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베라는 말을 배우다 / 박현수
슴베라는 말,
슴베찌르개를 볼 때마다 궁금해지는 말,
사전을 찾으려다 금세 잊어버리는 말,
큰맘 먹고 사전을 뒤지면
칼, 호미, 낫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이라 나오는 말,
찬란하게 드러난 칼몸이 아니라
자루 속에 숨어
칼끝의 궤적을 제어하는 뭉툭한 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보이는 세계
그 뒤엉킨 힘의 방향을 좌우하는 말,
감싸 쥔 신의 손아귀를 얼핏 느끼게 하는 말,
하지만, 보이지 않은 차원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세계라는 걸 일러주는 말,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세계가
화려하고도 정교한
칼몸을 춤추게 한다는 걸 가르치는 말,
거칠고 투박한
여기가 오히려 숨은 힘이라고
눈에 빤한 이 세계와
숨은 차원을 일순간에 바꿔치기 하는 말,
주눅 들지 말고
이제 지상에서 살아가라고
슴베찌르개처럼 가슴에 거칠게 박히는 말.
계간 『시와 경계』 2009년 여름호 발표
가슴 어디메쯤 몇차례의 찔림과 흔적을 가졌을까. 언어마저 버려진 풀숲엔 햇살에 녹아버린 이슬마저 묘연한데. 궤적을 제어하는 뭉툭한, 뒤엉킨 힘의 방향을 감싼 투박한, 말 많은 세계와 말줄임표를 교환하려다 사전을 검색한다. 일의 선후 결과가 전복된다. 오히려 눈에 빤히 들어오는 세상이 강한 힘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주눅 들지 말고 지상에서 살아가라고 남은 가슴에 깊이깊이 박히는 너의 거칠고도 아름다운 경계. 2010-01-28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현 <잠시, 천년이> (0) | 2010.08.07 |
---|---|
이정<뱅어포> (0) | 2010.08.05 |
허만하<확산> (0) | 2010.08.04 |
안도현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0) | 2010.08.03 |
김경주 <주저흔> (0) | 2010.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