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어포 / 이정
뱅어포
한 장에
납작한 바다가 드러누워 있다
수 백 수천의 얇고 투명한
바다에 점 하나 찍어
몸이 되었다
무수한 출렁거림 속에
씨앗처럼 꼭꼭 박힌
캄캄한 눈. 눈. 눈
머리와 머리가
포개지고 창자와 창자가 겹쳐진
이 걸 무어라 불러야 하나
혼자서는 몸이랄 수도 없어
서로 기대고 잠든
이 납작한 것들아!
시집 <누가 내 식탁들을 흔드는가> 2006년 시와정신사
이정
본명 이재순
서울 출생
한국방송대학교 영문과 졸업
2003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감상]
뱅어포 하면 칼슘의 왕 멸치가 덩달아 떠오른다. 예전에 아이들 도시락 반찬으로 많이 이용했던 뱅어포. 쥐치포나 마른 오징어 납작한 새끼 가재미보다 한층 더 얇게 눌린 뱅어포는 첫 이미지가 특이했다. A4 한 장 크기에 들어 있는 뱅어의 수효와 그리고 눈알들은, 누런 풀끝에 붙은 까만 서케 마냥 바글바글했다. 징그러우면서도 귀여운 작은 물고기들. 그 살아 있는 모습이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을 하다가 바다 밑바닥까지 통째로 뜨겁게 눌러 아삭아삭 씹는 느낌을 떠올려 본다. (비약이 너무 심한가) 하여간 그 뱅어포 속에는 골조직의 소실로 인한 삐걱거림 즉, 골다공증에 효력이 있는 칼슘과 비타민 C가 풍부하다는데.
오늘 시인은 뱅어포에 대하여 '겹겹 바다에 점 하나' '무수한 출렁임 속에 캄캄한 눈'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망망대해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굳이 의인화하여 다시 상징한다면 광대하고 어두운 우주의 '창백한 푸른 점 하나' 라고도 말할 수 있을까. 조화옹의 입장에서 보면 뱅어들은 저 홀로도 충분히 완전한 존재일 수가 있다. 그러나 화자가 뱅어에게서 그토록 미미한 숨결이나 어두운 눈(目)을 느낀 것은 어쩌면 '던져진 존재'로서 인간을 해석하는 마음자세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사물이나 현상들 속에 자신의 슬픔과 기대를 투영하는 투사자投射者들이다. 결론은, 뱅어포처럼 인간도 뭉쳐야 비로소 온전한 몸이 되고 몸을 주고서야 뼈대로서 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통속성을 수용하고 나서, 나 역시 그녀의 은유에 동감을 한다.
2010.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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