살범으로 체포되어 5년 옥고를 치르면서 수많은 탈옥 시도를 했고 사면을 받아 나와서도 투쟁을 그치지 않던 인물이다.
“나는 ‘함께 있어 행복한 여자’를 바라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여자는 ‘동지’이자 ‘친구’이자 ‘동반자’이자 ‘형제’다.”라고 말했던 남자를 고통스럽게 사랑했던 여자 팔라치, 그의 암살로 인해 절망과 분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팔라치, 자신의 남자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 펜을 든 팔라치, 여성이라는 존재 이전에 팔라치는 치열한 ‘인간’이다. 세계적 기자로서 화려한 영광에 둘러싸였으면서도 고통을 당하고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이 팔라치의 진짜 모습이다.
체 게바라에게는 유쾌하게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일화가 적잖다. 두 살 때부터 지병으로 천식을 앓으면서도 시가를 피워 대던 그에게 주치의가 ‘절대 금연’ 명령을 내리자 1미터 길이의 시가를 만들어 “이거 하나만 피우고 끊겠다.”고 익살을 떠는가 하면, 게릴라 전투 중에도 그가 못내 좋아했던 ‘럭비’ 게임을 했다고 한다. 전장의 긴장 속에서 게바라는 ‘쾌활한 리더’ 역할을 맡았다. 목숨을 거는 전선에서 쾌활함은 둘도 없는 친구였을 수도 있다. ‘체’라는 이름은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붙었을 것이다.(‘체’는 ‘어이 친구’ 하듯 허물없이 동무를 부르는 스페인 말이다.)
무엇보다도 게바라는 글을 쓰는 혁명가였다. 『백범일지』없는 김구 선생을 생각할 수 없듯이, 글 없는 체 게바라는 없다.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베껴 쓴 수첩을 볼리비아 산림 속에서 죽는 마지막까지 품고 다닐 정도로 시를 외우고 살았고, 그 자신 시를 썼다. 그를 세계적인 인물로 만든 것은 쿠바 혁명 성공 후에 그의 이념과 이상을 쓴 글이 미국으로 퍼져 나갔고, 볼리비아에서의 마지막 1년을 담담하게 기록한 『일지』덕분이다.
체 게바라는 부모님과 아내, 아이들에게 애정을 담은 수많은 편지를 보냈다. 그 따뜻한 편지들을 보면 인간 게바라가 택했던 힘든 선택이 더욱 불가사의하다.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쿠바를 떠나면서 다섯 아이들에게 남긴 편지의 한 구절이다. 손에 직접 무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체 게바라는 따뜻한 인간으로 느껴진다.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라는 자연인 이름으로 살았더라면 게바라는 아주 따뜻하고 점잖고 유머러스한 의사 지식인으로 살았을 것이련만.
악투하는 전쟁터에서 체가 남긴 기록은 통렬하다. 퇴주하는 기로에서, 무엇을 들고 갈 것이냐 는 선택의 기로에서 적은 글. “의약품이냐, 탄약이냐? 나는 누구인가? 의사인가, 혁명가인가? 나는 결국 탄약통을 짊어졌다.” 그런 갈등을 택한 인간, 체 게바라….
21세기에 재평가되는 두 인물
폭력과 혁명의 20세기를 대변했던 두 인물은 과연 21세기 이 시대에는 어떤 의미일까? 팔라치는 21세기에 다시 논쟁의 한가운데에 섰다. 1992년부터 칩거하던 팔라치는 2001년 9‧11 테러가 난 다음날 펜을 들고『분노와 자존심(Anger and Pride)』이라는 책을 썼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책’이라고 프랑스에서 판금 소송이 걸렸다.(프랑스 재판은 ‘표현의 자유’에 손을 들어 주었다.) 권력자의 폭력에 맞서왔던 팔라치, 유대인 차별주의에 맞서 싸웠고 베트콩의 편에 서서 반미적이라는 평을 받았고 인권 의식에 대해서는 의심할 바 없다는 평을 받던 팔라치가 ‘인종적 파시스트’로 비판받으니 아이러니는 아이러니다.
21세기의 폭력적 상황에 대해서는 팔라치도 속수무책일까? 팔라치가 이슬람의 배타적 근본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아야톨라 호메이니를 인터뷰할 때, 차도르를 할 수 없이 쓰고 갔다가 호메이니가 “차도르는 어울리는 여성을 위한 거다.”라고 하자 차도르를 벗어 찢어 버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팔라치는 그 자리에서 버텨서 결국 뛰쳐나가 버린 호메이니와의 인터뷰를 끝냈다고 한다.) 2004년에 그녀가 한 인터뷰를 보면 팔라치는 21세기를 ‘반혁명(counter-revolution)의 시대’라 부른다. 오직 증오와 복수의 동기만이 원동력인 듯한 21세기의 새로운 폭력 상황 앞에서 20세기에 그나마 순수했던 혁명이란 완전히 물 건너가 버렸다고 보는 걸까?
더욱이나, 이 시대에 부는 체 게바라의 붐은 어떻게 봐야 할까? 1997년 그의 사망 30주기를 맞으며 게바라는 ‘부활’의 조명을 받기 시작한다. ‘체 게바라의 명성을 이용하려는 카스트로의 정치 공작’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쿠바 내에서뿐 아니라 그가 처형당한 볼리비아 바예그란데에서도 체 게바라의 유해를 찾으려는 노력이 다시 불붙고 ‘성지화’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일어났으며, 체 게바라에 대한 저작이 활발하게 발표되었다.
우리 사회에 체 게바라가 본격 소개된 것도 이즈음이다. 그의 평전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서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되었을 뿐 아니라, 마치 파리나 미국 서부나 쿠바의 아바나에서처럼 그의 얼굴이 박힌 포스터와 티셔츠가 관광 상품처럼 팔리고, 젊은이들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그의 포스터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도대체 어떤 붐일까? 게바라가 남긴 말처럼 ‘이 세계 어디에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지는 불의를 깨닫고자’ 하는 움직임일까? 그런 용기까지는 차마 못 내지만 그렇게 못하는 면죄부를 얻기 위해서 영화배우보다도 더 매력적인 체 게바라의 포스터가 필요한 걸까? 감히 전선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혁명의 피’를 달래려는 젊은이들의 자기 최면일까? 이 시대 젊은이들의 갈증은 어떤 것일까? 어떤 ‘혁명’을 꿈꾸고 있는가? 이 시대에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갈등은 여전하지만 훨씬 더 복잡하고 이슈들이 뒤엉키고 문제가 선명치 않은 시대이기에 더욱.
우리 기억 속에 두 인물은 언제나 젊다. 체 게바라는 우리에게 선명하게 남아 있는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지리산의 빨치산으로 죽은 ‘최대치’를 연상시킨다. 맑은 눈, 깊은 눈. 오리아나 팔라치의 폭력적 권력에 대한 도전은 언제나 우리 속에 잠자고 있는 불을 다시 지핀다.
분노하라, 행동하라, 그러나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잃지 말라. 이 시대의 젊음이란 어떤 뜻인지 생각해 보라. 세속적이고 상투적인 젊음에서 벗어나서 다시 한 번 ‘순수한 인간’이 된다는 의미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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