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나
한 여자의 머리통을 붓이 털어 주었다
파리를 쫓는 두 살 박이 손바닥이 천천히 쓸어갔다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나
맨 앞에서 밤을 맞던
그 춥고 어두워지던 마음에 대해
백색전구 같은 얼굴들이 뒤늦게 웅성거리던
홀로 맞은 이브의 죽음에 대해
대체 들려줄 말 같은 건 없나
자카란타 보랏빛 꽃잎의 비린 피막을 열고
뒷걸음질하는 깊은 어둠에 대해
아담, 뱀의 억울함
혹은 에이즈의 억울함에 대해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여자는 이제 체중이 나가지 않아
모래 위에 얹어둬도 골반뼈가 묻히지 않는다
야훼의 검은 언덕, 기억을 놓아버린 새와 꽃들이
눈곱 낀 두 살 박이를 떼어놓고 있다
스무 살 여자가 잠에서 나오면
사람을 지었으나 사람을 잃어버린 쓸쓸한 손이
빈 사막을 건널 것이다
100마일 빈 사막에
붉은 해만을 올려놓은 식탁 이쪽에서 저쪽까지
밥알 몇 개로 붙은 생들이 빠져 나간다
또 몇 사람의 장례가 오늘 치러진다는
회오리바람의 이야기를 듣게 될 때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나
풀을 꼬아 여자의 마른 발목에 묶어 주며
내일 아침 식탁에서 우리는 또 속을 것이다
바오밥 나무껍질 씹어가며 옥수수 알갱이 한 줌, 썩은 소젖 한 컵으로
찾아간다는 내세, 무슨 얘기 끝엔가 나오는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매달려
월간 『문학사상』 2007년 7월호 발표
2
고향
해가 묻히며
가만히 갓 익은 복숭아빛 산 위로 넘어간다
저 건너편 나비 앞서는
하얀 마당의 뒷장을 침 묻혀 넘기면 참 멀리까지 갔다 오곤 한다
무덤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족보를 건네받는다
이런 가을 날,
칼 같은 지느러미가 지나가는 시대의 능선은 급하고 미끄럽다
슬픔 뒤로 넘겨줄 때까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제 자신의 바닥까지 휘어진 생의 화장을 고치는 노련한 저녁이
었던가
할아버지 아버지 차례로 무릎을 안고 독방 구덩이로 빨려 들어
간 참이다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시 2007 중에서-
3
사과나무 밭 밑동들
부석사 까치가 조고 있는
늙은 사과나무 밑동들
어쩌면 기다림뿐일 줄 모르는
시간이 꼭꼭 씹어 쌓아둔 시커먼 밑동과 엉덩이를 맞대고
나는 눌러앉아 있었다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닌 연애가 여물었다 벌어지고
점점 말수가 줄다 아예 경청하는 귀만 커다랗게 남겨진 노인일까
베이고 없는 사과나무들
질질거리며 소변보는 마지막 모습만 얼어 있었다
저녁은 그 사이
망한 부석 아랫도리와 바닥 모를 말을 나누며
얼룩얼룩 했다
저런, 자필 사인한 이별 같은 노을에
젖어 벌어지는 사과나무 한 그루
털썩 주저앉아
몇 해전 내 몸에 들어오지 않았나 묻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당신을 사랑한다고 달라붙는
사과나무 밑동 버섯 한 송이
스스로 주저앉을 때까지
부석부석한 겨울저녁
구멍 여럿 난 사람보다 조용하였다
화요문학 <2006년 가을호 . 재수록)
4
오이밭에서
오이 살색을 살피며 생각한다 싱싱하고 오톨도톨하던
몸의 나이에 신세 안 지고 올 수는 없었구나
