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란 언어의 기록이다. 언어를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언어, 즉 말을 빼놓고는 글을 쓸 수 없다. 문자가 그림으로 바뀌지 않는 한, 발음할 수 있는 문자인 한, 문장은 언어의 기록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소설가로서의 이태준의 작가적 명성은 시인으로서의 정지용과 쌍벽을 이루었다. 시인 정지용은 그의 지용문장독본의 서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남들이 시인 시인 하는 말이 너는 못난이 못난이 하는 소리 같이 좋지 않았다. 나도 산문을 쓰면 쓴다--태준만치 쓰면 쓴다고 변명으로 산문 쓰기 연습으로 시험한 것이 책으로 한 권은 된다.
동양의 수사이론의 발상지인 중국에서도 후 스(胡適)는 그의 문학개량추의(文學改良追議)에서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 조목을 들었다.
1) 언어만 있고 사물이 없는 글을 짓지 말 것. (즉 엉성한 관념만으로 꾸미지 말라는 것)
2) 아프지도 않은데 신음하는 글을 짓지 말 것. (공히 오! 아!류의 애상에 쏠리지 말라는 것)
3) 전고(典故)를 일삼지 말 것.(앞에서 예로 든 단풍구경 가자는 편지처럼)
4) 현란한 어조와 상투적인 말을 쓰지 말라는 것.(허황한 미사여구를 쓰지 말라는 것)
5) 대구를 중요시하지 말 것.
6) 문법에 맞지 않는 글을 쓰지 말 것.
7) 옛사람을 모방하지 말 것.
8) 속어 속자(俗字)를 쓰지 말 것.
언어는 고요한 자리에 놓고 위하기만 하는 미술작품이 아니다. 일용잡화와 마찬가지의 생활용품으로 존재한다. 눈만 뜨면 불을 쓰듯, 물이나 비누를 쓰듯, 아니 그보다 더 절박하게 먼저 사용되는 언어라 하겠다. 언어는 철두철미 생활용품이다. 그러므로 잡화나 마찬가지로 생활에 필요한 대로 언어는 생기고 변하고 없어지고 한다.
어느 언어가 아직 이 표현할 수 없는 어두운 면을 더 많이 가지고 있나 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연구재료의 하나이므로, 우선은 어느 언어든 표현할 수 있는 일면과 아울러 표현할 수 없는 일면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표현할 수 없는 언어마다 달라서 완전한 번역이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사실쯤은 알아야겠다. 이것을 의식하기 전엔, 무엇을 번역하다가 자기가 필요로 하는 번역어가 없다고 해서 이 언어는 저 언어로 다 표현력이 부족하다느니, 저 언어는 이 언어보다 우수하다느니 하고 부당하게 단정하기 쉬운 것이다. 번역을 받는 원문은 이미 그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측면의 말로만 표현된 문장이다. 그런데 할 수 있는 면, 표현할 수 없는 면은 언어마다 같지 않다. 나중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면은 언어마다 같지 않다.
언어에는 못 표현하는 면이 으레 있다 해서 자기의 표현욕을 쉽사리 단념할 바는 아니다. 산문이든 운문이든 언어에 대한 문장가들의 의무는 실로 이 표현할 수 없는 어두운 면을 타개하는데 있을 것이다. 눈매, 입 모양, 어깻짓 하나라도 표현은 발달하고 있다. 언어문화만이 이 어두운 면을 그대로 가지고 나갈 수는 없다. 훌륭한 문장가란 모두 말의 채집자, 말의 개조 제조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1) 하나밖에 없는 말을 찾을 것
여러 사람의, 여러 경우의 말은 무한히 많을 것이다. 그러나 당황할 필요는 없다. 무한히 많다는 것은 찾기 이전일 뿐, 그 사람이 그 경우에 꼭 쓸 말이란 찾아만 들어간다면 결국엔 한 가지 말밖에는 없을 것이다. 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갯가 뱃사람 하나가 서울구경을 오는데, 서울 가서 뱃사람 티를 내지 않으리라 하였으나 멀리 남대문의 문 열린 구멍을 바라보고 한다는 소리가"똑 키통구멍 같구나."해서 뱃사람 티를 내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만일 철로를 놓는 요즘 인부라면 궁금스럽게 나무배의 키를 꽂는 구멍을 생각해내기 전에 철로의 터널부터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그 사람으로 무심결에 할 만한 말, 말에 그 사람의 체취, 성미, 신분, 그 사람의 때가 묻은 말을 찾아야 하는데 그런 말이란 얼마든지 있을 것이 아니라 결국은 하나일 것이다. 이 하나밖에 없는 말을 찾아야 할 것이다.
2) 어감이 있게 쓸 것
문장은 시각에 보여주는 것이요 담화는 청각에 들려주는 것이다. 담화는 눈에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귀에 들려주는 것이니까 읽힐 소리로 쓸 것이 아니라 들릴 소리로 써야 한다. 정말 말로 들리자면 어감이 나와야 한다. 담화감이 나게 하고 문장감이 나게 하는 것은, 오직 어감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밝히려는 것은, 그때 그 인물의 호흡에 더 관심을 두고 무엇을 말하냐 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냐 에 주의하라는 것이다.
3)성격적이게 쓸 것
담화를 그대로 끌어오는 것은, 인물의 의지와 감정과 성격의 실면모를 드러내기 위해서라 하였다. 담화는 내용이 표시하는 뜻만이 아니라 인물의 풍모까지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음영이 있는 것이니, 이런 효과까지 거두기 위해서는 뜻에 맞는 말이되, 되도록은 의지와 감정이 담기게, 통틀어 성격적이게 쓸 필요가 있다. '성격적이게' 쓰란 말은 조화를 잃지 않는 정도의 강조를 의미한다 할 수도 있다. 성격적인 것이란 개인과 개인이 다르다고 널리 보아버릴 것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남녀가 다르고, 또 같은 남성, 같은 여성끼리도 신분과 교양 따라 다르고, 또 동일인이라도 연령 따라 다른 점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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