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을 끓이며 / 임혜주
그새 또 잊었다
오랫동안 또글또글해졌을 팥
웬만해서는 풀어지지 않는다는 것 시간이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어서
옹골지게 굳은 팥에게도 껴안았던
햇빛 다 풀어 놓을 시간이 필요한 법
한 시간에 해치울 욕심 놓아두고
약한 불로 되돌린다 그제서야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는 선
믹서에 마저 갈아 체에 거른다
헤쳐진 살 고루고루 퍼지게
잘 저어야 하는데 반죽 다듬는 사이
파르르 넘친다 아, 이 불같은 성질
저어주지 않으면 밑이 타지고
위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야 마는
천천히 있어야만
지 성질 온전히 풀어지는
압축된 열
그래서 팥죽은 붉다.
(2007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운문과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욱영<피> (0) | 2009.03.27 |
---|---|
김용옥<조선의 명기, 매창> (0) | 2009.03.27 |
신경숙<인연은 한 번 밖에 오지 않는다> (0) | 2009.03.26 |
정일근<시와 발언> (0) | 2009.03.25 |
조연현<침묵과 여백> (0) | 2009.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