자기 가시로 박음질된 오이의 몸에
넓삐죽한 칼을 대며, 자신을 깎아보지도 못한
물렁한 포대자루 못 생긴 그림자 둑길 하나 두고 앉아 있다
살짝 잠이 모자란 오이가 잎 속에 있다
임신한 차림으로 길게 넘어진 오이 옆에
부은 목젖처럼 잎 하나가 돋는다
새끼들이 모두 나와 있는 오이밭
덩굴손으로 붙들고 있는 젖은 어머니들
가시 분화구 밑 싱싱한 지층을 섬벅 베어 문다
읽고 싶은 백 권의 기갈을 잃어버렸다 오이밭에서
물맛 좋은 가슴 한 짝 덜렁, 그랬다
물벼락 같은 오이냄새 아래
땅벌레가 취해서 옴직옴직 돌아가는 참이다
시집『저녁의 연인들』(랜덤하우스중앙, 2006) 중에서
5
聖
갈래길 가에 있는 소나무 뿌리에 앉아 있었다
멀리 가서 끄집어내보는 생처럼
허리에서 두세 걸음 떨어져 드러난 뿌리
가슴에서 내려가 배 밑에 늙고 있는
내 性과 맞춰보았다
열정의 기둥에서 한 뼘쯤 휘어진 그 끝
6
발목 지고 가는 코끼리 발목이
호스 물을 건네주러 가듯 코를 세우고 걷는 코끼리
비가 오기로 한 쪽으로 달리는 마음은
진홍빛 황혼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나는 차를 멈추고 보고 있었다
귀를 펼치고 오는 코끼리
긴 송곳니 하나를 부러뜨리고 오는 코끼리
새가 날아올 수 있는 거리를 알 수 있는 나무는 어디에도 없고
코끼리가 되면서부터 걸은 거리를 코끼리만 어림하고 있을 것이다
점점 가까워지는 코끼리의
잃어버린 식구들이 발목을 접고 누워 있는 어딘가도
펼친 귀뿌리 주름처럼 구겨져 있으리라
코끝을 대면 땅 위에 깔린 쉰 목소리
그리움이 누그러질 때까지
붉은 강물에 등이 다 잠기도록 달리는 코끼리
노을은 물 있는 곳을 찾아 도망나온 태양의 불목하니,
물어보랴 흘러내려가는 것들이 풀과 낮달을 키우는 동안
비 개인 어느날 코끼리로 다녀가는
한 수컷과 한 암컷 사이 바다 같은 슬픔으론 무엇이 되느냐고
사라진 풀들의 잠언을 생각해낼 수 없는
발목은 따스하게 이는 흙먼지를 매달고 늦지 않게 가고 있다
연밥 같은 발을 들어 땅을 딛는 영혼을
몸 안으로 불어넣어 밤새 부풀어오르는
달덩이 코끼리,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리는
발목 지고 가는 코끼리 발목이 킬리만자로 아래 있었다
계간 『창작과비평』2007년 여름호 발표
황학주 시인
내 시의 적은 사랑이다
어떤 이들은 시가 안 되면 연애를 하라고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어도 좋다. 그러면 시가 좋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 시원찮으면 시도 못 쓰는 종류다. 사랑이 시원찮을 때 내 시는 비명이 되거나 헤어 나올 길 없는 비문非文 사이에서 버려진 자의 비문碑文처럼 헤매었다.
사랑과 세상과의 불협화음이 미덕이 될 수 있는 젊음의 시절이 지나간 지 오래, 나는 이제 협화음의 세상에 대해 생각한다. 충분히 아팠고 아픈 것이 약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 반목하는 세상을 사랑 쪽으로 이끌기 위해 내 시는 몸을 푼다. 주인은 응당 사랑이다. 내 시는 사랑에 예속된다.
그러니 내 시의 적은 사랑이다. 최선은 사랑이고, 시는 차선이다. 나는 이 선택에 후회가 없다.
- 시인의 적敵, 시의 적敵 중에서
사랑은 더럽게 식은 비계국 같은 것이다
시인 황학주 시선집 <상처학교>
이종찬(lsr) 기자
마을 강가에 각진 산 되어 서서
텃세가 센 깔깔한 풀도 심고
무수하다는 동백꽃이 떨어진 그 봄처럼
부강하게 사랑을, 질탕하게 새끼를 낳고
우글우글하게 나는 너를 거부하리라.
