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신용목, 마경덕<오래된 북, 꽃병>

미송 2009. 3. 28. 20:31

오래된 북 / 신용목

 

  북은 온몸이 입이다 남의 가죽을 빌려 짓고도 봉해진 입, 갇힌 말이 둥둥 앞뒤로 꿰맨 틀 속을 돈다 쳐야만 열리는 입, 아픔으로만 살아 있는 것들이 있다, 둥둥둥둥 발소리 같기도 하고 바람소리 같기도 한 요동이 고이고 고여 맑아진, 오래된 북의 안쪽에는 짚을 수 없는 허방이 있다 찢어봐도, 성대를 찾을 수 없다 번역할 수 없는 언어로 이승의 내막을 아파하다 사라질 뿐 어디서 시작되고 끝나는지 알 수 없다, 두 번의 수술 끝에 그는 호흡기를 달고 누웠다 심장소리가 둥둥 좌우로 꿰맨 몸속을 돈다 눈물로만 말하는 입 제 가죽을 찢어 열고도 스스로 봉한 입, 그는 온몸이 북이다 가끔 나는 북채가 되어 그의 옆에 눕는다

 

<시와 사람> 2008 여름호

 

 

 

/ 마경덕

  온몸이 입이다 

한 입에 우겨넣은 붉은 목 한 다발. 부르르 꽃잎이 떨린다. 잘린 발목에서 쏟아지는 비린 수액, 입안 그득 핏물이 고인다. 소리 없이 생피를 들이키는 저 집요함. 허기진 구멍으로 한아름 허무를 받아먹는. 

식욕과 배설뿐인 캄캄한 구멍은 입이고 항문이다. 

 

시한부 목숨들. 나, 나 얼마나 살 수 있지? 물컹물컹 썩어 가는 발목을 담그고 일제히 폭소를 터트린다.  아름답다 저 구멍. 

 

2006년 발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