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발언 / 정일근
최근 목과 코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이비인후과에 다니고 있다. 의사는 나에게 말을 많이 하지 않을 것을 권했다.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에게 침묵은 처방인 셈이다. 그러나 침묵한다는 것은 목의 상처보다 더 아픈 고통을 준다. 남들에게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캐물어야 하는 내 밥벌이 탓도 있지만 수시로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해야 할 말이 쌓여 가는데 입을 굳게 다문다는 것은 나에게는 고통이다. 면벽참선하는 선승인 양 침묵하고 있으나 저자거리가 편한 내 말들이 입 속 어금니에 씹힌다.
시에는 수백 가지의 정의가 있다. 그 중 나는 ‘시는 발언이다’ 라는 스승의 정의를 사랑한다. 대학시절 현대시론시간 스승은 말씀하셨다. 시인은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거나 읽고 시인의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그런 까닭에 시인의 시는 시인의 발언의 다름아니다. 스승의 정의를 패러디해 또다른 정의를 내리자면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자기의 눈과 귀로 세상을 취재하고 자기의 주관에 따라 기사를 쓰는 것이리라. 따라서 시는 시인의 뉴스다. 시인의 크레디트를 달고 독자들에게 타전하는 뉴스와 같다.
나는 80년대 중반 이른바 ‘시의 시대’에 시인이란 새 이름표를 달았다. 자고 나면 새로운 문학매체가 만들어지고 그보다 많은 시인이 저마다 이름표를 달고 탄생했으며 읽어 내기도 힘든 시들이 홍수처럼 흘러갔다. 나는 내가 80년대산 시인이라는 사실도 싫었다. 그 시절 쓴 시 한 편을 인용한다.
때로는 침묵하기로 하자 팔십년대여/입 속에서 말이 썩는 냄새가 난다/이빨 틈새에 끼인 허언의 맹세가/덜 익은 사유와 형식, 민주주의가, 욕설이/밥알이며 찌꺼기 등과 함께 썩고 있다/내가 하는 말에 대해, 시인인 나는/내가 신봉하는 이즘이나 주의, 법칙에 대해/한번쯤이라도 심사숙고하는가 세상만사 앞에/또 얼마나 정직한 자세로 서 있는가/시를, 나의 시를 읽을 때마다 헛구역질이 일고/내 입안에 갇혀 썩은 말이 쏟아진다/팔십년대여, 시인이여/내가 향유한/팔십년대의 범람이 썩어 넘친다/다변의 팔십년대여, 악성이여, 가짜여/떠밀려가리라, 우리/썩어 문드러지리라/우리가 우리를 부정할 시대가 오리라/우리의 주검위로/침묵의 빛나는 시대가 오리라.
- [팔십년대와 시인1] 전문
내 첫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속에는 80년대의 덧난 상처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상처들은 내가 본 80년대의 기록이며 발언이다. 그 시절 나는 세상을 분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삼라만상 중에 분하고 억울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야학 현장에서, 제도교육의 현장에서 20대란 나이는 너무 쉽게 피를 끓게 만들었고 밤을 밝히며 분노의 시를 썼다. 나의 시, 나의 발언, 나의 뉴스는 당연히 분노의 목소리만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끔 첫시집을 꺼내 읽어볼 때마다, 누군가 첫시집 이야기를 할 때마다 진실로 부끄러웠다. 나는 80년대 부산물인 그 시들을 하루 빨리 용도폐기하고 싶다. 이미 80년대에 내 스스로 부정한 시들인 것이다. 어두웠던 역사와 함께 그 속에 묻어두고 싶다. 돌아가거라 분노의 시들아, 너희들이 태어난 80년대로 돌아가거라 돌아가 오래오래 잠들거라 잠들어 깨어나지 말거라,고 주문한다.
스승을 모시고 문무대왕 유언비를 찾았다. 대종천 하구에는 얼음이 얼었고 그 얼음 위에 갈매기들이 대책없이 맨발로 앉아 있는 추운 날씨였다. 스승은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글자를 짚어가며 유언비를 읽으셨다. 스스로의 손가락에는 아직도 펜혹이 자라고 있었다. 아아, 아직도 스승은 칼로써 그 펜혹을 깎아내며 펜을 들어 글을 쓰시는구나. 언젠가 스승의 방을 찾았을 때 안방 머리맡에 작은 판을 펴놓으시고 원고지에 글을 쓰시던 스승의 뒷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컴퓨터 자판에 톡톡 시를 두드리며, 노트북으로 기사를 치고 전송하는 내 손가락이, 언젠가부터 펜혹이 사라져버린 내 손가락이 부끄러웠다. 내 시도 마찬가지 아닐까? 시대의 편안함에 젖어 너무 쉽게 시를 쓰는 것이 아닐까? 시를 쓰는 동안만큼은 고통스러워지고 싶다. 나에게 시는 영혼의 고통이 주는 산물이지 즐거움이 주는 기쁨의 노래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들어 그런 영혼의 고통을 발언한다. 그것이 나의 시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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