-43쪽, '마을 강가에 각진 산 되어' 모두
자신도 모르게 낮잠이 스르르 쏟아지는 무더운 여름날 오후에는 글쓰기도 쉽지 않지만 남의 글을 읽고 그 뿌리를 제대로 더듬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하물며 언어를 연금술사처럼 주물러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을 피워낸 시인의 시를 읽고 꼼꼼하게 글로 정리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떤 시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낮잠처럼 자꾸만 포옥 빠져드는 그런 시들도 있다. 또한 그런 시들과 마주 서면 낮잠은 커녕 날씨조차도 무더운 줄 모른다. 그만큼 한 편의 좋은 시는 무더위뿐만 아니라 이 세상살이의 모든 시름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확 바꾸어놓는다는 그 말이다.
시인 황학주의 시가 그러하다. 시인 황학주가 그려내는 시의 세상은 웬지 춥고 아프다. 뭔가 모르게 한없이 쓸쓸하고 서럽다. 애인의 품처럼 따스한 사랑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까이 다가서면 그 사랑은 곧 치료하기 힘든 상처로 드러난다. 시인은 사랑과 상처 그 사이를 드나드는 봉사단이면서도 스스로 그 사랑과 상처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여섯 권의 시집 속에서 추려낸 시편들을 모았다. 한 권의 시집에서 골라낸 시편들이 하나의 <부>를 이룬다. 모아놓고 다시 읽어보니 손을 대고 싶은 것들은 앞쪽에 있었다. 그렇게 했다. 인간의 마당은 깊고 넓었다. 열심히 가야겠다."
-'자서' 모두
지난 90년대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 부족과 캐나다의 모학 부족 인디언보호구역에서 활동하다 돌아온 시인 황학주(51)가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접어들어 자신의 시력 20여 년을 새롭게 되돌아보고 다독이는 시선집 <상처학교>(생각의나무)를 펴냈다.
이 시선집은 시인 황학주가 그동안 펴낸 여섯 권의 시집, <사람>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 <갈 수 없는 쓸쓸함>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 <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 <루시>에서, 시인 스스로 시의 껍데기를 새롭게 도리깨질 해 씨알곡만 거두어들인 시집이라 할 수 있다.
모두 90편이 실려 있는 이번 시집을 찬찬이 읽다보면 시인 황학주가 추구하는 시의 세계가 어떠한 것이며, 시인 황학주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어떠한 삶을 꿈꾸고 있는지, 거울처럼 환하게 내비치는 듯하다. 그러니까 시인 황학주는 이번 시선집에서 그동안 숨기고 있었던 자신의 시의 속곳을 몽땅 다 벗어 던져버렸다는 그 얘기다.
사랑이
더럽게 식은 비계국 같은 저녁
내가 나에게 날아들었던 부나비처럼
다 짓무른 몸을 지상에 안아 내리는
눈송이… 결국 저렇게 자기를
도도록하게 자기를 안을 뿐인 진눈깨비를
누가 운다고 하지 않고 내린다고 하나
-16쪽, '혹한' 몇 토막
이는 시인 황학주가 지난 20여 년 동안 줄기차게 붙잡고 늘어졌던 사랑과 상처의 시학을 이제는 끝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워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제는 보다 큰 걸음으로 전 지구촌으로 나아가 더 큰 사랑으로 새로운 시의 세계를 열기 위한 하나의 선언이다.
큰 사랑으로 지구촌의 상처까지 포근하게 보듬는 시인
시인 황학주는 누구인가?
"황학주의 시적 주제는 상처와 사랑이다. 그의 상처는 존재와 존재 사이의 근원적인 차단에서 온다. 그는 사랑의 힘으로 그 차단을 부수고 나오려 하지만, 그 벽은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그는 사랑을 사랑으로 노래하지 않고, 사랑의 부재를 신음하거나 절규한다." -김훈(소설가)
시인 황학주는 1954년 광주에서 태어나 1987년 시집 <사람>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사람><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갈 수 없는 쓸쓸함><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너무나 얇은 生(생)의 담요><루시>가 있다.
