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칼럼

'외로운 늑대'에게 배워야할 것은 '자기 성찰'이다

미송 2010. 2. 1. 23:37

 

'외로운 늑대'에게 배워야할 것은 '자기 성찰'이다

 

 

내가 이갑용 씨(민주노총 前 위원장)의 자세한 면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울산에서 여성운동을 하면서였다. "생활에서부터 나름대로 올곧은 운동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취지의 모임이었는데 모임을 하면서 놀랬던 것이 있다. '노동운동의 메카'라는 도시답지 않게 비민주적인 운동 관행과 가부장제 의식이 강고하다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문제제기도 하면서 노력하던 가운데 현대자동차 식당 아줌마의 고용문제를 노조가 외면했다는 내용을 고발한 '밥꽃양' 영화가 세상에 나왔다. 그때 이갑용 씨 부인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에 함께 나섰다. 그런데 남편인 이갑용 씨가 보여준 태도는 울산의 '관행'과 사뭇 달랐다. 가부장제의 모습은 그의 태도 속에 없었다. 외려 매우 자유롭고 공명정대했다. 당연히 매우 인상에 남았다.

그 후 이갑용 씨가 동구청장에 당선됐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게시판에서 그의 면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정파적인 내용의 글과 무분별한 인터넷 글 사이에서 그는 성실하고 진지하게 구청장 활동을 보고하고 있었다.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의 활동에만 주목하고 있을 때였다. 진정한 지방자치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구청장 활동이 경시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라 그의 글은 민주노동당이 처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치를 지닌 듯 느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활발한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평범한 자서전을 뛰어넘은 한 노동운동가의 자서전

▲ <길은 복잡하지 않다>(철수와영희 펴냄)ⓒ프레시안
이렇듯 나에게 신선한 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이갑용 씨가 자신의 노동운동 경험을 담은 책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진득하고 신선한 노동운동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기쁨이 앞섰지만 곧 까닭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그동안 '운동하는 삶'을 주제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던가! 그러나 저자들의 운동에 대한 자부심 뒤에 숨어있는 속물적이라 할 그 무언가를 알게 되면서 또 얼마나 많은 실망과 배반감을 느꼈던가?

나는 이제 사람을 얻고 싶지,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책을 덮으면서 나는 이갑용이라는 사람의 진면목을 알게 된 기쁨 보다는 그가 제기한 우리 현실의 엄중함에 마음이 막막해졌다. 그만큼 그는 단지 자기 자신을 알리는 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가 하나의 씨앗이 되어 우리 운동이 진전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당연히 이 책 <길은 복잡하지 않다>(철수와영희 펴냄)은 흔히 개인의 업적 나열이 되기 쉬운 자서전을 뛰어 넘고 있었다.

이 책은 '노동자 대투쟁' 이후의 노동운동사다

'길은 복잡하지 않다.' 마치 깊은 산 속에서 오래 수도한 고승의 포효 같은 책 제목은 책 내용을 충실히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그것을 순정한 노동자의 한결같은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이야기는 나름대로 획득한 노동운동가의 지위와 권위에 기대지 않는다. 사회과학 학습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에 기반한 날카로운 의식으로, 인생의 매 시기마다 그리고 매 사안마다 닥쳤던 삶의 국면에 대해 솔직하게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자기 성찰의 모습을 보여준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한 인간이 이토록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또 이 책은 노동자 대투쟁 이후의 노동운동사라고도 말할 수 있다. 골리앗 투쟁, 노동조합 민주화 투쟁, 민주노총 위원장 활동, 구청장 활동 등.

그는 골리앗 투쟁이 그토록 영웅적인 투쟁이 아니었음을 겸손하게 이야기한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되면서 맞닥뜨리는 노동자의 배신에 대해 단호한 결기도 보이지만 권용목 씨의 경우처럼 그 역시 열악한 노동자의 처지에서 나온 안타까운 배신이었음을 이해하는 배려도 보인다.

그가 폭로하는 충격적 민주노총의 실상…그 근거는 어디에?

민주노총 위원장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당혹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에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민주노총이 민주화 운동 진영의 중심축을 차지한다. 따라서 민주노총 활동은 우리 운동의 수준을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그런데 이갑용 씨가 수많은 실명을 언급하면서 폭로하는 민주노총의 실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한마디로 권력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정파 관료가 좌지우지하는 민주노총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중심축은커녕 오히려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저해한다고까지 할 정도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갑용 씨는 간단하게 그 해답을 이야기한다. 길은 복잡하지 않은 것이다. 민주노총을 정파관료가 아닌 노동자의 손으로 돌려주기 위한 뼈아픈 자기 각성의 노력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것. 수많이 등장하는 실명의 당사자들은 자신이 한 편파적인 사람의 글에 의해서 그의 활동이 비평받았다는 불쾌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비판은 막연한 개인의 호감도에 의한 것은 아니다. 이갑용 씨는 각자의 활동에 대해 그 근거를 대고 있다.

민주노총은 외부의 사람이 보기에도 이미 막연한 '자기 혁신' 구호로 개혁을 이룰 수 없을 만큼 늪에 빠져있다. 누군가 자신의 온 몸을 던져 비판의 화살을 던져야 소생의 계기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난 이 책의 백미가 이갑용 씨가 노동자 구청장이라는 소명 의식으로 개혁한 구청장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주민의 생활 터전인 주민자치에서 그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민주 운동 진영이 몇 명 국회에 입성하는가를 목표로 삼는다.

민주진영의 지방자치 홀대 속에서 보수 진영은 완강히 지방자치 권력에서 치밀하게 권력의 뿌리를 장악하고 있다. 노동자 구청장이 보여주는 구청장 활동은 어떤 것일까? 그는 과감하게 구청장 활동의 핵심인 인사권과 예산권을 버리고도 훌륭하게 주민이 주인 되는 구청장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이것이야말로 노동자가 자기 이익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의 개혁의 선봉장으로 활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모범사례가 아닐까?

이갑용과 같은 '외로운 늑대'들이 더 많이 외롭기를…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미래의 희망과 함께 이루어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뼈아픈 자기 성찰의 관점으로 서술된다.

우리 사회는 어디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것을 자기 성찰로 생각한다. 스스로 자기 소명을 다하고 공동체의 변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삶의 명제에서 우리는 자기 성찰이라는 화두를 공통의 실천과제로 삼아 서로 연대할 수 있고 상호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갑용 씨의 별명은 권력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민주노총의 정파 조직들을 혹독히 비판한 대가로 '외로운 늑대'라 한다. 난 그가 더 이상 '외로운 늑대'가 되지 않기를 희망하나 현실의 또 다른 소외된 '외로운 늑대'들은 아마 그가 오래 '외로운 늑대'의 역할을 다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현실에 과감하게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는 자기 성찰의 근원적 힘일 테니까.

 
곽복희/ 강서양천사랑의전화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