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임혜주<팥죽을 끓이며>

미송 2009. 3. 26. 12:02

     

    팥죽을 끓이며 / 임혜주

     

    그새 또 잊었다

    오랫동안 또글또글해졌을 팥

    웬만해서는 풀어지지 않는다는 것 시간이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어서

    옹골지게 굳은 팥에게도 껴안았던

    햇빛 다 풀어 놓을 시간이 필요한 법

    한 시간에 해치울 욕심 놓아두고

    약한 불로 되돌린다 그제서야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는 선

    믹서에 마저 갈아 체에 거른다

    헤쳐진 살 고루고루 퍼지게

    잘 저어야 하는데 반죽 다듬는 사이

    파르르 넘친다 아, 이 불같은 성질

    저어주지 않으면 밑이 타지고

    위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야 마는

    천천히 있어야만

    지 성질 온전히 풀어지는

    압축된 열

    그래서 팥죽은 붉다.

     

    (2007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운문과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욱영<피>  (0) 2009.03.27
김용옥<조선의 명기, 매창>  (0) 2009.03.27
신경숙<인연은 한 번 밖에 오지 않는다>  (0) 2009.03.26
정일근<시와 발언>  (0) 2009.03.25
조연현<침묵과 여백>  (0) 2009.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