시화집으로는 <귀가> <두 사람의 집짓는 희망>이 있으며, 장편소설 <세 가지 사랑>, 산문집 <아카시아><땅의 연인들><인디언 마을로 가는 달>, 사진시집 <아프리카 아프리카> 등이 있다.
지금,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 국제민간구호단체 '피스프렌드'의 대표, '국제사랑의봉사단' 이사를 맡고 있다.
위의 시는 그의 첫 시집에 나오는 '혹한'이라는 시다. 하고 많은 시들 중에 왜 하필이면 첫 시집에 나오는 시를 들추어내는냐구? 시든 노래든 철학이든 사업이든 누구에게나 그 분야에 처음 접어들 때의 그 출발점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출발점을 모르면 저 사람이 지금 왜 저기에 서 있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지 않겠는가.
그동안 사랑과 상처의 미학을 줄기차게 추구해왔던 시인 황학주의 시의 출발점에 있었던 사랑은 "더럽게 식은 비계국"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상처는 "다 짓무른 몸을 지상에 안아 내리는/ 눈송이"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눈이 운다'고 하지 않고 '눈이 내린다'고 한다. 그래서 시인에게 있어서 이 세상살이는 '혹한'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해진 옷에 심하게 내리는, 옛날 가슴의
붉은 해를 지우는 눈보라
사람이 절망할 때, 아주 조그맣게 빨려 들어가고만 싶을 때
불륜의 아기를 가진 시대의 먼 길 앞에서
급커브를 도는 눈의 흰 화물트럭.
-35쪽, '눈보라' 모두
시인은 '불륜의 아기를 가진 시대' 앞에서 절망한다. 아마도 시인이 말하는 그 불륜의 시대는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잔인하게 저질러진 광주 대학살을 말하는 듯하다. "급커브를 도는 눈의 흰 화물트럭"은 광주 대학살 때 공수부대의 총칼에 의해 무참하게 죽은 광주시민을 태우고 어디론가 사라지던 그 군용트럭을 말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광주에서 태어난 시인 황학주가 그동안 여섯 권의 시집을 내면서 줄기차게 붙들고 있었던 사랑과 상처의 미학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붉은 해를 지우는 눈보라"도 마찬가지다. "붉은 해"는 '사랑'이며, "붉은 해를 지우는 눈보라"는 서둘러 그 처절한 학살의 현장을 덮어버리려는 눈송이, '상처'를 말하는 듯하다.
그때 시인의 가슴이 오죽 쓰리고 분통이 터졌으면, 그리고 그 학살의 현장에 함께 있지 않았던 그 어떤 죄책감이 오죽 심했으면 "아주 조그맣게 빨려 들어가고만 싶"었을까. 하지만 시인이 아주 조그맣게 빨려 들어갈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시인은 "해진 옷에 심하게 내리는" 눈보라를 바라보며 절망의 시들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것이다.
내 눈엔 돌흙밖에 없다
네 위 속엔 흙모래밖에 없다
당신이 나를 지나쳐
하루를 더 가더라도 돌무지밖에
세상엔 없다
둔해지는 西山(서산)
돌밭에서 밤새 찬 바람에 굽은 뿔을
이슬에 묻었다가
새벽 밝은 것처럼 네게 들어가랴?
-119쪽, '염소' 모두
사랑을 몽땅 잃어버린 시인. 그 시인의 눈과 가슴 속엔 무엇이 남아 있을까. 그리고 그 시인이 바라보는 이 세상에는 또 무엇이 남아 있을까. 돌흙과 흙모래와 돌무지뿐인 이 세상. 돌밭에 앉아 밤새 상처만 얼룩덜룩 남은 다 헤진 사랑을 들고 내리는 이슬방울에 살랑살랑 씻으면 그 사랑이 밝아오는 새벽처럼 새롭게 되살아날 수 있을까.
이 시선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용희는 "시인은 최대한 삶의 극대치로서의 고립과 치명적인 고독에 가 닿고자 한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시인은 자신을 저 멀리의 극한 속으로 내던지면서 극단의 고통과 절망과 사랑의 단절에 몸을 떨기를 원한다"고 평했다.
