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퇴고실

꽃의 시학(詩學) 외 1편

미송 2014. 1. 16. 07:51


 

 

꽃의 시학(詩學)

 

 

향기가 향기를 벗어나자

향기의 이름도 얼굴도 없어졌다

발치에 던져진 채로

향기를 바라보고 있는 향기를 본다

향기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알면

향기는 금세 다시 명확해진다

드러남과 동시 숨어버리는

향기의 의미는 향기 안에 산다

관계의 틈서리에 향기가 산다.

 

 

 

조것

 

조것이 눈을 뜨면 가부좌로 앉는다

아침이면 가운데 다리로 텐트를 친다

실처럼 입 꼬리가 올라간다

조것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눈꺼풀을 깜빡거린다

손에다 담배를 쥔다

조것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시선을 상像 아래로 떨어뜨리며

왜 하고 묻는다

사물로 보이는 조것이

팔십 육억 사천만년

명상에 들기도 한다니.

 

 

 

꽃길

 

이 길이

끝나는 곳이 어디쯤일까

당신이 가자는 대로

채비도 차리지 않고 나선 나

 

시간이 다 지났는데도

시간은 다시 시작하고

내 속을 흠뻑 파고드는

이 꽃나라에서

나 고만 취해버렸어

 

안개꽃으로 보이지만

안개꽃이 아닌 개망초 꽃들이

앞을 다투어 핀 들녘, 여기에도

눈물이 흩날리고 있어

 

내 얇은 숨이 끊어진다 해도

나 이 길을 떠나지 못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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