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칼럼

구본형 <내가 알고 있는 슬픈 단어 하나>

미송 2010. 4. 25. 15:53

내가 알고  있는 슬픈 단어 하나 / 구본형

 

 

나라가 어려울 때, 자식을 내 놓을 수밖에 없는 사람, 그 사람은 비극적이다.  슬픔이 자욱하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슬픈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말이다.   이 말의 라틴어 어원은  '프롤레스 (proles)라고 한다.  '자식' 이라는 뜻이다.  로마시대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자식 밖에는 국가를 위해 헌상할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프롤레타리우스'란다.  여기서 무산의 노동자 계급을 말하는 '프롤레타리아'라는 독일어가 생겼고,  이 말이 전 유럽에 퍼져 나간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이 말 속에 자식을 죽음의 장소로 보내야하는 부모의 서글픔이 가득하다.  그들이 없었다면 역사상 어느 나라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부자들이 함선과 가진 재물로 나라의 위기에 기여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과 자식의 피와 생명으로 나라를 구한다.

 

한 사회가 가진 슬픔 속에 젊은이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만한 것은 많지 않다.  비가 그치고 햇빛이 찬란하다. 비온 다음의 태양이야말로 더욱 빛나기 마련이다. 젊음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그들, 그리고 그들을 떠나 보낸 21세기 한국의 '프롤레타리우스' 들의 슬픔을 위해 오늘은 아주 밝고 맑은 하늘이었으면 좋겠다.

 

오늘 나는 존 레논의 'imagine'을 생각한다. 2절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나라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고 죽는 일이 없기를, 종교의 이름으로 자신을 죽이고, 남을 죽이는 일이 없기를... 우리 모두 그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It's not hard to do) 라고 믿을 수 있기를.  믿음은 바로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니,  이 단순한 일을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믿을 수 있기를. 그렇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