<상처학교>는 시인이 지난 20여 년 동안 쓴 시를 되짚어보는 자화상이자 그 시를 발판으로 삼아 더 크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용수철이다. 시인이 지난 90년대 아프리카와 캐나다의 가난한 부족을 만나고 온 것이나 지금도 '국제사랑의봉사단'과 국제민간구호단체인 '피스프랜드' 대표를 맡고 있는 것도 바로 더 큰 상처가 있는 곳에 더 큰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야무진 바람이다.
7
그대
빗물로 산동네를 껴안는 영혼을 보았나
모든 목마름을 우물해 주고 가는 십자가를 보았나
아, 상처를 숯불처럼 불며 이제 다가드니
그대인 줄 알겠지만
그대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나 때문에 처음 고독에 나들이 했고
처음 한숨의 도시락을 폈던
내 사랑
나 때문에 높은 아침에 오르고
가장 낮은 저녁에 주저앉았던
죽도록 사랑하리란 첫 맹세를 무수히 창문에 달고
긴 산번지마냥 기다린
가장 쉬 더러워진 눈물을 빚은 운 자국을 보셨나
속옷 단추만한 뉘우침이 가슴에 솟은
사랑이라도 있는 것을 보셨나
상처를 자수 놓으며 내 이름을 부르는
나 아주 묘연하게 그대와 살고 싶네.
8
구애
겨울이 다 떨어질 때까지
기름이 묻어 있을,
새까맣게 타가는 나의 삶이여
자식같이 아름다운 머리통이 들어 있는
고통이여
세상에 와서 우리
더없는 구애를 했다는 것은
말할 수가 있네.
9
깨끗한 증발
꼬불꼬불한 불빛을 그리며 막차가 헤엄치고 있다
가로수길 형체가 없는 바람 속에서
참으로 긴 슬픔이 부딪는 잎새소리를 들었다
아직은 내 막막한 욕망에 연결된 삶 때문에
자옥한 외로움의 편력이 바닥을 깔았다
나의 목을 내동댕이 치며
어떤 날은 오늘이 아닌지
어떤 별은 내일인 듯
그만 스러져 간다
어느 날
자갈에 박히는 물방울처럼
가로수 뿌리보다 강한 사련의 뿌리까지
날아가는 깨끗한 증발,
내 괴롬의 부스럼들이 지워지고 나면
한 삶의 빛도 바래리
어두운 눈꺼풀을 차곡차곡 벗어두고
빛도 문자도 없는 깨끗한 내가 되리
돌아오지 않는 사랑 속을
자맥질하는 슬픔
10
노랑꼬리 달린 연을 안고
기차로 퇴근을 한다 그것은 흘러내린 별이었던 것 같다
때론 발등 근처에 한참을 있었던 것 같다
사랑은 손을 내밀 때 고개를 수그리는 것이니까
길에 떨어진 거친 숨소리가 깜박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거다
아물면서도 가고 덧나면서도 가는 밤에 우리는 부끄러웠을라나
그런 밤엔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할지
네게 물어도 될 것 같았다
11
바람이 분다
지금은 사랑하기에 안 좋은 시절
바람 속으로 또다시 바람이 분다 지금은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시절
네게로 가는 별, 댓살 하나에 온몸 의지한
노랑꼬리 연 하나 바람 위로 떠오른다
-23~24쪽, '노랑꼬리 연' 몇 토막
'바람이 분다 / 지금은 사랑하기에 안 좋은 시절 / 바람 속으로 또다시 바람이 분다 / 지금은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시절'... 마치 첫사랑 그날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시다. 지금은 바람이 불어 사랑하기에 안 좋은 때라고 하다가 바람 속으로 또다시 바람이 불자 지금이야말로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시절이라고 말하는 시인.
