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속절없음

미송 2011. 12. 16. 00:02

 

 

속절없음 / 오정자

 

 

1년 전,

늙은 여의사가 말해 주었죠

가슴 한 쪽이 수상하니 초음파를 찍어보라고,

그리고 1년이 지나 나는

21세기 산부인과 의사에게 갔고

중년 남자는 소견서를 써 주었어요

노련해 뵈는 외과 여의사는

제 왼쪽 가슴에서 살점을 떼어내 봐야겠다고

시술은 총을 쏘듯 할 거고 이후에는 삼각형 흉터가 생길 거라고

둥근 그림자 육안으로도 수술감 같다고

 

그렇게 의사들의 말을 전하려 입을 열자마자

한 친구는 너무했다 고 왜 이제야 다녀왔냐 고 오른쪽 어깨를 툭 쳤고

50대 여자는 별안간 일전에 떼어낸 자기 대장속 용정 얘기를 떠들기 시작했고

직장 팀장은 올해가 가기 전에 다들 싸게싸게 종합검진 받으러 가라 고

안 그러면 과태료 물어야 한다고, 열을 올렸죠 그녀

두 달째 생리가 안 터지는 걸 보니 폐경기가 오는 것 같다고 얼굴을 붉히며,

 

그 와중에 또 한 여잔 자기 고객인 어느 할머니와 찰떡궁합이라고 자랑에 바빴고

친정 엄마는 보험증권이랑 거래장 챙기라고 수화기로 당부를 하셨죠

이야기가 끝났네요 너무 길었나요 아무튼,

아무도 되묻진 않았지만 예약된 날짜에 저는, 병원엘 가야겠죠

겸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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