그가 시인 황학주다. 시인 황학주는 지난해 끝자락 '서울문학대상'과 '서정시학 작품상'을 한꺼번에 받아 주변 시인들이 몹시 부러워했다. 아니, 부러워했다기보다는 질투를 조금 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게다. 그는 시를 컴퓨터 자판기가 아닌 몸으로 쓴다. 이는 그가 아프리카 민간구호단체 '피스프렌드' 대표를 맡아 1년에 3~4차례씩 케냐와 탄자니아 등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황학주 시인은 지난 3월 19일(금) 혜화동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글쓴이는 그때 시간이 늦어 출판기념회 뒤풀이가 열리고 있는 작은 주막에서 그를 만났다. 소주를 마시고 있던 그는 사랑에 대해 "사랑, 영원한 사랑 같은 말은 그게 간절하기는 하지만 삶 속에서 확인하기는 어렵다"며 소주 한 잔을 홀짝 마셨다.
글쓴이가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시를 쓰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때 "나는 내 사랑만을 이야기한다. 사랑을 말하는데 혹 실수가 있더라도 내 사랑에 대한 것이니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사실 내 시는 그러한 맥락에서 대부분 내 자신의 사랑에 관한 시"라고 못 박았다.
"죽음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재료는 사랑"
황학주(1954~ )는 광주 사람이다. 시인은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명문 광주상고를 나왔다. 그는 나중에 국문학 박사가 되었지만, 삶의 태반은 상고 출신으로 살았다. 그 삶은 학력사회인 이 땅에서 소소하게 마음이 많이 다친 삶이었을 것이다. 그 증거가 있다. 그의 시는 ‘상처 학교’라고 부를 만큼 다친 흔적이 지천이다. 그는 때때로 인륜의 어떤 의무들에 태만한데, 그것은 도덕적인 빈곤이기보다는 기진(氣盡)한 자의 불가피함으로써 그러하다. 그가 굴곡 많은 삶과 상처를 품은 시들을 세상이라는 진흙 뻘에서 배[復]를 밀며 씩씩하게 나가게 하는 동력은 연민이다. 시인은 불화와 헤어짐을 품으며 가여운 것들을 연민으로 품는데, 연민은 갸륵하게도 상처를 견디는 힘이 되었다. 그는 1987년에 시집 《사람》으로 시인이 되었다. 그가 시인이 될 때 나와는 인연이 있다. 그가 시집 원고를 들고 내가 경영하는 출판사를 찾아왔고, 나는 그 원고를 받아 읽고 흔쾌하게 시집을 만들었다. 그 뒤로 나는 출판사를 접었다. 30대를 갓 넘겨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만난 그도 이제는 50대 중반을 넘어서고 여러 권의 시집을 가진 중견 시인이 되었다. 그는 고흥에 산다고 했다. 때로는 아프리카 케냐에 가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 모든 것들은 정확하지 않다. 나는 항상 그가 어디에 사는지 그 정확한 주소를 모른다. 그가 유목민으로 여기저기 떠돌며 살기 때문이다.
황학주의 시들은 늘 어떤 상흔(傷痕)을 노래한다. 시인이 걸어야 했던 일신운화(一身運化)의 길은 거칠고 팍팍한 길이다. 스물세 해 전 쯤 펴낸 첫 시집 《사람》에서 “지금 성한 것은 영원히 성한 것이 아니라고 / 내 믿음을 섣불리 말하면 너는 눈물 안 날 것이냐?”(〈섬진강 내일〉), “5월과 6월이 어떻게 지나갔는가 / 우리 살도 째고 내장도 뜯으며 간 봄”(〈계화교에서〉), “가슴은 새로 쓸 수 있다 하니 다친 가슴 / 단단히 잘 굳으면 나가서 빗줄기를 맞을 때”(〈바람에 불려 차디, 차던〉) 따위의 구절들에, 살림을 들어먹고 고리 사채(私債)에 시달리다 등 맞대고 살던 사람이 뿔뿔이 흩어지며 찢기고 뜯긴 마음의 흔적들이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그가 시에서 계화도 수몰 이주민의 팍팍한 삶에 제 삶을 겹쳐낼 때 슬픔은 삶의 저 안쪽까지 깊게 삼투하며 어떤 무늬들을 선명하게 새긴다. 황학주의 시들은 그 무늬들을 안고 찬란해지는 것이다.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황학주편
20111015-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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